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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절망? 커트해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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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2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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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청각장애 미용사, 대전 정아헤어숍 주정자 원장의 ‘눈으로 하는 사랑’

사진/ 그는 대전시 청각장애인 최초로 미용사 자격증을 땄다. '정아헤어숍'은 어려운 시적을 다 이기고 3년째 정착단계에 들어섰다.(이정용 기자)
고속도로 양쪽으로 늘어선 낮은 산의 흐름을 안고 대전의 그녀에게로 갔다. 청각장애인인 주정자(25) 원장이 운영하는 미용실은 ‘정아헤어숍’. 집에서 부르는 이름 ‘정아’를 따서 지은 것이다. 그 이름이 더 잘 어울리는 듯해서 나도 정아씨라고 부르리라 마음먹었다. 우리의 인터뷰는 정아씨의 부모님 그리고 두명의 수화 통역자와 함께 대규모로 진행되었다.

세살 때 오토바이에 심하게 부딪혀

통역자가 입모양을 크게 해서 말을 하면 내 입을 보고 정아씨가 알아들을 것이라고 가르쳐주었다. 시키는 대로 입을 크게 해서 물었다. 근처 대전대학교에서 오는 학생손님들이 많은가요? 실패. 정아씨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니 즉시 수화로 바뀌었다.


(학생은 그다지 많지 않고 이 동네 주민들이 많아요.)

이번엔 정아씨가 내게 물었다. ‘커피?’ 그는 입모양이 아니라 소리로 물었다. 혼자서 원장 겸 미용시다 일까지 하는 주 원장이 커피를 준비하는 사이 어머니 강양순씨에게 물었다. 금방 커피라고 말을 했지요? 집에서는 어떻게 이야기하시나요?

“집에서야 가족끼리니 정아가 말을 하지요. 엄마, 아빠라는 말도 해요. 동네사람들이 쟤 언제부터 안 들렸냐고 물을 정도예요. 남이 듣기에 무슨 소린가 싶어도 우리는 알아들을 수 있어요.” 정아씨는 스스럼없이 대해주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소리를 들려준다고 한다. 청각장애인들은 어릴 적부터 구화 훈련을 받지 않으면 자연히 언어능력도 상실한다. 교육받지 않은 소리는 ‘이상한 소리’가 되고 말기 때문에 학교에서도 “소리를 지르지 말고 수화를 하라”고 가르친다.

“정아가 세살 때 사고로 오토바이에 심하게 부딪혔어요. 기절까지 했어요. 그래도 처음엔 몰랐지요. 바로 병원에 갔는데 외상이 없으니 전부 괜찮은 것으로 알고 그냥 나왔지요. 일년이나 지난 뒤에야 애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됐지요. 부르면 벽에 가서 부딪히고 그러더라고요. 진작에 알아봤어야 했는데 우리 부부가 포장마차 하면서 먹고살기가 힘들어서 못 그랬어요.” 지금 정아씨 부모는 ‘앉은장사’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정아씨는 대전의 청각장애인 학교인 원명학교에서 초·중·고등교육을 모두 받았다. 고3 때 취업반에서 미용기술을 배우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장애인들도 자격증 따기가 힘들다는 미용기술이다. 청각장애라는 것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배워야 했다. 우리 사회에서 장애인들은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할 때는 불평등하게, 분명히 다르게 대우받아야 할 때는 매우 ‘평등하게’ 대접받는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알 수 있었다.

다부지게 배우고 힘들게 갈고 닦아 ‘정아헤어숍’을 연 지 3년이 되었다. 어려웠던 시절을 엄마가 더 잘 알고 있다.

“으이그, 그거 말로 다 못하지요. 운 적이 한두번이었겠어요. 손님들 샴푸하는 일을 종일 할 때는 손이 트고 갈라져서 연고 한개 사면 이틀을 못 갔어요. 한달에 한번 꼴로 영양제를 맞혀줘야 했지요. 다리도 퉁퉁 붓고, 울고 온 날은 눈도 부은 채 자고 있는 것 볼 때는 참…. 같은 보조원이라도 농아라고 무시하기 일쑤잖아요. 졸업하고 어디 봉사활동 다닐 땐데 난 저 귀머거리한테 머리 안 자른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지는 못 듣지만 난 듣잖아요. 그 자리에서 다 팽개치고 싶었지만 그래도 딸애 생각을 해서 입 꾹 다물고 음료수를 한번씩 더 돌리고 그랬어요. 그래도 애가 성격이 명랑하고 아주 적극적이어서 다행이지요.”

옆에서 정아씨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힘껏 참았으니 이렇게 될 수 있었지요.)

끝까지 돌봐주고 애써준 부모님

사진/ 아버지 주시중씨와 어머니 강양순씨와 함께. 맨 오른쪽은 수화 통역자 윤순희씨다.(이정용 기자)
대전시 청각장애인으로 최초로 미용사 자격증을 딴 지금,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미용 일을 하고 있어 행복하다. 그리고 후배들한테 힘들어도 꼭 배워두라고 말해준다. 후배 중에 한명은 미용기술을 배워 자격증을 땄는데 직장에 나간 지 석달 만에 포기하고 말았다. 주위환경이 너무 힘들어서 그랬단다. 정아씨는 그게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정아씨는 아주 행운이에요. 이렇게 딸을 끝까지 돌봐주고 애써주는 부모님은 흔치가 않아요. 심지어는 아이를 일찌감치 버린 사람들도 많아요.”

수화통역 자원봉사 일을 한 지 올해로 6년째 된다는 윤순희씨와 이영미씨가 입을 모아 말한다. 장애인이 대부분 그러하겠지만 특히 청각장애인들의 가정이 가난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정부로부터 받는 도움도 극히 미미한데다 일터를 잡아봤자 얼마 못 가서 나오게 되니 이중삼중의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요즘 사회에서 장애란 게 어느 특정인의 것이 아니잖습니까?” 시종일관 묵묵히 앉아 있던 아빠 주시중씨가 한마디를 던졌다. 고운 딸아이한테 또다른 아픔이 올까 노심초사 살아온 모습을 의연하게 누르는 아버지였다. “근데 우리 애가 머리 잘 만지는 것 같지 않아요? 이 머리도 쟤 솜씨거든요.”

며칠 전 정아씨는 자신의 머리를 당근색으로 염색하였다. 올해 유행색인가? 지금 우리나라에 몰아치고 있는 머리염색의 유행이 언제까지 갈 것인지 전문가를 만난 김에 물어보았다.

(아주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아요. 다만 그때그때 색깔은 조금씩 바뀌겠지요.)

내친김에 내게 어울리는 색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빨간색이나 형광색으로 하면 연예인처럼 보이지 않을까요?

(갈색으로 하세요.) 주 원장은 이 아줌마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게 잘 타일러주었다. (그게 자연스러워 보이거든요.)

미용실 정면에는 상장이 걸려 있었다. 1997년 괌에서 열렸던 세계미용대회에 참가해서 은상을 받은 것이었다. 그럼 주 원장의 장기는?

(커트예요. 저 상을 받을 때는 업스타일로 해서 받았어요.) 지난주에 머리를 자르지 않았더라면 바로 여기서 주 원장 솜씨로! 난 짧은 머리를 안타깝게 뒤적거렸다.

바로 그때 한 아주머니가 남편의 등을 떠밀며 들어왔다. 아주머니는 주 원장을 향해 아주 익숙하게 “짧-게-”라고 입모양을 크게 해서 말했다. 금방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 원장은 날렵하게 가위를 잡는다. 이 근처에 산다는 그분에게 ‘정아헤어숍’의 평가를 부탁했다.

“우리 아이들도 여기 데리고 오는데요. 사람들 모두 머리를 잘 자른다고 해요. 그런데 말이 안 통해서 불편하다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도 입모양을 크게 해서 하면 모두 알아들어요. 상관없어요.”

정아씨 미용실에 오는 손님들 중에는 격려를 해주는 분들이 더 많다. 더욱 열심히 하라는 덕담을 해주고 간다. 용운동은 정말 좋은 동네인 것 같았다. 그럼 최악의 고객은 어떤 유형인가?

(금방 이렇게 해달라고 했다가 금방 조렇게 해달라는 사람, 까탈부리는 사람이지요.)

겨울이 되면 말수가 줄어드는 이유

정아씨는 요즘 인터넷에 푹 빠져 있다. 채팅도 하고 게임도 하고. 한달에 두번 쉬는 날에는 주로 바다를 찾는다. 시원한 가슴이 되게 해주는 바다를 보고 오면 삶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진다고 한다. 청각장애인 국제 네트워크에도 연결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친구가 와서 머릴 자르고 가고 러시아에서도 다녀갔다.

정아씨의 연애관에 대해서 물었다.

(연애를 하고 싶은데 한참 무드 잡다가 수화가 나오면 분위기가 깨질 것 같아 그게 걸려요. 바닷가를 다정하게 걷던 연인이 갑자기 수화를 하면 무드 빵점이 아니겠어요?) 정아씨는 요즘 TV에서 청각장애인을 출연시키는데 거기서 나오는 수화는 정작 자기들한테는 안 통하는 말이라고 했다. 장애인복지, 의식발전에 도움이 되려면 진짜 장애인을 출연시키는 게 낫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도 언제든지 응할 용의가 있다는 말도 했다.

모든 청각장애인들은 특히 겨울이 되면 말수가 줄어든다. 손이 시려 말을 못하겠다는 것이다. 추운 겨울날 주머니에 따뜻하게 손 집어넣고 얘기하고 싶은 게 (우리 소망)이라고 쌩긋 웃는다.

마침 옆옆집 ‘돈키통닭’의 사장님이 주문한 통닭을 가지고 왔다. 이번 만남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신 분이다. 취재 전 전화상으로 정아씨와 직접 통화가 어려웠는데 중간에서 필담으로 연결해주었다. “요즘 장애인이라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잘 없지요”라고 말하며 그는 배달이 있다며 바쁘게 나갔다. 우리는 미장원 테이블에 통닭을 놓고 맛있게 먹었다. 닭다리를 잡고 아빠의 입에 넣어주는 딸에게 아버지가 말소리보다 더 큰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도 먹어-.”

“사랑은 눈으로 한다”는 그 느낌이 비로소 내 가슴에 꽉 차올랐다.

권은정/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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