방 안에서 강산을 유람하다
진경산수화의 전통 이어가는 윤영경 작가의 9번째 개인전 ‘와유진경’…
오는 15일부터 26일까지 서울 금호미술관에서 열려
등록 : 2017-09-14 13:22 수정 : 2017-09-14 13:42
<강산무진 2017> 213×450cm 한지에 수묵 2017
윤영경 작가의 9번째 개인전 ‘와유진경’(臥遊眞景)이 오는 15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삼청로 금호미술관에서 열린다. 와유진경은 산수화를 보며 즐긴다는 ‘와유강산’에 진경산수화의 ‘진경’이 더해진 말로, ‘방 안에 누워 참된 경치를 유람한다’는 뜻이다. 진경산수화의 전통을 잇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산과 물을 굽어보는 장쾌한 경험
이번 개인전의 백미는 수묵진경산수화 ‘강산무진 2017’(사진). 세로 210㎝, 가로 150㎝ 크기의 종이 30장을 이은 총 길이 45m에 달하는 대작이다. 공간의 제약으로 이번 전시에는 5~6장씩 끊어 모두 23장을 선보인다. 10m에 달하는 축소 작품도 함께 전시한다.
일찌기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의 대가인 겸재 정선은 ‘금강전도’에서 금강산 입구부터 내금강 마지막인 비로봉까지 며칠의 여정을 긴 두루마리 한 폭에 담은 바 있다. 항공사진처럼 위에서 풍경 전체를 내려다보는 부감(俯瞰)의 시선으로 일만이천봉을 그려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시선을 옮기면 겸재가 걸었던 그 길을 함께 걷는 느낌이다.
윤 작가의 ‘강산무진 2017’은 겸재의 전통 속에 있다. 강원 고성 동해바다부터 경남 통영 남해바다를 거쳐 경기 과천 관악산 자락까지 이어지는 비경을 하나의 화폭에 담았다. ‘금강전도’처럼 ‘강산무진’을 찬찬히 둘러보면 우리 산하의 아름다운 풍경을 차례로 감상할 수 있다. 이른바 횡권산수화다. 윤 작가와 횡권산수화의 인연은 그가 쓴 박사논문(<전통적 횡권산수 양식의 현대적 변용-자작>, 2017)에서도 확인된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그림 전체에 적용해 산과 물을 굽어보는 장쾌한 경험을 선사하는 점도 닮았다. 와유진경의 뜻을 알겠다.
윤 작가는 고성과 통영과 과천 등 작품 속에 등장하는 지역에서 실제 거주하면서 오랜 시간 직접 눈으로 본 우리 강산의 모습을 그려냈다고 한다. 그는 “고성에서 1년 통영에서 2년 과천에서 10년 사는 동안 수십차례 직접 산에 올라 사생을 했다”며 “농묵(진한 묵)으로 산맥의 줄기줄기를 직접 그릴 수 있었던 이유”라고 말했다.
탁현규 간송미술관 연구원은 “윤 화백은 산과 땅의 기운이 살아서 뻗어나간 모습을 대담한 구성과 꼼꼼한 필치로 그려냈다”며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을 일깨워주는데 그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윤 화백은 이번 작품에서 색다른 필묵법을 창안했다. 흙산의 흐름을 위주로 작품을 표현하면서 먹칠로 양(陽)의 기운을, 여백으로 음(陰)의 기운을 표현했다. 그는 “그림 자체에서 오는 덩어리감을 비워두고 음양을 표현했다. 전체적인 산맥의 흐름을 잡아서 하나하나 선으로 그렸다”고 했다. 탁 연구원은 “꿈틀거리는 산맥을 묘사하기 위해 새로 만든 이런 필묵법을 ‘윤영경 필묵법’이라 부를 수 있다”며 “화가의 창의성이란 주변의 모습을 화폭에 그대로 담는 데 가장 적합한 방법을 새로 만드는 데 있다”고 말했다.
전국 곳곳 살면서 직접 산에 올라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윤 작가는 2002년 서울 관훈갤러리에서 연 첫 개인전 “그곳에…”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독일 베를린과 뮌헨, 폴란드 브로츠와프 등을 오가며 8번의 개인전을 열었고 단체전에도 30여회 참가하는 등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