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이분은 제가 많이 아끼고 존경하는 분이에요. 아줌마란 호칭은 듣기 불편하네요.” 사실 좀더 조리 있게 설명하고 싶었다. L편집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아줌마가 아니라고. 일단 그분은 결혼하지 않았다. 한 번도 결혼한 적 없는 독신 여성이었다. 그런 분에게 ‘아줌마’란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쓴다는 건 심각한 결례가 아닌가. 두 번째 이유. 사실 이 세상 어떤 여성도 공적인 자리에서 ‘아줌마’ 호칭으로 불려서는 안 되지 않은가. 이름에 ‘씨’를 붙여도 좋고, 직책을 붙여도 좋다. 그렇게 친하다면 ‘누님’까지는 어떻게든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줌마’라니, 어쩌면 그렇게 무신경하고 무례한지. 게다가 여성 쪽은 아무리 친해도 깍듯하게 ‘○○님’ 호칭을 고수하는데, 남성 쪽은 거침없이 ‘아줌마’라고 부르니 더욱 듣기 불편했다. 완곡어법보다 정직한 직설화법을 K기자는 흠칫 놀란 표정을 짓다가 ‘뭘 그리 사소한 걸 갖고 따지느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에, 나는 완전히 실망하고 말았다. 이건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편집장님은 기자님을 ‘아저씨’라고 부르지 않잖아요. 게다가 우리나라에선 ‘아저씨’보다 ‘아줌마’가 훨씬 듣기 거북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거든요.” ‘아저씨’ 호칭을 듣는 남자보다 ‘아줌마’ 호칭을 듣는 여성이 훨씬 감정적으로 위축되지 않는가. 이 사회에서 ‘아저씨’와 ‘아줌마’의 무게는 결코 같지 않다. 그분은 나를 향해 ‘이 사람, 녹록지 않구먼!’ 하는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나는 속으로 희미한 해방감을 느꼈다. 저 사람은 나에 대한 첫인상이 좋지 않겠구나. 하지만 괜찮았다. 예전처럼 두렵거나 힘들지 않았다. 내 감정을 숨김없이 말했기에 속이 다 시원했다. 어느새 내 마음의 맷집이 강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내 의견을 솔직히 말하며 불편함을 견디는 것이 내 감정을 숨기며 평화를 유지하는 것보다 훨씬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마흔의 자유로움은 이렇게도 찾아왔다. 더 이상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나를 포장하는 일’이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과거의 나는 ‘피스메이커’가 되기를 원했다. 솔직한 싸움보다는 미봉책으로서의 평화를 선택했다. ‘싸움닭’으로 보이기 싫었기 때문이다.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싸웠을 때 결국 서로 상처만 남을 것이라고, 지레 겁을 먹었다. 하지만 남는 건 평화가 아니라 오히려 더 깊고 쓰라린 내상(內傷)이었다. 나는 ‘센 언니’로 보이기 두려웠던 것이다. 저쪽에선 ‘웃자’고 떠드는데 이쪽에서는 ‘죽자’고 덤비는 페미니스트가 될 용기가 없었다. 점점 사람이 많이 모이는 술자리를 기피하게 된 것도,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선 반드시 성차별적 요소가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 이제는 안다. 내가 싸움을 피할수록, 나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들의 ‘자유 공간’이 줄어든다는 것을. 내가 싸워야 할 것은 남성 자체가 아니라 ‘남성들의 편견’이라는 것을. 그러니 내게는 남성들과 변함없는 우정을 유지하면서도 그들의 편견과 싸울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설령 우정이 박살 날지라도, 그들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뿌리 깊은 편견만은 아프게 건드려야 한다는 것을. 솔직한 감정표현의 해방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달콤하다. 그래서 요즘은 아주 친한 사이가 아니더라도, 매우 공식적인 자리에서도, 예의 바른 완곡어법보다는 정직한 직설화법을 택하게 된다. 심지어 정치나 종교 같은, ‘말 자체를 꺼내지 않는 것이 상책인 주제’에 대해서도 솔직해져버렸다. 특히 보수적 색채가 강한 분들이 모인 상황에서 나만 ‘외톨이’로 앉아 있어야 하는 순간조차, 나는 솔직해졌다. “이제 기지개를 켤 때가 되었어요” 공식적 회의가 시작되기 전, 50대 중반의 K변호사가 말했다. “내 주변에는 문재인 후보 찍겠다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요. 도대체 이 높은 지지율이 어디서 나오는지 모르겠다니까요.” 나는 그분의 어딘가 거들먹거리는 태도에 심히 충격을 받았다.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나는 겁도 없이 이렇게 말해버렸다. “제 주변 분들은 거의 다 문재인 후보를 찍겠다고 하시던데요. 아니면 심상정 후보 찍겠다는 분도 꽤 많고요.” 분위기는 술렁거렸다. 지금까지 한 번도 내가 그런 이야기를 꺼낸 적이 없어서였을 것이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막내였다. 가장 어린 내가, 그것도 나 혼자의 소수의견을, 너무도 당돌하게 제시해버린 것이다. 그날 회의가 끝난 자리에서, 나는 옆자리에 앉아 계신 분에게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다. “이번에는 예전과 다른 선택을 해보시면 어떨까요. 솔직히 진심으로 완전하게 지지하는 후보가 없으신 것 같아서요.” 그분은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그건 그런데, 그래도 그건….” 나는 싱긋 웃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아마 ○○○ 후보가 정말 잘해낼 거예요. 눈 딱 감고 한번 믿어보세요.” 나는 무슨 정당에서 선거운동을 나온 것도 아니고 평소 정치 이야기도 잘 하지 않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솔직해지고 싶었다. 평생 그 누구에게도 반대의견을 직접 들어본 적 없는 분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었다. ‘이 세상에는 당신과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을. 바로 곁에 당신과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분명 존재하지만, 지금까지 서로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누지 않았기에 모르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마흔 즈음의 또 다른 용기는 후배들을 향해서도 거침없이 발휘된다. 이제 삼십 대 중반에 접어든 J는 아주 총명하고 매력적인 친구다. 글을 잘 쓰고 싶은데 자기 글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고 고민을 토로한다. 게다가 오랫동안 직장 선배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왔기에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직장, 좋은 집안, 안정된 생활로 부족할 것 없어 보이는 J는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매우 의기소침했다. 그 직장 상사는 J의 옷 색깔까지 트집 잡으며 ‘검정색과 흰색 외에 다른 어떤 색의 옷도 입지 말라’는 식의 인권유린까지 서슴지 않았다. 나는 J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제 기지개를 켤 때가 되었어요. 지금까지 한 번도 펼치지 못했던 날개를 펼쳐봐요.” J는 내 말에 반신반의하는 듯했지만, 눈빛만은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J씨 안에는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어요. 얼마든지 다 해낼 수 있는데 ‘너는 어차피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닦달하느라 자기 능력을 제대로 써본 적 없는 가여운 괴물이에요. 사실 그 괴물은 엄청나게 멋진 친구이기도 해요. 지금의 이 힘든 상황을 너끈히 혼자 깨부술 수 있는 대단한 녀석이 J씨 안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어요. 두려워하지 말고, 그 녀석의 힘을 한번 믿어봐요. 뭐가 무서워서, 입고 싶은 옷도 못 입어요? 왜 하고 싶은 말을 못해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뭔지 이미 스스로 아는데, 그걸 왜 피하기만 해요?”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나는 어느새 내 이야기에 빨려들고 있었다. 나는 J에게 이야기하면서, 마음 깊은 곳에선 10년 전 나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른의 터널을 달리며 ‘타인에게 거슬리지 않는 존재’가 되기 위해 ‘당신이 진짜 되고 싶은 자신’을 억누르는 J에게 이야기해주고 싶었다. 당신은 충분히 준비됐다고. 이제 준비만 하지 말고 창공을 힘차게 날아오르라고. 당신은 먼 훗날 대단해질 미래의 모습이 아니라 지금 바로 당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폭풍우에 맞설 수 있다고. 이러다가 나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센 언니’가 될지도 모른다. 단지 강해지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내기 위해서. 더 이상 보드랍고 온화한 척, 원만한 척 연기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내가 옳다고 믿는 모든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나를 싫어해도 괜찮다. 드센 언니, 기 센 여자로 보여도 괜찮다. 내 의견을 포기하면서까지 누군가의 호감을 얻고 싶지 않다. 내 생각을 숨겨가면서까지, 내가 아닌 다른 무엇이 되면서까지 환심을 사고 싶지는 않다. 나이 들수록 내가 점점 더 ‘진짜 나다운 나’로 바뀌어가는 것이 좋다. ‘나를 이렇게 봐주세요’라고 부탁하고 싶지 않아서 좋다. 아무런 꾸밈 없이, ‘그저, 말갛게, 나’에 가까워지는 것이 참으로 좋다. 정여울 작가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