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을 찾아랏!> 주연 맡은 크라잉 너트, 술먹고 이소룡 흉내낸 사연
조선펑크밴드 크라잉 너트가 주연한 영화 <이소룡을 찾아랏!>의 끝에 이르면 “지금이 곡을 쓰기에 가장 좋을 때다”라는 독백이 나온다. 시나리오와 연출을 맡은 강론 감독이 준비한 말이지만 이건 현실이 됐다. 영화 촬영과 함께 진행된 3집 앨범에는 영화를 만들면서 얻은 느낌과 경험이 곡에 녹아들었다. 영화에 삽입된 <이소룡을 찾아랏!> <하수구>를 앨범에 담았고, 3집 수록곡 <밤이 깊었네>는 <이소룡을 찾아랏!> 뮤직비디오의 음원으로 사용됐다. “평소 이소룡을 무척 좋아한 탓에” 다른 멤버보다 훨씬 중요한 역을 해야 했던 한경록(25·베이스)씨의 경험은 재밌기까지 하다.
홍대에선 똥에서도 예술 냄새가
“우린 살아온 삶을 음악에 쓰거든요. 그러니까 영화 찍으면서 느낀 걸 곡으로 많이 만들었죠. <밤이 깊었네>도 그랬고. 그중 <양귀비>란 곡을 쓰게 된 건 이래요. 다음날 아침 촬영이 있는데, 전 늦잠이 많아서 차라리 밤새 술먹으면서 기다리자고 생각하고 술을 먹기 시작했죠. 그런데 그만 싸움을 하게 됐고, 연기에 몰입했던 나머지 이소룡 흉내를 내면서 싸웠던 거예요. 참 내…. 이 경험을 곡으로 쓴 거예요.”
이렇게 만들어진 3집은 지금까지 10만장 이상 팔린 크라잉 너트 최고의 히트상품이자, 언론의 일관된 ‘격찬’을 받은 수작이 됐다. 또 <밤이 깊었네> 뮤직비디오는 지난해 상반기 네티즌이 뽑은 최고의 인기 뮤직비디오로 뽑히기도 했다. 지난 95년, ‘불알친구’로 자란 박윤식(26·보컬), 이상면(26·기타), 이상혁(26·드럼)씨와 한씨는 2년 전에 만든 밴드로 홍익대 앞 클럽 드럭에서 오디션을 본 뒤 ‘전속 밴드’가 되면서 서서히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크라잉 너트는 지금도 토요일 밤이면 드럭의 무대에 서는 인디밴드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1집과 2집을 각각 8만장, 10만장 넘게 팔아치운 괴력을 발휘하며 ‘오버그라운드’에서 인기 밴드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특히 <서커스 매직 유랑단>이란 자신들의 노래처럼 전국을 유랑하며 한해 300회 이상 공연을 벌이는데, 관객을 ‘이상흥분’하게 만드는 무대 매너는 아주 유명하다. 멤버 가운데 김인수(28·아코디언)씨를 뺀 네명의 멤버가 영화에 실명으로 등장했다. “전주영화제에 공연갔다가 강론 감독을 만났어요. 술먹다가 감독님이 먼저 ‘서울에 관한 3부작을 찍고 싶은데, 먼저 1부작을 크라잉 너트가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연기도 안 되고 해서 처음에는 사양했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활동하는 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기도 해서 영화가 시작된 거죠.” 스스로를 문화유목민이라고 자처하며 연극, 영화 등 여러 장르를 떠도는 강론 감독의 스타일도 자기들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면 이 영화에서 이소룡은 어떤 상징물일까? “이소룡은 동양인이면서 미국에서 활동한 인물이잖아요. 영화에는 서울에 사는 수많은 외국인들, 특히 아시아인들이 등장하는데 주류와 공존하는 비주류, 언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자는 장치라고 할 수 있죠.” 어찌보면 미학 실험을 벌이는 것 같은 이 영화를 모두 네번씩 봤다고 한다. 그런데 이구동성으로 볼 때마다 안 보이던 게 보여서 너무 좋다고 한다. “자아를 찾는 느낌이랄까. 음악하는 이유, 내 꿈과 내가 여기 서 있는 이유 등을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를 본 느낌이죠.” 이들이 모여 즐겁게 서로 떠드는 걸 보면, 천진난만한 악동들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되풀이한 말이 있다면, “논다”와 “재밌어서”란 말이다. 반면 욕심이란 단어를 딱 한번 썼는데, “우린 음악에는 굉장히 욕심이 많다”는 대목에서였다. “아직은 철없이, 꿈을 꾸듯, 물 속을 헤엄치듯 살고 싶다”는 이들은 홍익대 부근에서 노는 걸 무척 좋아한다. “각자 따로 놀다가도 결국에는 한곳에 모이게 되는데, 홍대 일대에는 어딜 가도 문화적 냄새가 나요. 어떤 냄새요? 술집을 가도 흥청망청한 느낌이 없고, 똥에서도 예술냄새가 나요.” 이들이 욕심내는 음악은 ‘조선펑크’다. “군국주의하자는 건 아니고요. 펑크를 처음 들었을 때 패션도, 가수들의 반항적인 이미지도, 가사의 저항적인 것도 다 좋았지만 록이 외국 것이라서 그런지 음악적으로는 우리 게 아닌 것 같았어요. 정서도 좀 다르고. 그래서 반항적인 젊은 음악은 좋으나 외국밴드 흉내내지 말고 그냥 우리 걸 하기로 했어요. 펑크 본연의 정신대로 장르에도 구애받지 말고.” 크라잉 너트가 자주 서는 무대에는 광주민주화운동 기념공연,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발대식 등 사회성 짙은 행사가 끼어 있다. “공연 취지가 좋으면 개런티가 없어도 상관없어요. 이런 행사에서 저희를 선택해주는 게 기분좋기도 하고. 우리가 음악으로 할 수 있는 건 공연밖에 없잖아요.” 멤버 모두 주성치의 열혈 팬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왔다. 이들은 영화에 대해 나름의 취향과 심미안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 <나비> 봤는데 아주 좋던데요.”(이상면)
“전 <소름> <나쁜 남자> 봤는데, <나쁜 남자>의 조재현씨 연기는 정말 죽이더군요.”(박윤식)
그리고 결론. “우리 모두 홍콩코미디 배우 겸 감독 주성치를 무지무지 좋아해요. 코믹 블록버스터라 할 그의 최근작 <소림족구>(미개봉작)를 입수했는데, 모두 함께 봐야 할 작품이죠. 그의 작품은 단순한 코미디가 아니에요. 자기가 걸어온 길을 솔직히 드러내고, 로맨티스트로서의 모습도 보여주고, 중국의 역사에 대해 의식도 있고. 최고죠. 그리고 그는 전세계 이소룡 팬클럽 회장이기도 해요.”
현재 이들은 3월께 발매할 4집 준비에 들어간 상태다. 1월18일 오후 4시께 클럽 드럭으로 주섬주섬 모이기 시작한 이들을 만났다. 이 시간쯤 모여 앨범 준비를 시작하느냐고 묻자, “아뇨, 이제부터 뭐하고 놀까 하고 궁리하죠”하며 다들 깔깔거리고 웃는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울부짖는 땅콩' 이 이소룡을 찾아나섰다. <이소룡을 찾아랏!>의 한 장면.

사진/ 크라잉 너트는 '이소룡 바이러스'의 정체를 찾아 연쇄살인사건의 수사에 나선다.
이렇게 만들어진 3집은 지금까지 10만장 이상 팔린 크라잉 너트 최고의 히트상품이자, 언론의 일관된 ‘격찬’을 받은 수작이 됐다. 또 <밤이 깊었네> 뮤직비디오는 지난해 상반기 네티즌이 뽑은 최고의 인기 뮤직비디오로 뽑히기도 했다. 지난 95년, ‘불알친구’로 자란 박윤식(26·보컬), 이상면(26·기타), 이상혁(26·드럼)씨와 한씨는 2년 전에 만든 밴드로 홍익대 앞 클럽 드럭에서 오디션을 본 뒤 ‘전속 밴드’가 되면서 서서히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크라잉 너트는 지금도 토요일 밤이면 드럭의 무대에 서는 인디밴드의 정체성을 갖고 있지만, 1집과 2집을 각각 8만장, 10만장 넘게 팔아치운 괴력을 발휘하며 ‘오버그라운드’에서 인기 밴드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특히 <서커스 매직 유랑단>이란 자신들의 노래처럼 전국을 유랑하며 한해 300회 이상 공연을 벌이는데, 관객을 ‘이상흥분’하게 만드는 무대 매너는 아주 유명하다. 멤버 가운데 김인수(28·아코디언)씨를 뺀 네명의 멤버가 영화에 실명으로 등장했다. “전주영화제에 공연갔다가 강론 감독을 만났어요. 술먹다가 감독님이 먼저 ‘서울에 관한 3부작을 찍고 싶은데, 먼저 1부작을 크라잉 너트가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시더군요. 연기도 안 되고 해서 처음에는 사양했는데, 이야기를 하다보니 재밌을 것 같기도 하고, 활동하는 걸 기록으로 남기고 싶기도 해서 영화가 시작된 거죠.” 스스로를 문화유목민이라고 자처하며 연극, 영화 등 여러 장르를 떠도는 강론 감독의 스타일도 자기들과 잘 맞아떨어졌다고 한다. 그러면 이 영화에서 이소룡은 어떤 상징물일까? “이소룡은 동양인이면서 미국에서 활동한 인물이잖아요. 영화에는 서울에 사는 수많은 외국인들, 특히 아시아인들이 등장하는데 주류와 공존하는 비주류, 언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하자는 장치라고 할 수 있죠.” 어찌보면 미학 실험을 벌이는 것 같은 이 영화를 모두 네번씩 봤다고 한다. 그런데 이구동성으로 볼 때마다 안 보이던 게 보여서 너무 좋다고 한다. “자아를 찾는 느낌이랄까. 음악하는 이유, 내 꿈과 내가 여기 서 있는 이유 등을 찾아 떠나는 로드무비를 본 느낌이죠.” 이들이 모여 즐겁게 서로 떠드는 걸 보면, 천진난만한 악동들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되풀이한 말이 있다면, “논다”와 “재밌어서”란 말이다. 반면 욕심이란 단어를 딱 한번 썼는데, “우린 음악에는 굉장히 욕심이 많다”는 대목에서였다. “아직은 철없이, 꿈을 꾸듯, 물 속을 헤엄치듯 살고 싶다”는 이들은 홍익대 부근에서 노는 걸 무척 좋아한다. “각자 따로 놀다가도 결국에는 한곳에 모이게 되는데, 홍대 일대에는 어딜 가도 문화적 냄새가 나요. 어떤 냄새요? 술집을 가도 흥청망청한 느낌이 없고, 똥에서도 예술냄새가 나요.” 이들이 욕심내는 음악은 ‘조선펑크’다. “군국주의하자는 건 아니고요. 펑크를 처음 들었을 때 패션도, 가수들의 반항적인 이미지도, 가사의 저항적인 것도 다 좋았지만 록이 외국 것이라서 그런지 음악적으로는 우리 게 아닌 것 같았어요. 정서도 좀 다르고. 그래서 반항적인 젊은 음악은 좋으나 외국밴드 흉내내지 말고 그냥 우리 걸 하기로 했어요. 펑크 본연의 정신대로 장르에도 구애받지 말고.” 크라잉 너트가 자주 서는 무대에는 광주민주화운동 기념공연, 양심수를 위한 시와 노래의 밤, 스크린쿼터 수호천사단 발대식 등 사회성 짙은 행사가 끼어 있다. “공연 취지가 좋으면 개런티가 없어도 상관없어요. 이런 행사에서 저희를 선택해주는 게 기분좋기도 하고. 우리가 음악으로 할 수 있는 건 공연밖에 없잖아요.” 멤버 모두 주성치의 열혈 팬

사진/ 크라잉 너트의 공연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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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