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료관객 찾아나선 <이소룡을 찾아랏!> <사자성어>… 새로운 제작·배급시스템의 서막
독립영화 두편이 서로 짜기라도 한 듯 나란히 개봉한다. 이제는 인디밴드라고 부르기가 민망할 정도로 스타가 된 ‘크라잉 너트’가 주연한 <이소룡을 찾아랏!>이 1월26일 서울 아트선재센터와 시네마테크 부산에서 개봉하는 데 이어, ‘섹스’를 주제로 한 옴니버스영화 <사자성어>가 28일 라이코스, 코리아닷컴 등 인터넷 극장에서 유료상영을 시작하고 2∼3월 사이 극장에서 개봉할 예정이다.
흥미로운 건 제작의 면면이다. <사자성어>에 참여한 4명의 감독들은 현재 독립영화계에서 내로라 하는 ‘거두’들이다. 단편영화로는 보기 드문 완성도와 남다른 감수성을 보여준 <슈가힐>과 <굿 로맨스>를 내놔 최근 충무로가 영입해간 이송희일 감독, <둘 하나 섹스> <돈오> 등 성에 관한 파격적인 접근으로 번번이 등급보류 판정을 받으며 등급보류 규정에 대한 위헌결정까지 받아낸 이지상 감독, <엄마의 사랑은 끝이 없어라> <샴, 하드 로맨스>에서 엽기성을 넘어 하드코어에 근접한 도발성을 보여준 지하창작집단 파적의 김정구 감독, 그리고 프랑스 유학을 거쳐 오래도록 단편영화를 만들며 탄탄한 실력을 쌓아온 유상곤 감독 등이 총 2억5천만원의 제작비로 네편을 만들었다.
‘삼박자’가 만들어낸 작품
<이소룡을 찾아랏!>은 독립영화계와는 또다른 독립예술가들의 합작품이다. 인디음악의 구심처가 돼온 클럽 드럭이 1억원가량의 제작비를 댔고, ‘문화유목민 집단’ 몽골몽골의 강론씨가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아 록다큐멘터리, 미스터리 구조, 정지 화상의 연속 편집 등을 섞은 실험적인 복합 장르를 만들었다. 몽골몽골은 각기 다른 나라의,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극히 독립적인 예술행위를 하는 집단이다. 여기에 펑크밴드 크라잉 너트가 가세해 음악영화의 면모까지 갖췄다. 일부러 일정을 맞춘 것도 아닌데 두편의 독립영화가 동시에 유료관객을 찾아나선 것을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나 홀로 자본과 인력으로 만들어지는 독립영화는 처음부터 극장개봉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기가 곤란하다. 화제속에 개봉됐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고추말리기>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등도 그랬다. 독립영화 감독이 1인다역의 슈퍼맨 노릇을 해야 하지만, 과점화된 극장 배급망을 뚫고 홍보까지 겸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제작비에 맞먹는 최소 1천만원가량의 마케팅 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필름으로 찍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제작비가 억대를 넘어설 수밖에 없지만, 디지털카메라로 만든 <고추말리기>와 <대학로에서…>는 1천만원을 넘지 않았다. 제작비 20억∼30억원에 마케팅비 5억∼10억원 정도는 기본으로 생각하게 된 주류 영화판에서 보면 이건 하품 나올 일이다. 하지만 이들 세 작품은 모두 극장에서 개봉하는 ‘사건’을 만들어냈다. 때맞춰 삼박자가 맞아들어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인츠닷컴, (주)인디스토리 등 독립영화 고유의 제작·배급시스템을 갖추려는 회사가 앞장섰고, 하이퍼텍 나다·아트선재센터·아트큐브 등 일반 개봉관과 차별화 전략을 꾀하는 극장이 존재했으며,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장편영화 배급지원 사업이 실질적인 힘이 됐다. 웬만한 상업영화보다 재밌고 새로웠던 <죽거나…>는 손익을 쉽게 넘겼지만, 단 1개의 극장에서 개봉한 <고추말리기>와 <대학로에서…>는 2천여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는 데 그쳤다. 하지만 손해본 건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일관된 이야기다. 인츠닷컴의 김정영 사업부장은 “지난해 <죽거나…>의 극장개봉을 추진할 때, 완성도 높은 독립영화가 독자적으로 배급·개봉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봤는데 이런 시스템이 안정화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독립영화 제작·배급사, 극장, 영진위 지원의 ‘삼박자’ 말고도 젊고 역량있는 감독이 갈수록 양산되고 있고, 와·라·나·고(<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를 묶어 한 극장에서 번갈아 상영하는 방식)의 흥행에 탄력이 붙는 것처럼 관객의 저변도 탄탄해 보인다는 것이다. 독립영화계와는 또다른 공간 속에서 만들어진 <이소룡을 찾아랏!>이 배급사를 찾지 못해 개봉이 연기되다 장·단편 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배급하는 인디스토리를 만나 관객과 만나게 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상업영화의 스펙트럼 확대 <사자성어>는 처음부터 ‘독립영화로 만드는 상업영화’를 지향했다. (주)외눈거인의 김일권 프로듀서는 “독립영화 마인드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제작비를 회수하고 재투자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려는 의도에서 출발해 감독들의 동의를 이끌어냈고, 여기에 상업성이 있다고 본 스타맥스와 KGI증권으로부터 각각 1억원씩의 투자를 받아냈다”고 말했다. 옴니버스를 이룰 네 작품을 각기 찍으면서 스태프와 배우를 공유한 것도 제작비를 줄이는 1차 목적 이외에 시스템화를 꾀하려는 측면이 있다. 김정구 감독의 <하지>의 남자 주인공이 이송희일 감독의 <마초사냥꾼>에서는 조연으로 나오는 식이다. 개봉관 잡기가 어려운 점을 감안해 인터넷을 통한 유료개봉을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새로운 환경을 개척하려는 실험이다. 이런 작업들이 아직은 단발적이어서 저예산을 들여 수익을 올린 뒤 재생산에 들어가는 순환구조를 만들기에는 미흡하지만, 제작과 개봉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80년대의 독립영화는 정치·사회적인 주장을 내는 매체적 성격이 강했지만 디지털 장비의 등장으로 비교적 손쉽게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지금은 개인적인 의미가 더 강해졌다. 이렇게 해서 쏟아지는 단편영화 가운데 일부 검증된 감독들이 주류로 진입하고 상업영화들을 만든다. 하지만 거대한 시스템에서 자기 머릿속의 색깔을 분명히 내기에는 역량이 떨어진다. 독립영화의 독자적인 제작·배급구조는 이런 역량을 튼튼하게 쌓아가는 데 큰 구실을 할 수 있다. 상업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이소룡을 찾아랏!>은 독립영화계와는 또다른 독립예술가들의 합작품이다. 인디음악의 구심처가 돼온 클럽 드럭이 1억원가량의 제작비를 댔고, ‘문화유목민 집단’ 몽골몽골의 강론씨가 연출과 시나리오를 맡아 록다큐멘터리, 미스터리 구조, 정지 화상의 연속 편집 등을 섞은 실험적인 복합 장르를 만들었다. 몽골몽골은 각기 다른 나라의, 서로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극히 독립적인 예술행위를 하는 집단이다. 여기에 펑크밴드 크라잉 너트가 가세해 음악영화의 면모까지 갖췄다. 일부러 일정을 맞춘 것도 아닌데 두편의 독립영화가 동시에 유료관객을 찾아나선 것을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나 홀로 자본과 인력으로 만들어지는 독립영화는 처음부터 극장개봉을 염두에 두고 제작하기가 곤란하다. 화제속에 개봉됐던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고추말리기> <대학로에서 매춘하다가 토막살해당한 여고생 아직 대학로에 있다> 등도 그랬다. 독립영화 감독이 1인다역의 슈퍼맨 노릇을 해야 하지만, 과점화된 극장 배급망을 뚫고 홍보까지 겸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제작비에 맞먹는 최소 1천만원가량의 마케팅 비용을 마련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필름으로 찍은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는 제작비가 억대를 넘어설 수밖에 없지만, 디지털카메라로 만든 <고추말리기>와 <대학로에서…>는 1천만원을 넘지 않았다. 제작비 20억∼30억원에 마케팅비 5억∼10억원 정도는 기본으로 생각하게 된 주류 영화판에서 보면 이건 하품 나올 일이다. 하지만 이들 세 작품은 모두 극장에서 개봉하는 ‘사건’을 만들어냈다. 때맞춰 삼박자가 맞아들어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주)인츠닷컴, (주)인디스토리 등 독립영화 고유의 제작·배급시스템을 갖추려는 회사가 앞장섰고, 하이퍼텍 나다·아트선재센터·아트큐브 등 일반 개봉관과 차별화 전략을 꾀하는 극장이 존재했으며,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장편영화 배급지원 사업이 실질적인 힘이 됐다. 웬만한 상업영화보다 재밌고 새로웠던 <죽거나…>는 손익을 쉽게 넘겼지만, 단 1개의 극장에서 개봉한 <고추말리기>와 <대학로에서…>는 2천여명의 관객을 끌어모으는 데 그쳤다. 하지만 손해본 건 없다는 게 관계자들의 일관된 이야기다. 인츠닷컴의 김정영 사업부장은 “지난해 <죽거나…>의 극장개봉을 추진할 때, 완성도 높은 독립영화가 독자적으로 배급·개봉하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봤는데 이런 시스템이 안정화하기에 가장 좋은 시기가 됐다”고 말했다. 독립영화 제작·배급사, 극장, 영진위 지원의 ‘삼박자’ 말고도 젊고 역량있는 감독이 갈수록 양산되고 있고, 와·라·나·고(<와이키키 브라더스> <라이방> <나비> <고양이를 부탁해>를 묶어 한 극장에서 번갈아 상영하는 방식)의 흥행에 탄력이 붙는 것처럼 관객의 저변도 탄탄해 보인다는 것이다. 독립영화계와는 또다른 공간 속에서 만들어진 <이소룡을 찾아랏!>이 배급사를 찾지 못해 개봉이 연기되다 장·단편 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배급하는 인디스토리를 만나 관객과 만나게 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상업영화의 스펙트럼 확대 <사자성어>는 처음부터 ‘독립영화로 만드는 상업영화’를 지향했다. (주)외눈거인의 김일권 프로듀서는 “독립영화 마인드를 버리지 않으면서도 제작비를 회수하고 재투자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려는 의도에서 출발해 감독들의 동의를 이끌어냈고, 여기에 상업성이 있다고 본 스타맥스와 KGI증권으로부터 각각 1억원씩의 투자를 받아냈다”고 말했다. 옴니버스를 이룰 네 작품을 각기 찍으면서 스태프와 배우를 공유한 것도 제작비를 줄이는 1차 목적 이외에 시스템화를 꾀하려는 측면이 있다. 김정구 감독의 <하지>의 남자 주인공이 이송희일 감독의 <마초사냥꾼>에서는 조연으로 나오는 식이다. 개봉관 잡기가 어려운 점을 감안해 인터넷을 통한 유료개봉을 처음으로 시도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새로운 환경을 개척하려는 실험이다. 이런 작업들이 아직은 단발적이어서 저예산을 들여 수익을 올린 뒤 재생산에 들어가는 순환구조를 만들기에는 미흡하지만, 제작과 개봉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80년대의 독립영화는 정치·사회적인 주장을 내는 매체적 성격이 강했지만 디지털 장비의 등장으로 비교적 손쉽게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지금은 개인적인 의미가 더 강해졌다. 이렇게 해서 쏟아지는 단편영화 가운데 일부 검증된 감독들이 주류로 진입하고 상업영화들을 만든다. 하지만 거대한 시스템에서 자기 머릿속의 색깔을 분명히 내기에는 역량이 떨어진다. 독립영화의 독자적인 제작·배급구조는 이런 역량을 튼튼하게 쌓아가는 데 큰 구실을 할 수 있다. 상업영화의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인디스토리 곽용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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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