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담이의 백일. 이른 아침 도착한 떡에 백일을 기념해 만든 스티커를 붙이는 아내. 김성훈
“백일의 기적은 없습니다.”
지난 칼럼 ‘아내의 독박, 육아’에 달린 댓글들을 아내와 함께 소리 내어 읽다가 스크롤하던 손가락을 잠시 멈췄다. 아니, 많은 육아 선배들이 “백일까지만 버텨보라”고 귀가 따갑도록 말해준 조언이 거짓말이었나. 딸 도담이가 통잠을 자기 시작하고, 목을 가누면서 아내와 내가 한숨 돌릴 수 있게 된다는 그 백일의 기적이? 설마. 육아는 끝이 없으니 더욱 정진하라는 뜻으로 달린 댓글인 듯한데 저 댓글을 본 순간 힘이 쏙 빠진 건 사실이다.
30대 중·후반인 우리 부부가 목 빠지게 백일을 기다린 건 잠이 부족해서다. 아내의 허리가 안 좋아진 것도 숙면하지 못한 이유도 있다. 기적이 있든 없든, 전투적으로 육아에 임했다간 백일도 맞기 전에 제 풀에 지쳐 백기 투항할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섰다. 수면 교육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쯤이다. 모름지기 아기가 잘 자야 부모가 건강하고, 나아가 가정까지 행복한 법이다.
도담이를 잘 재우기 위해 도담이의 수면 습관을 분석해보니 대체로 규칙적이었다. 도담이는 ‘얼리버드’다.
새벽 5시에 기상해 모유를 먹고, 놀다가 오전 9시, 오후 1시, 오후 4시 세 차례 정도 졸려하며 칭얼거린다. 그때 도담이를 안아 좌우로 살살 흔들어 재우면 된다. 혹여 잠들었을 거라 생각하고 이부자리에 내려놓는 순간, 도담이는 성미산이 떠나가라 서럽게 운다. 그러다보니 잠자는 동안 한시도 내려놓지 못한다. 팔은 팔대로 저리고, 허리는 허리대로 부담이 간다. 반면 해가 지면 재우기 편해진다. 오후 6시30분에 씻긴 뒤 저녁 7시쯤 재우면 밤 11시와 새벽 2시에 일어나 모유를 먹고 다시 새근새근 잠든다. 그때 도담이가 어찌나 천사 같은지 모른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기 위해 우리는 도담이의 수면 습관을 바꾸기로 했다. 운다고 무조건 안아서 재우는 방식을 버리고, 도담이를 과감하게 침대에 눕혔다. “응애! 응애! 응애!” 도담이가 울자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당황하지 말자, 도담이는 화가 난 게 아니다. 단지 ‘졸려! 졸려! 졸려!’ 하며 말을 거는 게 분명하다. 아이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도담이는 잘 수 있어”라고 다정하게 말을 걸어주었다. 결과는 보기 좋게 실패!
이번에는 전략을 바꿔 도담이가 잠들 때까지 구구단을 외워보기로 했다. “이일은이, 이이사, 이삼육… 십일은십, 십이이십….” 아이보다 먼저 곯아떨어지는 바람에 아내에게 적잖은 구박과 놀림을 받았다. 몇 날 며칠을 실패, 또 실패하니 어느 순간 도담이는 혼자서도 꿈나라로 갈 수 있게 됐다. 우리 또한 취침 시간을 밤 12시에서 밤 10시로 부쩍 앞당겨 새벽 기상에 무리가 없도록 했다.
도담이와 우리의 수면 습관을 바꾼 덕분에 아내와 나는 낮잠을 잘 수 있게 됐고, 집안일을 할 수 있게 됐으며, 영화 감상이나 독서까지 아주 잠깐 즐길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아내의 굽힌 허리가 많이 호전됐다(돌봄 선생님과 장모님 카드를 섞어가며 쓴 덕분에 아내는 일주일에 세 번 재활운동과 도수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똑똑하고 게으르게 아이를 키워야 아이도, 부모도 건강해질 수 있다는 얘기가 맞나보다. 그럼에도 매 순간 전투적으로 임할 수밖에 없는 게 육아이지만 말이다.
지난 6월13일, 도담이는 (엄마와 아빠가) 고대하던 백일을 맞았다. 이른 아침부터 동네 떡집에서 주문한 떡을 찾아와 마을 사람들과 회사 사람들에게 돌렸고, 많은 축하를 받았다. 밖에서 일하다 아내가 보내준 도담이의 사진을 보고 깜짝 놀랐다. 혼자서 목을 가누는 사진과 자신의 발가락을 잡는 사진이었다. 그것이 내게 백일의 기적이었다.
김성훈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