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머리에 쥐난 적은 없었다”…<공공의 적> 강우석 감독이 털어놓는 후일담
강우석 감독을 확실한 흥행감독으로 떠오르게 한 <투캅스>(1993) 때에도 피비린내가 나긴 했다. 타락한 고참 형사(안성기)가 신참(박중훈)에게 본때를 보이느라 살인사건 현장의 주검에 묻어 있는 피를 손으로 찍어 혀로 맛보며 ‘감식’하는 장면이 그랬다. 좀 역겹기는 했지만 코믹했다. 웬만해서는 ‘한국영화계 파워 1위’의 자리를 빼앗길 것 같지 않은 강 감독이 <투캅스>에 대한 부담을 머리에 이고 만든 <공공의 적>(1월25일 개봉)에서는 정색하고 피비린내를 진동시켰다. 아리따운 아내와 딸에게 더없이 자애롭던 펀드매니저 규환(이성재)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잔혹하게 죽일 때 웃음은커녕 고개가 절로 돌아갈 정도다. 이중성의 극치를 보여주는 규환이 자기를 불쾌하게 만든 택시운전사나 사람좋게 허허 웃는 중년의 사내를 뒤쫓아 해코지를 할 때도 아주 섬뜩하다. 그런데도 이 영화에는 웃고 즐길 공간과 함께 대중의 눈높이에 딱 맞춘 카타르시스가 넘치듯 모자라듯 기묘하게 배치돼 있다. 이건 마치 <친구>에서 호소력을 발휘한 누아르적 감각을 가져와 <투캅스>를 새롭게 만든 것 같다. (주)시네마서비스를 이끌며 제작·투자·배급 영역에서 탁월한 사업감각을 발휘한 강 감독답게 ‘지독한’ 영리함으로 잘 계산된 작품이라고 할까. 대책없는 사고뭉치 형사 철중 역의 설경구씨는 <박하사탕>과는 또다른 연기의 절정을 보여주는데, 이 배우를 기막히게 활용하는 솜씨에서도 빠르게 돌아가는 강 감독의 두뇌회전이 느껴질 정도다. 시사회날 씨네2000의 이춘연 대표가 “이 영화에 대해 잘못 말하면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다”고 농담 같은 진담을 할 정도로 영화계의 큰손이 된 강 감독을 지난 8일 충무로 사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완성도가 높다”는 세간의 평으로 몹시 흐뭇해 있었다.
이 사회에 대한 분노다
요즘 표정이 아주 부드러워졌다.
=돈으로부터 해방돼서 그렇다. 결재에서 손놓은 지가 1년 반 된다. 직업을 찾은 듯한 느낌이랄까. 이제 가야할 길은 이거(감독)다. 3년 만에 영화 만들어보니 참 행복하다. 요 며칠 사이 기분이 더 좋은 건 기자들 때문인데, 최근 중견감독들의 작품이 그다지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하지 않았나. 나도 그러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기자들이 찬사를 보내주니까, 매스컴에 의지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기분이 아주 좋다. 실은 시사회할 때, 극장에 못 있고 사우나하러 갔을 정도로 긴장했다. ‘1050만 (관객)설’이 감독이 한 말이라던데. =스포츠지 기자들이 하는 말이다. 올해 1천만명 관객 시대가 열릴 것 같은데, 이걸 나보다 임권택 감독님의 <취화선>(시네마서비스가 전액 투자한 작품)이 해줬으면 좋겠다. <공공의 적>이 흥행 잘되면, 난 얼마든지 기회가 또 있을 거고. <취화선>은 진짜 느낌이 좋다. 남들이 이상하게 돈 벌어서 이상하게 자선사업한다고 하는데 그런 거 아니다. 좀체 이런 말 하지 않는 임 감독님조차 흥행 예감이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 <공공의 적>은 업그레이드된 투캅스 같다. =별로 기분나쁜 말이 아니다. 자기가 자기를 극복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영화 찍으면서 <투캅스>가 엄청 부담됐다. <투캅스>보다 웃음의 질이 낮다거나 하면 완전히 맛이 가거든. 양이 적어도 질은 높인다는 목표였는데 그래서 찍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엽기적인 살인 뒤에 웃음이 나오도록 해야 하니 머리에 쥐가 나더라. 목으로 칼이 튀어나오는 장면은 영화 바깥에서 불필요한 소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난도질한다는 표현을 해야 하는데 다른 방법이 없더라. 마네킹 놓고도 칼로 찌르면 기분이 안 좋은데, 한번에 보여주고 빨리 넘어가려니 다른 수가 없었다. 완벽에 대한 욕심을 어느 만큼 냈나. =대체로 아침 6시부터 찍기 시작해 저녁 6시쯤이면 촬영을 끝냈는데, 스태프들 스스로 공무원팀이라고 할 정도였다. 일부러 쉬게 해주려고 그런 게 아니다. 워낙 신경을 많이 써서 오후 2∼3시가 되면 머리가 땅겨 더 일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머리에 쥐날 정도로 찍은 건 처음이다. 이 스트레스로 매일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영화 속 ‘공공의 적’은 너무 검증된 적이고, 상대적으로 힘없는 적 아닌가. 예컨대 진짜 힘있는 적은 감독의 전작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닌가. =이 사회에 대한 내 분노다. 가끔 텔레비전 보면, 원조교제나 성폭행으로 잡혀들어온 사람들이 아주 말짱하다. 경찰이 저거 순순히 끌고 들어온 건데, 막 화난다. 사채업자든 패륜아든 공공의 적은 아예 때려 없애자는 거다. 이 부분에 적당한 호응만 받으면 점점 더 어려운 <공공의 적> 시리즈를 만들 거다. 아예 코믹없이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더 나아갈지도 모른다. (이런 거 싫어하는) 평자들은 상관 안 한다. 대중에게 잘 먹히는 코드라서 그런 건 아니다. 영국 갔을 때, 길에서 경찰이 몽둥이로 행인 한명을 죽도록 때리는 걸 봤다. 그런데 지나는 사람들이 맞을 짓을 했다며 웃고 지나가던데, 난 이런 공권력을 기대한다. “난 진짜 워커홀릭”
한국영화의 메이저는 메이저답지 못하다는 지적 가운데 상업영화와 작가주의 영화를 모두 가지고 가려 한다는 점도 문제라는 말이 있다.
=결과적인 평가다. 찍기 전에는 모두 나한테 와서 흥행에 난리난다고 한다. <봄날은 간다>도 대박이라고 했다. 나한테는 <취화선>이 그렇다. 내 눈에는 이게 커머셜하게 보인다니까. <초록물고기>나 <이재수의 난> 제작할 때도 흥행은 절대 포기 안 했다. <이재수의 난> 때, 박광수 감독에게 그랬다. 이런 영화로 돈 버는 게 진정한 프로라고.
회사가 거대해지면 둔해지고 또 보수적으로 흐르게 되지 않을까 싶다. 어떤 견제장치가 있을까.
=사람에 대한 투자밖에 없다. 난 지금 사람을 찾고 있다고. 2010년에도 <공공의 적>을 이런 식으로 찍을 수는 없다. (<간첩 리철진> <킬러들의 수다>의) 장진, (<접속> <텔미썸딩>의) 장윤현 같은 후배 감독들하고 편집하면서 내가 노쇠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난 그 밑의 애들 가운데 잘 찾아서 이 시스템 물려주고 설립자였던 것으로 만족할 거다. (강 감독이 영입한) 김정상 사장한테도 내가 물러날 때 같이 물러나자고 말했다. 난 젊은이들 기호 100% 신뢰한다. 대학생들 계약동거도 하고, 고등학생은 절반 이상이 성경험 있다고 하는데, ‘여고생이 어디서 섹스하지’ 하는 따위의 생각이나 하는 우리 감각으로는 어림도 없다. 상업영화하는 사람은 특히나 물러나는 걸 잘해야 한다.
거세게 몰아붙이는 스타일이 결국 한국영화에 득이 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은 행복한가.
=그동안 행복하지 않았다. 돈 때문이다. 다음주에 부도난다는 생각 때문에 새벽 1시부터 아침 7시까지 담배만 피워대던 고비가 네번이나 있었다. 이제 계속 감독만 할 거다. 다른 감독들하고 같이 놀면서, 같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일 아닌 거는 아무것도 안 한다. 난 진짜 워커홀릭이다. 집에는 정말 미안하지만.
국내시장의 규모가 커지기는 했으나 한계가 있는 거고, 결국은 해외시장을 겨냥해야 하는 게 아닐까.
=절대적이다. 그런데 무리하게 해외가서 체인 만들고 하는 건 바보짓이다. 국내에서 터진 영화가 해외에서도 팔린다. 다행히 우리 감독들은 다른 아시아 감독들에 비해 서구화돼 있다. 합작? 그것도 안 된다니까. 한·일 합작하면 누가 좋아할 거 같아? 한국에선 일본 거 같으니까 싫고, 일본은 한국 거 같으니까 싫어하지. 내수에서 인정받는 게 최고다.
지난해 이른바 작가주의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에 참패한 것에 대해 어떤 대책이 필요하지 않나.
=배급사와의 교감이 부족했다. 영화 성격에 맞게 배급했어야 했다. 시작부터 서울 10개관 정도에 4주 정도 가면서 승부할 생각으로. 왜 관객을 바보취급하나. 무조건 넓게 벌여 봐라 봐라 한다고 보나? 왜 찍을 때 맘하고 나중 맘이 다르냐 말이다. 아무튼 도울 수 있는 일은 도울 생각이다.
다음 작품은.
=나는 <공공의 적> 시리즈 구상중이고, 장진 감독이 날 위해 쓰고 있는 시나리오가 하나 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돈으로부터 해방돼서 그렇다. 결재에서 손놓은 지가 1년 반 된다. 직업을 찾은 듯한 느낌이랄까. 이제 가야할 길은 이거(감독)다. 3년 만에 영화 만들어보니 참 행복하다. 요 며칠 사이 기분이 더 좋은 건 기자들 때문인데, 최근 중견감독들의 작품이 그다지 좋은 평가를 얻지 못하지 않았나. 나도 그러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기자들이 찬사를 보내주니까, 매스컴에 의지하는 스타일이 아닌데도 기분이 아주 좋다. 실은 시사회할 때, 극장에 못 있고 사우나하러 갔을 정도로 긴장했다. ‘1050만 (관객)설’이 감독이 한 말이라던데. =스포츠지 기자들이 하는 말이다. 올해 1천만명 관객 시대가 열릴 것 같은데, 이걸 나보다 임권택 감독님의 <취화선>(시네마서비스가 전액 투자한 작품)이 해줬으면 좋겠다. <공공의 적>이 흥행 잘되면, 난 얼마든지 기회가 또 있을 거고. <취화선>은 진짜 느낌이 좋다. 남들이 이상하게 돈 벌어서 이상하게 자선사업한다고 하는데 그런 거 아니다. 좀체 이런 말 하지 않는 임 감독님조차 흥행 예감이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 <공공의 적>은 업그레이드된 투캅스 같다. =별로 기분나쁜 말이 아니다. 자기가 자기를 극복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영화 찍으면서 <투캅스>가 엄청 부담됐다. <투캅스>보다 웃음의 질이 낮다거나 하면 완전히 맛이 가거든. 양이 적어도 질은 높인다는 목표였는데 그래서 찍는 내내 고통스러웠다. 엽기적인 살인 뒤에 웃음이 나오도록 해야 하니 머리에 쥐가 나더라. 목으로 칼이 튀어나오는 장면은 영화 바깥에서 불필요한 소음을 일으킬 수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 텐데. =난도질한다는 표현을 해야 하는데 다른 방법이 없더라. 마네킹 놓고도 칼로 찌르면 기분이 안 좋은데, 한번에 보여주고 빨리 넘어가려니 다른 수가 없었다. 완벽에 대한 욕심을 어느 만큼 냈나. =대체로 아침 6시부터 찍기 시작해 저녁 6시쯤이면 촬영을 끝냈는데, 스태프들 스스로 공무원팀이라고 할 정도였다. 일부러 쉬게 해주려고 그런 게 아니다. 워낙 신경을 많이 써서 오후 2∼3시가 되면 머리가 땅겨 더 일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머리에 쥐날 정도로 찍은 건 처음이다. 이 스트레스로 매일 술을 먹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런데 영화 속 ‘공공의 적’은 너무 검증된 적이고, 상대적으로 힘없는 적 아닌가. 예컨대 진짜 힘있는 적은 감독의 전작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아닌가. =이 사회에 대한 내 분노다. 가끔 텔레비전 보면, 원조교제나 성폭행으로 잡혀들어온 사람들이 아주 말짱하다. 경찰이 저거 순순히 끌고 들어온 건데, 막 화난다. 사채업자든 패륜아든 공공의 적은 아예 때려 없애자는 거다. 이 부분에 적당한 호응만 받으면 점점 더 어려운 <공공의 적> 시리즈를 만들 거다. 아예 코믹없이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더 나아갈지도 모른다. (이런 거 싫어하는) 평자들은 상관 안 한다. 대중에게 잘 먹히는 코드라서 그런 건 아니다. 영국 갔을 때, 길에서 경찰이 몽둥이로 행인 한명을 죽도록 때리는 걸 봤다. 그런데 지나는 사람들이 맞을 짓을 했다며 웃고 지나가던데, 난 이런 공권력을 기대한다. “난 진짜 워커홀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