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돼지의 장기를 이식한다?

392
등록 : 2002-01-09 00:00 수정 :

크게 작게

면역거부 유전자 제거로 이종이식 급진전… 아직은 실용화 위협하는 걸림돌 많아

사진/ 한국 과학자 3명이 참가한 미국 미주리대학 연구팀이 탄생시킨 형질전환 돼지. 이 돼지는 인체 거부반응 유전자가 없도록 복제됐다.
동물의 심장이나 신장·간·췌장 등을 사람에게 이식하려는 ‘희망사항’은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17세기에 러시아의 귀족은 개의 두개골을 이식받아 종교계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가까이는 1993년에 미국 피츠버그대학 연구팀이 비비원숭이의 골수와 간을 62살의 남자환자에게 이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환자는 생명에 치명적인 면역거부반응이 나타나 이식 26일 만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때부터 ‘이종이식’(異種移植: Xenotransplantation)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라 공개적인 시술이 중단되고 말았다. 이식의학의 개척자로 불리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로이 켈네 교수가 1972년에 개발한 장기이식 거부반응 억제제 ‘시클로시포린 에이’(Cyclosporine A)마저도 이종이식이라는 상황에서 속수무책이었다. 더욱 강력한 면역억제 기능을 가진 ‘KF506’과 ‘MMF’ 등도 실패의 고리를 자르진 못했다. 이런 가운데 미국 미주리대 바이오벤처 이머지 바이어 세러퓨틱스와 영국의 생명공학회사 PPL세러퓨틱스가 잇따라 인체 거부반응 유전자를 제거한 돼지를 복제 생산하는 데 성공해 이종이식의 실용화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됐다.

장기 크기 비슷하고 다산계인 돼지 유망

세계적으로 하루에 30여명의 장기이식 대기자들이 이식용 장기가 없어 목숨을 잃고 있다. 장기기증이 활발히 이루어진다면 굳이 동물의 기관을 이식하는 위험을 감수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기이식 대기 환자들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인체에 두개가 있는 장기일지라도 기증자가 드물고, 하나밖에 없는 것이라면 뇌사자의 마지막 선행을 기대해야 한다. 그렇게 기증받은 장기는 필요한 수량의 5%를 채우기도 힘들다. 국내에서는 2000년 2월9일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뒤에 절차상의 까다로움 등으로 인해 뇌사자의 장기기증이 이전보다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예컨대 지난해 11월30일 현재 심장과 신장의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사람이 각각 134명과 3242명이었지만 2000년 2월 이후 뇌사자의 장기이식은 심장 31건과 신장 173건에 지나지 않았다. 물론 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은 이식을 기다리다 죽어갔다. 이런 까닭에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난치병 환자들은 안전성을 의심받는 상황에서라도 다른 동물의 장기라도 이식받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지금까지 40여 차례의 이종간 장기이식 수술이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침팬지나 비비원숭이가 이종장기 공급원 노릇을 했다. 영장류의 종속이 인간과 가까이에 있어 유전적 구조가 인간의 것과 거의 일치한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장류의 장기는 인간에게 적합한 크기로 되기 어렵고, 필요한 수량을 확보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과 공통적으로 여러 가지 바이러스에 감염되기 쉬운 것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래서 새롭게 주목한 게 돼지였다. 돼지는 심장 등 장기의 크기가 인체의 그것과 비슷하고 혈액성상이 인간에 가까운 이점이 있다. 게다가 한번에 10여두를 분만하는 다산계이고 무균사육이 가능해 이종이식용으로 제격이었다. 스위스의 생명공학회사 노바티스는 이종이식 전문 계열사로 이뮤트란을 세워 사람과 유전적 차이를 줄인 돼지를 생산하기도 했다. 아직은 이식용 장기에는 이르지 못했고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에게 돼지의 피부를 이식하고 당뇨병 환자에게 돼지의 췌장에서 뽑아낸 인슐린을 만들어내는 세포를 이식하는 수준이다. 이뮤트란은 사람의 유전자를 수정란에 주입받은 형질전환 돼지들이 인체에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돼지들이 이종장기 공급원으로 나서는 데는 걸림돌이 수두룩하다. 무엇보다 인간과 동물간에 이질적인 생체가 결합되면서 나타나는 인체 거부반응이 최대 문제였다. 인간의 몸은 외부에서 침입하거나 내부에서 발생한 이물질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만일 미생물이나 이종단백질, 암화세포 등이 체내에서 활동을 하면 면역계가 곧바로 상황을 파악해 전시상태로 돌입한다. 다른 사람의 장기가 인체에 들어와도, 체내의 면역계는 임파구가 만들어내는 항체와 공동 전선을 형성해 이식장기의 세포막을 파괴하려고 한다. 그것이 다른 종의 것이라면 더욱 강력하게 맞설 게 틀림없다. 이번에 미주리대 연구진이 제거한 유전자는 이종장기 이식과정에서 초급성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데 관련된 ‘GATA’ 유전자이다. 이 유전자가 제거되면 이종장기에 대한 인체반응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물질이라는 꼬리표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면역거부반응에 유전자는 초급성뿐만 아니라 급성·만성 등에 관련된 많은 유전자가 있기에 이를 모두 해결해야 한다. 그래야만 돼지의 장기가 인체에서 적으로 취급당하기 않는다.

그렇게 면역거부반응이 없어진다고 해서 당장 돼지 장기를 이용한 이종이식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또다른 문제로는 먼저 돼지 유전자에 있는 ‘돼지 내인성 레트로바이러스’(PERV) 감염에 대한 우려가 꼽힌다. 침팬지에 의해 에이즈바이러스(HIV)가 사람에게 감염되는 것처럼 돼지바이러스 역시 기관이식을 통해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다. 레트로바이러스는 기관을 이식받은 환자뿐만 아니라 인체 접촉을 통해 불특정다수에게 확산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물의 조직이나 세포를 인체에 주입하려면 열처리 과정을 통해 감염 물질을 제거한다. 하지만 장기이식 과정에서는 별도의 열처리를 할 수 없기에 각종 바이러스 감염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무균 실험실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자란 돼지의 장기가 얼마나 생명력을 발휘할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돼지의 평균 수명은 8년 안팎으로 인간보다 훨씬 짧은 탓에 이식 장기가 아무리 능력을 발휘해도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사람과 동물은 대사작용과 다양한 질환에 대한 내성이 달라 인체에서 어떻게 서로 작용할지도 모르는 상태이다. 이렇듯 이종이식의 두려움이 가시지 않자 미국식품의약국(FDA)과 유럽의회는 1990년대 후반에 동물조직과 세포이식을 위한 임상실험 중단조처를 내리기도 했다.

바이러스 감염 등 불안… 치료용 복제 시작

어쨌거나 면역거부 유전자를 제거한 돼지는 난치병 환자들에게 희망의 불씨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손상된 장기의 이종이식에 대한 잠재적 가능성을 한껏 높여놓은 것이다. 하지만 안전성을 확보한 시술까지는 풀어야 할 걸림돌이 많아 적어도 10여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더구나 이종장기가 난치병 치료에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 인간복제를 통해 면역거부반응은 물론 다양한 생체 적합성 등의 문제를 해소한 ‘치료용 복제’ 장기들이 생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생명공학회사 어드밴스드 셀 테크놀로지는 치료용 복제가 눈앞의 현실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회사는 복제 초기단계의 인간배아와 난자에서만 태어난 인간배아를 이용하는 ‘처녀생식’(Partheno genesis)을 통해 활성화된 세포에서 줄기세포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 아직까지는 장기 생산보다는 당뇨병 환자를 위한 췌장세포, 심장마비 환자를 위한 심장재생, 양쪽 하지 마비환자를 위한 척수치료 등 자기면역장애나 혈액과 골수에 관련된 질환에 적용하려는 수준이다. 하지만 치료용 복제라는 이름으로 인간복제에 관한 비밀의 문이 열린 만큼 획기적인 진전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동물복제를 이용한 이종이식과 인간복제를 이용한 동종이식간의 치열한 인체진입 경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자못 궁금하다.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