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화백자 항아리
딩동 - 폴더 폰에서 폴더 폰으로 온 사진은 도무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연세도 있으신 분이고 기계치이셨으니까. 마음은 바쁜데... “아휴! 사장님 잘 안보여요.” “가격은요? 비싸요? 사장님이 보시기에 어때요?” 마음이 바빠 급히 통화중인데 다른 분이 후한 값을 치루겠다고 한다며 소리치신다. 아니 상거래라는 게 있지 어떻게 물어보는 사이에 그럴 수가 있나. 우여곡절 끝에 나에게로 온 귀한 항아리이다. 조선 후기 개성지방요로 추정되는 항아리의 왼쪽에 버드나무 한그루, 오른쪽엔 소나무가 있는 풍경이다. 구름과 보름달이 떠있는 나무위에 부엉이가 늠름하게 앉아 있는 청화백자 항아리 크기는 높이 65cm, 둘레 134cm이었다. 도자기 둘레에는 사군자 중 난초, 매화, 대나무가 있으며, 큰 소나무 옆에 살짝 가려진 기와집 한 채, 배부른 황소, 학, 운지 버섯을 물고 있는 사슴, 거북등이 군자로서의 풍요로움을 누리며 오래살고 싶은 인간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다고 생각 된다. 부엉이와 황소가 그려진 항아리는 흔하지 않은 도안이다. 이 항아리는 가마에서 굽는 과정에 균열이 생기고 청화안료가 휘발되어 그림이 옅게 남겨져 조금 아쉬움이 있으며 아마 작품에 대한 욕심이 많은 도공의 손에 있었다면 진즉 어떻게 될 물건이었지만, 가마 지기의 알뜰한 마음 덕분에 재미나고 귀한 물건이 외양간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져 운 좋게 내가 소장하게 된 것이다.
▣ 부엉이 가리개(가로130cm∼세로180cm)
▣ 민화
▣ 부흥금고, 초인종 소리통, 습도계 온도계
위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부흥금고, 초인종 소리통, 습도계 온도계
▣ 부엉이 방귀(둘레72cm, 높이48cm)
▣ 수석
▣ 방범대원 혁대(벨트)
▣ 옥 목걸이 고대 신화 집 「산해경」에 옥(玉)은 권위의 상징이다. 아름답게 치장하거나 사귀(邪鬼)를 물리치는 벽사의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더불어 옥은 군자의 덕(德)인 「인, 의, 예, 지, 신 仁義禮知信」으로, 「군자무고옥불거신君子無故玉不去辛」 군자는 반드시 옥을 지녀야 한다고 되어있다. 특히 부엉이는 어두운 밤에 활동하여 선사시대에서는 신이 보낸 새(토템)로 표현했다. 신의 대변자인 샤먼(제사장)의 장식이나 의례의식에 쓰였던 부엉이로 표현된 옥장신구, 청동기, 향로 ,토기와 같은 많은 유물이 세계 여러 박물관의 귀한 보물, 국보로 소장되어 있다.
▣ 치미
▣ 시경언해본
▣ 자전 석요 우두의 창시자이며 한학자 지석영이 쓴 활자본으로 1909년 (융희3년)에 간행된 옥편이다. 종래의 옥편이 자음과 자의를 한글로 달지 않은 데 비해, 이 책은 자음과 자의를 한글로 달아 소리와 뜻을 알아보기 쉽게 하고 또한 속음과 속자를 붙여 놓았다. 근대적인 체제를 갖춘 것으로는 최초의 옥편인 셈이다. 그림을 통해 한자가 의미하는 바를 쉬이 알아보게 하였는데 수리부엉이는(鵂 휴)자가, 올빼미 그림에는 (鴞 효) 자가 들어가 있다.
▣ 조선어학회의 훈민정음 일제 강점기에 조선어학회에서 만든“훈민정음”에서는 “ㅎ”자의 쓰임새를 설명하여 부헝이를 예로 들고 있다. 여기에서 부엉이는 휴(鵂.수리부엉이)로 표현되고 있다.
▣ 울고 넘는 박달재 가요무대 30년 동안 1위곡으로 선정되었던 울고 넘는 박달재가 실린 SP 돌 판이다. 우렁찬 목소리로 3절까지 녹음이 되어 있으며 수동으로 태엽을 감는 콜롬비아 유성기로 사용한다. 2절 가사의 내용에 부엉이가 나오기 때문에 수집된 물건이다. 부엉이 우는 산골/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기약이나/성황님께 빌고 가소 도토리묵을 싸서/허리춤에 달아주며 한사코 우는 구나/박달재의 금봉이냐`
▣ 박 등과 스탠드 요즘엔 자연적으로 큰 박이 잘 열리지 않는다. 예전엔 큰 박이 열리면 속은 긁어내고 부엉이와 소나무, 수(壽), 그믐달, 큰 대문이 있는 친환경적인 등(燈)을 조각하여 멋스럽게 사용하였다. 어두운 밤이면 예쁜 불빛을 비추는데 높이 36cm에 둘레가 88cm나 되는 제법 큰 등이다. 스탠드는 친구 결혼식에 신부 친구들이 돈을 모아 선물로 사주었던 60년대 신식 전기용품이었다. 금술 좋은 수리부엉이처럼 백년해로하는 것과 부자로 잘살라는 뜻이 담긴 선물이었으며, 부엉이는 지혜(知慧)를 상징하니 밤을 새워 열심히 공부하라는 의미도 있다.
▣ 편지함과 거울 초가집 뒤 나무 위의 부엉이는 농사일로 집을 비운 주인을 대신 하여 집도 지키면서 배달부가 정다운 소식을 꽂아두던 편지통이며, 작은 나무거울은 이른 아침 앞마당에서 세수하시던 할아버지와 아버지께서 얼굴에 거품을 내며 면도를 하실 때 쓰시던 것이다.
▣ 제주도와 경주여행 부엉이기념품 요즈음 현대인들은 멋지고 세련된 작품을 쉽게 접하고 구할 수 있지만 예전에는 장식품이나 기념품이 흔하지 않았다. 또 갖고 싶어도 아무나 갖질 못하기도 했다. 신혼 여행지로 유명하고 여행가들에게 인기 많은 지역이 제주도, 경주였다. 누구나 살림살이가 빠듯함에도 부자로 살고 싶고 수호신처럼 지켜준다는 말에 부엉이 장식품이 기념품으로 인기가 있었던 같다.
▣ 성냥, 재떨이 오르골담배통 해방이후의 성냥통과 재떨이, 그리고 60년대 후반 만들어진 부엉이 오르골 담배통은 뚜껑을 열면 음악소리가 나며 그 안에는 라이터와 우리나라 최초의 탄소필터 담배인 “은하수”가 들어 있다. 그 시절에는 귀한 용품으로 사장님, 회장님 책상 위에 항상 비치되어 있었다. 성냥, 재떨이, 담배통에 부엉이가 등장하는 것은 “자나 깨나 불조심”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것으로 추측해본다. 만화가 고바우 김성환씨가 그린 한 밤중 소방서 굴뚝 위에 앉아있는 부엉이도 재미있다.
▣ 과자 통(높이20cm) 오래전 사용하던 사랑스런 과자통. 장식장 어디에 두어도 예쁘고 귀여워서 눈에 띠는 정든 물건이다. 미얀마에서 쓰던 차(茶통)도 비슷한 것이 여럿 있다. 이 과자 통을 설탕통, 양념 통으로 사용하던 분도 계시지만 나는 과자 통을 다른 용도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 아기 밥그릇과 베이비 크림 통 귀한자식에게 밥을 담을 때마다 훌륭하게 커서 큰 부자로 살고, 아무 탈 없이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을 담아 아이의 작은 밥그릇에 부엉이를 그려놓은 것으로 상상된다. 베이비 크림 통은 1980년대 추운 겨울에 아이들 얼굴이나 손이 틀 때 사용하던 용품이다. 그 때도 어려운 시절이라 아무나 사용하지 못한 비싼 크림이었다.
▣ 부엉이 저금통 예로부터 우리 주변에는 화수분같이 아무리 퍼내도 계속 재물이 나오는 부엉이 저금통이 많았다고 한다. 부자가 되는 꿈을 꾸며 어려운 시절에서도 아끼고 절약하고 모아 작은 것부터 시작하여 큰 부를 이루 듯,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의 창고는 부엉이 굴(창고)이었으며 그는 박물군자이기도 하였다. 그의 부엉이 굴에는 천하의 기보, 명보, 명기 등 없는 것이 없었다 한다. `부엉이 굴`에는 없는 것이 없고 자기도 모르게 재물이 부쩍 부쩍 불어난다는 속담이 있다. 임상옥의 창고가 그러했는데 그는 후에 큰 부를 이룬 뒤 후학을 위해 모두 사용하였다 한다.
▣ 우리나라 전통 풍습 정월 초 자손축성과 대보름 지신밟기 할 때 축성문을 읽는다. 축성문의 내용은 이렇다. 「이 댁 가중 일문 권속 금일 금시 이 정성에 인간오복을 점지한다. 온갖 복을 점지할 때 구름복은 모여들고, 바람복은 불어들고, 물길복은 흘러든다. 인간 업은 걸어들고, 부엉이 업은 날아들고, 구렁이 업은 기어들고, 두꺼비 업은 넘어들고, 도야지 업은 몰려들고, 족제비 업은 뛰어든다. 온갖 업이 다 모였으니 자손만대 축원하여 보자」라고 큰 소리로 축성한다. 업은 집안의 복과 재물을 관장하는 신으로 곳간과 재물의 축적을 책임지는 신이다.
* 화성성역의궤에 나타난 조선시대 백성들의 이름 부엉이처럼 눈이 크고 눈이 나온 사람 : 이부엉, 키가 큰 사람 : 박큰노미, 키가 작은 사람: 김자근노미, 일 잘하면 : 김기특, 착하면 : 박선노미, 조호노미 등 평민들의 신체 특징 따라 쉬운 대로 그대로 불렀다. * 소만 농가월령가에 “4월“이라 맹하소만 절기로다. 했다. 소만이 되면 보리가 익어가며 산에는 부엉이가 울어 옜다고 한다. 이 때쯤이면 보리 고개란 말이 있을 정도로 너나없이 없이 양식이 떨어져 가난하고 힘겹게 연명하던 시기이다. * 부엉이 구전가요 떡해 먹자 부엉, 양식 없다 부엉, 걱정 말게 부엉, 꿔다하지 부엉, 언제 갚지 부엉, 갈에 갚지 부엉(갈은 가을의 준말이다) * 부엉이 울음 점 송전동에서는 10월에 부엉이가 울면 이듬해 바닷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부엉이가 3마리의 새끼를 번식하면 대 풍년이 든다고 하였다. 10월 밤에 부엉이가 앞산에서 울면 혼사가 있고, 분례가 시집가기 전날 목욕을 하면서 부엉이 소리를 들으면 시집가서 잘산다고 하였다. 뒷산에서 울면 초상이 나고 자주 울면 초상이 잦다고 하였다. * 삼국지 위서 변진전 큰새(부엉이는)의 깃털로 장례를 치루는데 이는 죽은 자가 가볍게 날아오를수 있게 하기 위함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새를 본떠 만든 그릇을 통해 새가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로 이끈다는 당시 사람들의 내세관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동속금언십경 고서에도 날아다니는 10가지 짐승(새)중 부엉이는 인간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새로 나온다. 어릴 적 강원도에 살면서 보았던 상여앞의 장식에는 부엉이가 있었다. 왜 일까? 어른들은 저승길은 깜깜하고 무서우니 눈 밝은 부엉이가 밝혀준다고 하였다. 그때 부엉이는 복(鵩) 이라 부르셨다. 배명희 부엉이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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