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은 자신이 계속 사회적 관계망에 있지 않으면 게으르고 뒤처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관계의 기본 원칙은 내 행동과 상관없이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로운 사람, 도움되는 사람은 어떻게든 만나려 한다. 즉, 내 편에서 누군가에게 도움되는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 먼저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누군가를 알아두어야만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자기 아이를 유명 사립학교에 보내면서, 그래야만 나중에 사회적 네트워크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만난 적 있다. 물론 일리 있는 이야기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인맥을 통해 많은 것을 이루는 분위기였다. 그러니 만나면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면서 서로 친한 것처럼 착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상대를 이용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나는 인간관계는 지속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행여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누군가와 어울리면서 시간을 낭비하느니 그 시간에 자신의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 낫다. 사람들이 사회적 관계망에 집착하는 두 번째 이유는 과시욕 때문이다. 성공한 누군가를 안다는 것을 마치 내가 그 사람의 영역에 들어간 것으로 착각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그런 일로 다투는 부부를 본 적 있다. 부부 중 한 사람이 인맥이 넓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에게 명절 선물을 받곤 했다. 그러자 배우자가 질투를 하게 되고 사소한 다툼으로 번져 다른 것까지 트집을 잡다보니 본의 아니게 갈등 상황에 놓이더라는 것이다. 명절 때 누구에게 선물을 보내고 받는지가 한 개인의 위치를 말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역시 내 편의 위치가 달라지는 것에 따라 쉽게 스러지는 관계일 뿐이다. 먼저 찾아오는 사람이 되어야 사회적 관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누군가를 알아두는 것이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필요할 때 무언가를 부탁하려면 많은 사람을 알아두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이다. 요즘처럼 많은 것이 세분화된 사회에서는 내가 모르는 분야에 대해 조언해주는 사람들을 알아두는 것이 필요하다. 복잡한 세상에 내가 존재함을 알리는 것도 살아가는 데 필요하다. 그러나 ‘언젠가 필요할 때가 올 것 같아서’라는 목적으로 만나는 모임이나 관계가 과연 건강한지 좀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간관계는 중요하다. 우리는 관계를 떠나서 살 수 없다. 늘 말하지만, 우리 몸 자체가 관계이고 삶 자체가 관계이기 때문이다. 뭐든 지나치면 문제다. 인간관계도 자연스러운 관계가 아니라 오로지 목적을 위한 관계라면 문제가 된다. 내 삶을 돌아봐도 확실한 목적을 가지고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도움은 늘 내가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받았다. 목적이 있는 사람 관계는 내가 어떻게 해도 허망하게 끝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면서 느낀 것이 있다. 사회적 관계를 잘 유지하고 싶으면 내 편에서 사람들이 찾는 사람이 되어야지 그 반대가 되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사회적 관계망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고 몰두할수록 자신에게 투자할 시간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것은 쓸데없이 부풀어오른 관계망 속에서 거품을 빼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자면 인간관계에서 적절하게 거리를 둘 줄도 알아야 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 옷차림이 달라야 하듯이 인간관계에서도 적절한 거리를 두어야 하고 그에 맞춰 행동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것을 ‘똑똑한 거리두기’라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해주고 상대를 기분 좋게 해준다고 해서 그 사람과 내가 내 편에서 원하는 관계를 유지할 수는 없다. 일단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선을 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선에 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이 자기가 선택하고 싶어 한다. 따라서 상대 기분을 맞추려고 애쓰는 시간에 차라리 나의 발전에 더 신경 쓰는 것이 현명하다. 나와 지내는 시간도 필요해 나무를 너무 빽빽하게 심으면 자랄 수 없다. 나무를 제대로 키우려면 적절하게 베기도 하고 가지치기도 해주면서 여백을 줘야 한다. 너무 많은 인간관계에 함몰해 있으면 정작 자신이 원하는 순간에 바라는 만큼의 관계를 유지하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똑똑하고 적절한 거리두기를 통해 거품을 걷어내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남과 지내는 시간만큼 나와 지내는 시간도 필요하다. 그 편이 오히려 나의 인간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양창순 마인드앤컴퍼니 대표·신경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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