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성적 내면을 두개의 색깔로 드러낸 <열정의 습관>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그리고 페니스의 촉감이 문제다. 흐물거리며 구겨지는 것도 문제지만 혈관이 튀어나온 지나치게 딱딱한 페니스도 징그럽다. 접착물질 같은 맑은 분비물이 이슬처럼 솟는, 참을 수 없이 부드러운 음경과 커다란 장미꽃잎에 감싸인 것 같은 매끈하고 단단하고 동시에 부드럽고 신선한 색의 페니스, 두개의 방울토마토를 담고 있는 것 같은 잔뜩 올라붙은 페니스 아래의 주머니….”
전경린의 신작 <열정의 습관>(이룸 펴냄)에서 주인공 미홍은 자신이 남성을 기억하는 방식 중에 하나로 페니스의 촉감을 이야기한다. 섹스중의 숨소리와 냄새, 페니스의 촉감, 그리고 체위에 대해서 미홍은 자신이 경험했던 즐거움과 불쾌함을 선명한 목소리로 세밀화 그리듯 이야기한다. 4년6개월 동안 미홍을 생각했다는 P와의 짧고 허망한 섹스, 미홍의 시집을 읽고 찾아와 무지한 열정으로 그녀에게 매달렸던 K와의 지리멸렬한 섹스.
성적 강박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
<열정의 습관>은 사랑이나 결혼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 밑에서 무례하고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섹스에 대해서 진저리를 친다. 미홍과 함께 진술자로 등장하는 두 친구 가현과 인교의 성생활은 적막하거나 황폐하다.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한 가현은 12년 동안 칠흑같은 어둠 아래서만 남편과 섹스를 나눈다. 그는 남편의 성기를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다. 스무살 때 입주과외를 하던 집 삼촌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하며 그가 사주는 아이스크림과 원피스 따위로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았던 인교에게 섹스는 “칼”이다. 그는 자신에게 겨눠졌던 칼의 방향을 남자에게 바꿔 공격적이고 강박적인 섹스로 스스로를 괴롭한다. <열정의 습관>은 일상적인 성경험을 가지고 있는 30대 후반, 세 여성이 가지고 있는 강박증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정리하는 일종의 성보고서다. 어릴 적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동네 언니의 이야기로 순결이데올로기를 강요받아오다 스무살 적 ‘버리기 위한’ 첫 섹스를 치른 미홍을 비롯해 세 여성은 남근에 의해 받은 상처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극복되기도 하고 반복되기도 한다. 미홍의 입을 빌려 작가는 “지긋지긋한 섹스치들”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기술이나 자유로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남성중심주의적인 섹스, 그리고 은폐하거나 침묵하는 섹스의 무게를 덜어내고 관계의 중요한 매개체이자 “스스로와 상대에 대한 생명력을 다루는 문제”로서의 성에 대해서 환기시킨다. 성과 사랑의 문제는 90년대 여성소설의 주요한 소재로 등장해왔다. 특히 상처받은 육체로서의 여성의 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여성 작가들이 탐구해온 문제다. 그런 맥락에서 <열정의 습관>이 건네는 이야기는 ‘남근주의 이데올로기’라는 같은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섹스의 문제에 접근한다. 계간 <세계의 문학>에서 문학평론가 이재복씨는 이전 소설들의 “섹스에 대한 (욕망의)은폐강박증”을 지적하며 이 소설이 “강박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택한 방법이 섹스에 대한 거리두기가 아니라 그것과의 친밀한 접촉”이라는 데 주목한다. 첫 장면에서 열아홉살 미홍이 “남자의 페니스를 처음으로 손안에 넣었을 때”에 대한 긴 묘사가 나온다. “한여름에 손안에서 뜨거운 토마토를 으깬 기억보다”, “서늘하고 가벼운 염주 알을 손안에 쥐었던 기억보다”, “작약 꽃송이에 고인 이슬을 한줌 가득히 털었던 기억보다” 등 전경린 특유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수사 가득한 페니스에 대한 묘사는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관념으로 또는 ‘칼’, ‘송곳’, ‘누추한 살덩어리’ 등 비유적 묘사로 표현되던 페니스에 대한 황홀한 감각적인 체험을 전달한다. 이 묘사는 오랫동안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이었던 성기묘사에 대한 여성 작가의 첫 번째 발언이자 여성 작가들의 은폐강박증-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에 대한 폭로이기도 하다. 여성의 젖가슴을 쥐었을 때의 느낌과 성기 삽입시 떠올리는 수많은 비유 등등. 남성 작가들의 여성 성기에 대한 묘사는 통속소설과 본격소설을 막론하고 지루할 만큼 반복, 변용돼왔다. 그때 묘사되는 여성의 육체는 남성의 일방적인 공격성을 ‘받아들이거나’, ‘감내하는’ 대상물이다. 이씨는 “남성 작가들이 보여주는 공격성과 파괴성은 섹스를 친밀한 접촉에 의한 수평적인 상호소통으로 이해하지 않고 일방적인 상하(남녀)접촉에 의한 수직적인 것으로 이해한 데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이런 묘사는 섹스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는 작가군, 예를 들어 마광수나 장정일의 작품에서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일방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우리 사회의 일상적 성문화에 대한 반영이기도 하다. 전경린은 “남성 작가들이 보여주는 일방적인 욕구의 분출과 관념화된 성에 대한 반격과 해체”를 감행한다. 반격은 또다른 공격성이 아닌 부드러움과 친밀함으로 표현된다. 성에 대한 사랑은 사랑의 종속 조건이거나 그 자체와 별개가 될 수 없다는 작가의 의도다. 전씨는 “나이가 들면서 내가 여성이라는 게 사치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곤 한다. 피해자로서 대상물로서 육체의 열등감을 벗어나려는- 혹은 벗어난 -그의 예민한 자의식이 <열정의 습관>에 녹아 있다. 격렬한 욕망 그리고 꼼꼼한 성 탐구
<열정의 습관>과 함께 얼마 전 발간된 김형경씨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문이당 펴냄)은 격렬하고 뜨거운 전경린의 글과는 대조적으로 바늘땀을 뜨듯 꼼꼼하게 사랑과 성의 문제에 대해 탐구해나간다. 이 소설의 두축은 고향친구인 인혜와 세진으로 30대 후반의 전문직 여성이다. 결혼 시절 성적으로 무능한 남편의 폭력 때문에 이혼한 인혜는 사랑은 엄숙하기보다 통속적인 것이라 믿는다. 그는 남자들 사이로 가벼운 걸음을 떼며 사랑을, 섹스를 나눈다. “지하철역에서 허겁지겁 마른 샌드위치를 삼키는 남자, 한잔의 술조차 발기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며 마시는 남자, 밥그릇을 국그릇에 엎은 뒤 마시는 것처럼 퍼넣는 남자, 술집에서 여자가 화장실 간 사이 자신의 지갑 속을 확인하는 남자…”를 안아줄 수밖에 없는 인혜에게 사랑은 쉽고 짧은 연민이다. 반면 어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고립, 대학 시절 성폭행을 경험한 세진은 성불능, 사랑불능이다. 정신의 고통이 육체로 이전돼 시름시름 앓던 그는 갖가지 방법을 찾다가 정신과의 시술대 위에 올라가 가두었던 자신의 욕망을 찾아간다.
마치 독자가 정신과 상담의자 위에 앉은 것처럼 세밀하게 정신분석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의 마지막에서 세진은 “나의 성 불능과 성욕 부재의 뒷면에 상당히 과도한 성적 욕망이 억눌려 있었을 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작가는 여성 독자들을 선동하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섹스의 좌절을 겪으면서도, 그것이 애써 사랑과는 무관한 것이라고 자위하는 여성들이 겪는 묵직한 두통의 원인을 차근차근 밝혀나간다. 더이상 변할 것이 없어보이는 여성으로의 삶 속에서 분열증적 불안을 느끼고 살아가는 30대 여성들에게 이 책은 일종의 성장소설처럼 읽히기도 한다.
두 소설의 색깔은 다르지만 여성이 겪는 성적 좌절과 실패, 그리고 사랑이라는 주제에서 만난다. 성적 주체로서 여성의 문제에 대한 탐구는 90년대에 폭발했지만 훨씬 이전부터 활동한 박완서씨나 이경자씨, 오정희씨 등의 작품에서도 꾸준히 등장해 온 주제다. 주인공 수연이 형부될 사람과 섹스를 경험하며 그 느낌이 “구두가죽 위를 긁는 것 같았다”고 씹어뱉듯 고백하는 <도시의 흉년>의 한 장면처럼 이전 작가들에 있어 성의 문제는 가족제도라는 제도적 관습적 관계망에 대한 총체적인 문제제기와 맞물려 있었다. 문학평론가 백지연씨는 “중견 여성 작가들의 출발점이 가족제도 안에서 여성의 성적 역할이나 가부장제에 여성의 희생에 대한 강한 반발이었다면 90년대 후반 여성 작가들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성과 사랑은 타율에 의한 종적인 관계망을 거두어내는 방식으로 변해왔다”고 분석한다. 90년대 주요 여성 작가들이 발표한 이른바 ‘불륜소설’의 유행 역시 제도적 관계 안에 고착된 결혼을 벗어나 능동적인, 또는 횡적 관계맺기에 대한 한 가지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당신은 어떤 사랑과 섹스를 했는가
<열정의 습관>과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은 이러한 변천사를 겪어온 성과 사랑, 그리고 여성의 자아찾기의 문제를 좀더 미시적으로 파고들어간다. 여성이 원하는 성과 사랑이 그것이다. 전경린씨는 후기에서 “성은 상품도 상처도 아니어야 하며… 함부로 포기되어서도 안 된다”라고 적고 있다. <사랑을 선택하는…>에서 세진은 함부로 포기했던 사랑을 더디지만 아프게 찾아나간다. 거리에는 성이 넘쳐나지만 아직도 많은 여성들에게 “내 인생의 섹스”는 부질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욕망의 절제와 거세, 그에 따른 후유증까지 묵묵히 받아들이는 여성들에게 두 책은 일종의 처방전이다. 그 처방전에는 ‘더이상 자신을 속이거나 포기하지 말 것’이라고 적혀 있다. 책을 읽는 남성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지극히 일방적이고 공격적인 성에 대한 무자각은 결국 사랑을 기울게 만들고 위선으로 만드는 폭력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책을 덮으면서 생각해볼 일이다. 나는 어떤 섹스, 어떤 사랑을 해왔는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김성희
<열정의 습관>은 사랑이나 결혼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 밑에서 무례하고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섹스에 대해서 진저리를 친다. 미홍과 함께 진술자로 등장하는 두 친구 가현과 인교의 성생활은 적막하거나 황폐하다.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한 가현은 12년 동안 칠흑같은 어둠 아래서만 남편과 섹스를 나눈다. 그는 남편의 성기를 본 적도 만져본 적도 없다. 스무살 때 입주과외를 하던 집 삼촌에게 상습적인 성폭행을 당하며 그가 사주는 아이스크림과 원피스 따위로 그것이 사랑인 줄 알았던 인교에게 섹스는 “칼”이다. 그는 자신에게 겨눠졌던 칼의 방향을 남자에게 바꿔 공격적이고 강박적인 섹스로 스스로를 괴롭한다. <열정의 습관>은 일상적인 성경험을 가지고 있는 30대 후반, 세 여성이 가지고 있는 강박증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을 정리하는 일종의 성보고서다. 어릴 적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동네 언니의 이야기로 순결이데올로기를 강요받아오다 스무살 적 ‘버리기 위한’ 첫 섹스를 치른 미홍을 비롯해 세 여성은 남근에 의해 받은 상처의 흔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극복되기도 하고 반복되기도 한다. 미홍의 입을 빌려 작가는 “지긋지긋한 섹스치들”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다. 그러나 그것은 기술이나 자유로움에 대한 문제가 아니다. 남성중심주의적인 섹스, 그리고 은폐하거나 침묵하는 섹스의 무게를 덜어내고 관계의 중요한 매개체이자 “스스로와 상대에 대한 생명력을 다루는 문제”로서의 성에 대해서 환기시킨다. 성과 사랑의 문제는 90년대 여성소설의 주요한 소재로 등장해왔다. 특히 상처받은 육체로서의 여성의 성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여성 작가들이 탐구해온 문제다. 그런 맥락에서 <열정의 습관>이 건네는 이야기는 ‘남근주의 이데올로기’라는 같은 출발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섹스의 문제에 접근한다. 계간 <세계의 문학>에서 문학평론가 이재복씨는 이전 소설들의 “섹스에 대한 (욕망의)은폐강박증”을 지적하며 이 소설이 “강박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택한 방법이 섹스에 대한 거리두기가 아니라 그것과의 친밀한 접촉”이라는 데 주목한다. 첫 장면에서 열아홉살 미홍이 “남자의 페니스를 처음으로 손안에 넣었을 때”에 대한 긴 묘사가 나온다. “한여름에 손안에서 뜨거운 토마토를 으깬 기억보다”, “서늘하고 가벼운 염주 알을 손안에 쥐었던 기억보다”, “작약 꽃송이에 고인 이슬을 한줌 가득히 털었던 기억보다” 등 전경린 특유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수사 가득한 페니스에 대한 묘사는 이 책의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다. 관념으로 또는 ‘칼’, ‘송곳’, ‘누추한 살덩어리’ 등 비유적 묘사로 표현되던 페니스에 대한 황홀한 감각적인 체험을 전달한다. 이 묘사는 오랫동안 남성 작가들의 전유물이었던 성기묘사에 대한 여성 작가의 첫 번째 발언이자 여성 작가들의 은폐강박증- 의도하든 하지 않았든- 에 대한 폭로이기도 하다. 여성의 젖가슴을 쥐었을 때의 느낌과 성기 삽입시 떠올리는 수많은 비유 등등. 남성 작가들의 여성 성기에 대한 묘사는 통속소설과 본격소설을 막론하고 지루할 만큼 반복, 변용돼왔다. 그때 묘사되는 여성의 육체는 남성의 일방적인 공격성을 ‘받아들이거나’, ‘감내하는’ 대상물이다. 이씨는 “남성 작가들이 보여주는 공격성과 파괴성은 섹스를 친밀한 접촉에 의한 수평적인 상호소통으로 이해하지 않고 일방적인 상하(남녀)접촉에 의한 수직적인 것으로 이해한 데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이런 묘사는 섹스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드러내고 있는 작가군, 예를 들어 마광수나 장정일의 작품에서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이것은 일방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우리 사회의 일상적 성문화에 대한 반영이기도 하다. 전경린은 “남성 작가들이 보여주는 일방적인 욕구의 분출과 관념화된 성에 대한 반격과 해체”를 감행한다. 반격은 또다른 공격성이 아닌 부드러움과 친밀함으로 표현된다. 성에 대한 사랑은 사랑의 종속 조건이거나 그 자체와 별개가 될 수 없다는 작가의 의도다. 전씨는 “나이가 들면서 내가 여성이라는 게 사치처럼 느껴진다”고 말하곤 한다. 피해자로서 대상물로서 육체의 열등감을 벗어나려는- 혹은 벗어난 -그의 예민한 자의식이 <열정의 습관>에 녹아 있다. 격렬한 욕망 그리고 꼼꼼한 성 탐구

사진/ 전경린씨는 신장<열정의 습관>에서 "스스로와 상대에 대한 생명력을 다루는 문제"로서의 성을 그린다.

사진/ 성적으로 대비되는 두 여성을 통해 여성의 욕망찾기를 시도하는 김형경씨의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