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은 200만 개 촛불이 드라마틱하게 역사를 쓰는 극장이다.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들리는가, 민중의 노래>는 시민들이 변화의 열망을 담아 부르는 노래다. 한겨레 이종근 기자
“넘쳐 넘쳐 흐르는 볼가 강물 위에/ 스텐카 라진 배 위에서 노랫소리 들린다 (…) 교만할손 공주로다/ 우리들은 주린다.” 일제강점기 항일 독립군의 애창곡이던 <스텐카 라진>의 노랫말이다. 장중하고도 구슬픈 곡조의 이 러시아 민요엔 1670년대 러시아 황제의 폭정에 맞서 농민혁명을 일으킨 스텐카 라진과 공주의 비극적 일화가 담겼다. 1970~80년대 포크가수 이연실이 번안곡을 부르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 노래는 2014년 5월 ‘돈 코사크 합창단’이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내한공연에서 불렀다. 이 남성 합창단은 1921년 러시아에서 탈출한 코사크인들이 결성했다. ‘붉은군대합창단’(The Red Army Choir)과 볼쇼이합창단 버전도 유명하다. 키워드는 ‘굿바이, 공주님’. 2013년 진주의료원의 <벨라 차오> “오 내 사랑 안녕! 내 사랑 안녕! 내 사랑이여 안녕, 안녕, 안녕! (…) 이것은 파르티잔의 꽃이라고/ 자유를 위해 목숨 바친!” 2013년 4월6일 경남 진주의료원 현관 앞, 영어와 우리말이 섞인 <벨라 차오>(Bella ciao)가 저녁 공기를 갈랐다. 적자를 내세워 공공병원 폐업을 밀어붙이는 홍준표 경남지사에 맞선 ‘시민의 연대’ 모임이었다. 원래 이탈리아 노동요였다가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때 파르티잔들이 부르면서 유명해졌다. 조지 오웰의 소설 <카탈루냐 찬가>를 영화로 만든 켄 로치 감독의 <랜드 앤 프리덤>에서는 이 노래를 OST로 썼다. 1990년대 이래 반세계화 투쟁 현장에서 <인터내셔널가>와 거의 동급으로 애창된다. 여러 가수가 불렀지만 ‘영국의 꽃다지’로 불리는 아나키스트 밴드 첨바웜바(Chumbawamba)의 노래가 유명하다. 키워드는 ‘연대’. 1980년대 ‘5월’에서 ‘6월’로 행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단조풍의 <임을 위한 행진곡>은 비장한 가락에 결연한 의지를 담았다. 1980년부터 1987년 6월항쟁에 이르기까지 거리의 노래로 사랑받았다. 하지만 또 다른 비장미의 극치를 꼽으라면 아마 <오월의 노래>일 것이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 두부처럼 잘리워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 우리 가슴에 붉은 피 솟네.”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가장 비극적인 소재를 4·4조의 전통적 운율에 입에 짝짝 붙는 노랫말을 붙여, 단박에 최고의 애창곡으로 떠올랐다. 샹송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Qui A Tue Grand-Maman)라는 원곡에서 몇 소절을 따왔다. 하지만 피아니스트 이루마는 이 원곡을 ‘When The Love Falls’라는 슬픈 사랑 노래로 바꾸기도 했다. 키워드는 ‘저항’.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 “우리의 사령관 체 게바라여/ 당신의 영광스럽고 강력한 손은 역사를 겨냥하지요.” 체 게바라에게 헌정한 곡 <사령관이여, 영원하라>(Hasta siempre Comandante)다. 1959년 쿠바혁명 완수 뒤인 1965년 “영원한 승리의 그날까지”(Hasta la victoria siempre)라는 말을 남기고 게바라는 새로운 혁명의 정글로 떠났다. 그해 카를로스 푸에블라가 그를 위해 이 곡을 작곡했다. 키워드는 ‘영원한 승리’. 혁명과 격변의 시기, 노래는 넘쳐났다. 러시아혁명의 정신이 담긴 클래식 음악으로는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혁명)과 11번(1905년 혁명)이 있다. 단두대를 소재로 쓴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프랑스혁명기를 담았다. 혁명과 음악의 더 상세한 내용은 전북 정읍 학산중 역사교사 조광환이 지난 10월에 낸 <음악과 함께 떠나는 세계의 혁명 이야기>(살림터 펴냄)를 참고해도 좋겠다. 손준현 <한겨레> 대중문화팀 기자 dus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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