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 전문 출판 브랜드 ‘큐큐’가 펴낸 시집 <우리가 키스하게 놔둬요>의 편집자 장지은씨, 최성경 대표, 번역가 최성웅씨(왼쪽부터).
60대 게이라고 밝힌 어느 독자의 전화 러시아·일본·프랑스 등 다양한 나라 작가들의 시를 번역하느라 이성옥, 이종현 등 번역가 7명이 참여했다. 프랑스어 번역을 맡은 최성웅씨는 “이번에 번역한 폴 발레리의 시 ‘정다운 숲’은 예전에 번역했던 작품이다. 예전에는 그의 성적 지향을 모르고 번역했다. 이번에 보니 그의 작품에는 동성애 코드가 은은하게 깔려 있었다. 그 시를 다시 번역하니 (예전엔 무심코 지나갔던 부분이) 새롭게 보였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최씨는 묘한 기쁨을 느꼈다. “동성애 작가들이 작품에 넣는 감각의 메타포를 알고 번역하니 남다른 재미가 있더군요.” 시집을 편집한 장지은씨는 생소한 퀴어문학을 다루느라 따로 시간을 내 관련 공부를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 역시 “<여성의 남성성> 등 퀴어 관련 인문학 책을 보고 작가들의 이야기가 실린 책이나 자료를 찾아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느꼈다”고 말했다. “마이클 필드의 ‘두 번째 생각’이라는 시가 있어요. 일이 있지만 연인 곁을 떠나지 못하고 남는 단순한 플롯이지만 그 시와 시어의 아름다움에 반하고 말았죠.” 책 출간에 필요한 자금은 텀블벅(크라우드펀딩 누리집)을 통해 모았다. 3주 동안 후원자 666명이 1400만원을 기부했다. 목표액 400만원의 세 배가 넘는 돈이다. “예상외로 많은 분이 참여한 걸 보고 ‘우리가 하려는 일에 공감하고 기다린 분이 많구나’ 생각했습니다. 그 덕분에 애초 책을 1천 부만 찍을 계획이었는데 2천 부를 찍었어요.” 지난 7월 시집이 나온 뒤 독자들의 응원이 이어지고 있다. 최성경 대표는 잊을 수 없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한 독자분이 자신은 60대 게이라며 책을 잘 읽었다고 고맙다고 했어요. 본인은 젊은 시절 자신을 감추며 살았다고. 그런데 젊은 분들이 퀴어 시집을 출간한다는 것을 알고 반가웠고 감동적이었다고요.” 전화를 걸어온 이는 시집에 소개된 시인 가운데 하트 크레인의 시가 마음에 들었다며 그의 작품을 묶은 시집 출간 계획이 있는지도 물었다. 최 대표는 이때가 “12년 동안 책을 만들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국내 퀴어작가들 작품도 출간 예정 영미권에선 퀴어문학이 하나의 독립된 장르로 자리잡고 있다. 당연히 이를 둘러싼 문학적 논의도 활발하다. 그러나 국내에선 퀴어문학의 학문적 연구는 물론 책 출간조차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큐큐는 꾸준히 좋은 퀴어문학 작품을 발굴해 소개할 예정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문학의 본령은 소수성이며, 개인적이고 개별적인 이야기가 독자에게 큰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앞으로 오스카 와일드, 버지니아 울프, 미하일 쿠즈민, 리타 메이 브라운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퀴어문학 클래식 시리즈로 출간할 계획을 세웠다. 국내 퀴어작가들의 단편집과 시선집도 출간 기획 중이다. “퀴어 이야기가 더 이상 숨기고 은폐해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사람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해요. 누구나 취향껏 작품을 골라 읽고 이야기 나누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큐큐는 그런 세상을 희망하는 책을 만들 예정입니다.” 최성경 대표가 말했다. 글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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