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여자는 말이야, 걷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학교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처녀도 아닌 주제에 여고생 교복을 입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 남자의 조언이었다. 한 달을 그의 집에서 머물렀다. 매일 그의 밥상을 차렸고 집안일을 돌봤다. 하루가 쏜살같이 흘러갔다. 한나절이 빠르게 흐를수록 밤이 되면 허전함이 커져갔다. 처량한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 흘릴 때마다 남자는 손수 물을 받아와서 여자의 발을 씻겨줬다. 남자는 가난했지만 다정했다. 그녀는 행복이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도망가는 마음을 붙잡아 그를 더 사랑하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해봤지만,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답답해졌다. 바깥 구경도 못한 채 집에만 갇혀 살다시피 한 지 한 달이 넘어갔다. 마침내 그날 밤 떠날 것을 선언했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얼굴이 터지고 온몸에 피멍이 들 만큼 맞아봤다. 여자는 이제 무서워서 떠날 수 없었고 몇 주 뒤엔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에 떠난다는 상상조차 접어버렸다. 여자는 첫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아이를 둘러업고 장사를 시작했다. 아이는 하나에서 둘이 됐고 어느새 셋이 되었다. 남편의 폭행은 나날이 심해졌지만 행복한 순간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새 집을 맨 처음 마련한 날, 한때 글쟁이를 꿈꿨던 남편에게서 감동적인 편지를 받고 눈물도 흘렸다. 남자의 다정함은 종잡을 수 없었지만, 예측할 수 없는 날씨처럼 떨리고 황홀해 차마 떨칠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거칠고 유별나다 타박받던 그녀의 성정은 온순함과 순종을 배워가는 듯도 했다. 장사판에 나가면 활어처럼 파닥이듯 살아오르던 그녀도 그의 앞에 서면 도마 위 기절한 생선처럼 깜박 제 존재를 잃었다. 그때마다 그녀는 수도 없이 삶의 한순간을 재생하듯 되돌려봤다. 내가 만일 그때 처녀성을 잃지 않았더라면, 좀더 내 삶의 온전한 주체가 되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혼몽한 낮꿈처럼, 빌지 못한 소원처럼, 잠시 왔다 속절없이 떠나가는 살지 못했던 또 다른 삶을 향한 염원은 그녀의 딸들을 향한 기이한 집착이 되었다.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처녀성에 관한. 일로 바쁜 나날 동안 며칠이고 무심하게 잊고 지내던 자식들이었지만, 때가 되면 흔들리는 물결처럼, 출렁, 딸들에게 일렀다. 절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처녀성은 잃지 말라고. 그녀의 둘째딸은 첫딸과 막내아들 사이의 삼각지대 속 깜박 잊힌 존재처럼 자라났다. 그럼에도 둘째딸의 처녀성만큼은 화창한 하늘 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구름처럼 자리에 떠돌고 있었다. 뜬금없이 그녀는 딸에게, 한낮의 살랑이는 미풍처럼 무심하게 말을 흘렸다. “처녀성을 잃으면 안 돼.” 딸은 처녀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모른 채, 기이한 비밀지령을 받은 스파이처럼 꾸역꾸역 그녀의 부탁을 삼켰다. 내장을 꼬깃꼬깃 흘러가는 말은 소화되지 않은 채 뱃속을, 혈액 속을, 구석구석 부서져서 맴돌았다. 만 여덟 살이 될 무렵 당시 고등학생이던 친척 오빠의 협박으로 어두컴컴한 광에 갇혀 바지가 벗겨졌을 때도 처녀란 말의 정확한 의미보다는 불길한 어감에 몸을 떨었다. 방으로 되돌아와 깊은 물에 빠지듯 잠에 들었을 때도, 한낮에 땀을 뻘뻘 흘리며 깨어나 개울에 나가 몸을 씻었을 때도 정확한 기억은 사라지고 불길한 예감만 등골을 훑고 내려갔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맞은 생물 시간에 초로의 남자 선생은 교실을 빼곡하게 메운 여학생들에게 말했다. “여자는 말이야, 걷는 것만 봐도 처녀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그의 선언과도 같은 발언에 공포와 거부감이 동시에 왈칵 덮쳐왔다. 몇 주에 걸친 기억의 탐사가 이루어졌지만, 아무리 헤집어보아도 까맣게 지워진 기억의 크레바스는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검고 먹먹했다. 되돌아 빠지는 대신 선택하기로 했다. 적어도 거부할 수는 있지 않은가. 생물 선생의 선언에 맞서 새롭게 선언했다. “나는 처녀를 위하여 살지 않는다. 나는 처녀이든 아니든 상관없는 삶을 살겠다.” 인생 끝난 줄 알고 지레 포기한 엄마 선언이 있다고 하여 천지개벽하듯 삶도 세상도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거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꿈꾸자 괴로움의 농도가 옅어졌다. 조금씩 삶의 지도가 움직였다. 쫓기는 삶에서 벗어났다. 당신이 요구하는 것이 내가 원하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내가 원하는 것을 들여다볼 힘이 솟아나기도 한다는 걸 그렇게 배웠다. 사랑과 관심이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는 폭력이 도처에 얼마나 널려 있는지, 어쩌면 그녀들의 삶 자체가 폭력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는 과정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했다. 안에는 분열을 안았다고 해도 누가 보기에도 나무랄 데 없는 착한 여자로 자라나서 둘째딸은 대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대학 입학 뒤 사귄 남자친구와 얼떨결에 하룻밤을 보냈다. 놀랍게도 이불은 붉은 피로 물들었(다고 했)고 그 광경을 제 눈으로 보고 싶지 않았던 여자는 남자에게 당장 이불을 빨아올 것을 요구했다. 한바탕의 소동을 끝낸 뒤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동이 틀 무렵이었다. 담을 넘어 현관문을 조심조심 열었을 때 딸의 눈앞에 보이는 건 문 앞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엄마의 그림자였다. 그녀는 다짜고짜 딸의 등짝을 후려치며 말했다. “너, 처녀 아니지? 도대체 너, 어쩌려고 이러니?” 갑작스러운 팩트 공격(세상에, 바로 그날이 오늘인 걸 어찌 알았을까)에 심장이 쪼그라든 둘째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갑자기 왜 그래?” “오늘 내가 용하다는 무당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그러더라. 네가 처녀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고.” 딸은 들켰다는 공포보다 무당의 영험함에 감탄하고 말았다. “와, 그 무당 누구야? 진짜 용하네. 같이 보러 가자, 엄마.” 엄마는 기가 막힌 듯 딸을 노려보다 그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옷장사로 시작해 사업가로 성공했다가 시원하게 집안 재산을 통째로 두어 번 말아먹고 다시 재기 중인 엄마는 대답했다. “이왕 그렇게 된 거 연애나 실컷 하고 살아라. 엄마는 젊을 때 처녀성 잃었다고 인생 끝난 줄 알고 지레 포기하고 살았어.” 딸은 엄마의 반응이 어리둥절했으나 붙잡고 묻기에는 몰려오는 피로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어쨌든 잊지 못할 날이었음은 분명했다. 이제 둘째딸은 마흔을 넘겨 그날 엄마의 나이마저 지나버렸다. 엄마와 아빠는 한동안 그럭저럭 평온한 삶의 균형을 이룬 듯이 보였으나 고난의 시절이 찾아오자 아빠의 폭력은 보란 듯이 귀환했고 예순 넘은 엄마는 비로소 이혼했다. 양쪽 모두 피해자로 남은 결혼생활이었다. 두려움에 맡기는 삶이란 아빠도 엄마와의 결혼만 아니었다면 인생이 이토록 비참하지는 않았으리라고 되풀이해 말한다. 결혼은 때로 패잔병만 남기는 상처투성이 전쟁터와 같다. 딸들을 번듯한 집안에 결혼시키고서야 이혼한다던 엄마의 바람은 제멋대로 남자를 골라 통고하듯 결혼해버린 두 딸 덕에 허무해졌다. 우리는 때로 용기보다 두려움에 삶을 맡긴다. 그리고 깨닫는다. 두려움의 삶은 타인의 것도 제 것도 아닌 삶의 림보(limbo)에 머문다는 걸. 이것은 바로 나의 엄마와 그녀의 둘째딸인 나의 이야기이다. 이서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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