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장르에 집중된 대중의 편식증… 문화적 다양성의 싹이 병들어 가고 있다
1. 현상 2. 무서운 것(긍정적/부정적 모두) 3. 즐거운 것 4. 알 수 없는 것 5. 병신같아 재수없는 것 6.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완벽한 집단 욕망 7. 기득권의 권력유지장치
수수께끼 같은 7가지 요소를 빠뜨리지 않고 충족시키는 게 뭘까? 밴드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씨가 내놓은 답은 ‘대중의 취향’이다. 사실 이건 문답을 뒤집어놓은 것이다. 백씨에게 대중의 취향이란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그가 미술계쪽 친구들과 숙고한 끝에 이틀 만에 내놓은 답변이니 말이다. 당장 예술가와 대중 사이의 멀고먼 거리가 느껴진다. 예술가 처지에서 매력을 느낄 만한 건 7가지 가운데 하나(세 번째의 즐거운 것) 혹은 둘(네 번째의 알 수 없는 것) 정도가 아닐까.
영화도 가요꼴 날라…
영화와 가요는 ‘대중문화’ 중에서도 대중이 가장 즐겨 찾는 장르이자 가장 큰 산업으로 꼽힐 만하다. 그런데 그 인기 장르 한가운데에서 외롭게 ‘작가주의’를 고집하는 소수가 있다. 작가주의는 개성있는 스타일이나 주제의식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래서 그들 세계에 접근하려면 수고스런 품이 조금이나마 들 수밖에 없고, 작가주의와 대중의 취향은 애초부터 서로를 불편해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런데 작가주의와 대중 사이가 조금이라도 멀어질라치면 당장 걱정스런 목소리가 쏟아진다. 영화의 경우가 그렇다. 지난해 흥행몰이에 성공한 한국영화 9편이 전체 관객의 80%가량을 점유했다. 나머지 43편 정도가 나머지 20% 정도의 관객을 나눠 가졌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화라는 우려가 쏟아질 만하다. 게다가 편식증도 심했다. <친구>부터 <두사부일체>까지 조폭을 소재로 한 다섯편의 영화가 22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48편의 다른 한국영화가 동원한 2270만명과 맞먹는 수치다. 반면, 베니스영화제 관객상,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도쿄필름엑스영화제 그랑프리 등을 받으며 국내외에서 호평받은 <꽃섬>에 불과 1만여명의 관객이 찾아든 것처럼 2001년의 수작으로 꼽히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고양이를 부탁해> 등 이른바 작가주의 영화는 비참하다 싶을 만큼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이런 현상을 걱정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편식이 되풀이되면 몸이 영양 불균형에 빠지듯 영화계 체질이 기형적으로 변질돼 갈 수 있고, 이건 장기적으로 시장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다. 이렇게 보면 작가주의 영화는 먹기 쓴 영양소인 셈이다. 영화쪽에서 편식증이 심해지면서 ‘가요 꼴’이 날지도 모른다는 말이 들리기도 한다. 특정 장르가 시장을 독식하다시피하는 오랜 역사 끝에 다양한 음악의 싹이 고사해버린 듯한 가요계. 일본의 영화인이 한국 영화계를 부러운 눈초리로 보고, 한국의 뮤지션들이 일본을 부러워하는 건 일상이 됐다. “도쿄 시부야의 타워레코드에는 인디음악이 굉장히 큰 코너를 차지하고 있고 인기 차트도 마련돼 있어요. 주류음악도 우리와는 달라요. 1천만장이 팔렸다고 하면 음악적으로 굉장히 공이 들어가 있어요. 립싱크 같은 건 생각도 못하죠. 우리는 대중음악뿐 아니라 문화 전체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어요. 다양성이 존중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조류 말이에요.” 지난해 가을 일본 현지에서 1집을 내기 시작한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씨가 들려주는 말이다. 작가주의와 대중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갖추자는 외침은 공허하다. 그런데 다수보다 소수가 즐기는 작가주의를 그들 자신은 왜 고집할까. 아니, 어떤 매력이 있기에 그런 ‘쓸쓸한’ 길을 자청할까. 또 대중과의 소통 문제에서 그들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 영화감독과 대중음악가에게 질문을 던져 돌아온 답에 임의로 나눈 ‘작가주의 옷’을 입혀봤다.
행복한 작가주의|이상은 “거짓말하지 않아 좋아요”
“주의나 이즘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잘 그리는 것보다 자기만의 색깔을 갖고 있는 게 가장 중요한 미술의 경우를 음악쪽에 시도해본 거죠. 처음에는 개성이 강하고 잘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음악에 대해 거짓말하지 않고, 나중에 부끄럽지 않으니까 좋아요.”
<담다디>로 경쾌하게 출발해 어느 순간 자기 세계에 침잠한 듯 자기 색채를 확 바꿔버린 이상은씨가 낸 앨범이 벌써 10집에 이른다. 히트곡 <언젠가는>이 들어 있는 5집이 40만장 넘게 팔리기도 했지만, “홍보에 상관없이 마니아들이 구입하는” 앨범의 폭이 3만장 안팎이다. 이씨는 이 정도의 숫자에 아주 만족해한다. “소통하는 숫자가 적을수록 도리어 덜 답답해요. 상대적으로 소수라고 하더라도 3만명이면 적은 수도 아니고. 이들은 음반 전반을 두루 듣는 쪽이어서 구체적으로 이런저런 음악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아예 무국적 음악을 한다는 기분으로 임해요.”
대중의 취향에 대해서도 전혀 ‘적대감’이 없다. “자본주의에서 대중은 자기 시간을 확보하기보다 일에 쫓기듯 사는데, 이런 이들에게 ‘다른 취향을 가져보세요’라고 말하는 건 실례일 수도 있는 거 같아요. ‘잘하십니다, 잘하십니다’ 하고 응원해주고 웃으면서 돌봐드리는 게 엔터테인먼트라면, 저는 ‘이런 건 어떤가요’, ‘이렇게 하는 게 행복한가요’ 하고 같이 생각하기를 기대하는 거죠.”
시큰둥한 작가주의|백현진작가주의라는 딱지 붙여야 하나
사실 작가주의란 말 자체도 말썽이긴 하다. 고급예술과 저급예술이란 획일적인 이분법을 들이대려는 잣대라거나, 작가를 특권화함으로써 관객이나 텍스트 등을 객체로 떨어뜨린다는 지적이 그렇다. 영화 <반칙왕>에서 주제가 <사각의 진혼곡>을 구성지게 불러대던 ‘어어부 프로젝트’ 백현진씨의 ‘이의제기’도 귀기울 법하다. “자기 고민을 치열하게 하면서, 혹은 자기 취향에 집중하는 경향은 예술가들의 보편적 성격이지 작가주의에 크게 관계되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교회에서 굳이 ‘정숙’이란 표어를 붙여놓지 않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 특별히 어떤 무엇 때문은 아닙니다. 21세기, 오늘 현재, 저는 작가주의란 말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가 대중의 취향에 대해 정리한 7가지 가운데 ‘병신같아 재수없는 것’은 오해가 있을 수 있으니 앞 표현은 빼는 게 어떻겠느냐고 하자, “7가지를 모두 열거한다면 그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며 “더 망가질 것도 없다”고 한다. 가장 열성적으로 질문에 대해 고민한 그의 답은 계속 시큰둥하다. “작가의 자의식이 많이 함유된 작가주의 빵이 있다고 합시다. 그 빵은 잘 팔릴 수도 있고 안 팔릴 수도 있습니다. 그런 빵이 조금 덜 혹은 아주 많이 안 팔리는 것은 사실이나 항상 그 빵이 조금 소비되는 것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블록버스터를 표방한 영화가 꼭 좋은 흥행성적을 기록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도 상대적으로 좁은 대중과의 교류에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까? “좁은 교류라… 교류… 비주류 문화에 상당한 매력을 느끼기는 하나 지향하지도 지양하지도 않습니다. 가끔 그것은 제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회파 작가주의|임순례잠재된 관객을 향해 외치다
<세친구>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임순례 감독은 “수지타산을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좋은 영화를 만들어보겠다는 돈 많은 제작자의 호의를 바탕으로 두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이런 방식이 더 통할지 모르겠다”며 다소 어두운 이야기를 이어갔다. 대중의 취향에 대해 일관성이 없고 너무 유행에 휘둘려 문화와 일반상품의 소비행태에 차별성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작가주의와 대중과의 소통에 비관적 태도를 보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워낙 사회가 엉망이라 문화·예술에 대해 애착을 느낄 여유를 다 앗아가는 것 같습니다. 다 같이 잘사는 사회가 될 때, 정치가 바로 설 때, 문화가 바로 서고, 작가주의가 대중과 소통하는 길이 넓어진다고 생각하니 그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또 우리가 어릴 때 받은 문학·음악·미술교육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각 분야에서 작가주의를 지지하는 층이 상대적으로 너무 적어요. 조금은 넓어졌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작가주의의 생명력에는 긍정적이다. “자본주의 재생산 구조가 아무리 승하더라도 작가주의는 여전히 살아남으리라고 봅니다. 살아남는 규모는 그 사회의 예술·문화에 대한 존중 정도와 관계가 있겠지만.” 자신이 작가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영화적 출발의 모태이므로”라며 말을 이었다. “영화가 주는 오락적 재미, 감각적 위무가 아닌 삶에 대한 성찰, 다른 삶에 대한 감동,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혀주는 기능에 이끌려 영화를 시작했어요. 아직은 잠재돼 있지만 나의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층들이 남아 있다고 보고 그 층을 끌어들이는 대중적인 노력을 계속 할 것입니다.”
자부심 넘치는 작가주의|이광모탐구와 발견의 기쁨!
작가주의를 논하면서 <아름다운 시절>의 이광모 감독을 빼놓을 수 없다. 작품도 그렇지만 그가 이끄는 영화사 백두대간은 오래 전부터 진귀한 작가주의 영화를 수입·배급해왔다.
“전 엔터테이너가 아닙니다. 대중을 즐겁게 해주기보다 인생과 인간에 대해, 또 제 자신에 대한 탐구에서 기쁨을 느끼고, 그러면서 성숙해지는 제 자신을 다시 작품에 반영하는 작업을 하니까요.” 그의 작가주의 노선은 명확했다. “앙드레 바쟁이 영화는 한밤중의 어둠을 비춰나가는 손전등이라고 했는데, 조금씩조금씩 어둠을 밝혀나가는 것을 비유한 거죠. 작가주의는 결국 자기와 싸우는 작업이에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조정하고 이를 게임처럼 즐기는 부류가 있는 반면 탐구와 발견의 기쁨에 주목하는 태도랄까. 선택이고 욕망의 문제인데 그게 대중을 향해 있는 건 아니죠.”
그도 대중성의 문제를 고민한다. “자기와의 싸움을 치열하게 해냄으로써 작품성을 얻는다면 그게 잘 소통되도록 하는 게 대중성인데,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이뤄지면 참 좋은데 균형을 맞춰나가기가 힘들더라구요. 작가라고 일부러 대중성을 외면하는 건 아닌데 자기 탐구에 몰두하다보면 자칫 소통성을 소홀하게 되고. 시인 예이츠처럼 이 두 가지를 모두 잘 갖추면 진짜 위대한 거죠.” 또 대중의 취향에 대해서도 희망적이다. “사회문화적 욕구라는 게 획일화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분석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욕망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요. 다양성을 원하고 요구하는 욕구도 사회 속에 늘 잠재돼 있다고 봐요. 그러니까 대안영화, 실험영화가 계속 나오는 거 아니겠어요.”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영화와 가요는 ‘대중문화’ 중에서도 대중이 가장 즐겨 찾는 장르이자 가장 큰 산업으로 꼽힐 만하다. 그런데 그 인기 장르 한가운데에서 외롭게 ‘작가주의’를 고집하는 소수가 있다. 작가주의는 개성있는 스타일이나 주제의식을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가는 태도를 가리킨다. 그래서 그들 세계에 접근하려면 수고스런 품이 조금이나마 들 수밖에 없고, 작가주의와 대중의 취향은 애초부터 서로를 불편해할 운명에 처해 있다. 그런데 작가주의와 대중 사이가 조금이라도 멀어질라치면 당장 걱정스런 목소리가 쏟아진다. 영화의 경우가 그렇다. 지난해 흥행몰이에 성공한 한국영화 9편이 전체 관객의 80%가량을 점유했다. 나머지 43편 정도가 나머지 20% 정도의 관객을 나눠 가졌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의 심화라는 우려가 쏟아질 만하다. 게다가 편식증도 심했다. <친구>부터 <두사부일체>까지 조폭을 소재로 한 다섯편의 영화가 22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48편의 다른 한국영화가 동원한 2270만명과 맞먹는 수치다. 반면, 베니스영화제 관객상, 부산국제영화제 뉴커런츠상, 도쿄필름엑스영화제 그랑프리 등을 받으며 국내외에서 호평받은 <꽃섬>에 불과 1만여명의 관객이 찾아든 것처럼 2001년의 수작으로 꼽히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고양이를 부탁해> 등 이른바 작가주의 영화는 비참하다 싶을 만큼 관객의 외면을 받았다. 이런 현상을 걱정하는 이유는 명쾌하다. 편식이 되풀이되면 몸이 영양 불균형에 빠지듯 영화계 체질이 기형적으로 변질돼 갈 수 있고, 이건 장기적으로 시장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우려다. 이렇게 보면 작가주의 영화는 먹기 쓴 영양소인 셈이다. 영화쪽에서 편식증이 심해지면서 ‘가요 꼴’이 날지도 모른다는 말이 들리기도 한다. 특정 장르가 시장을 독식하다시피하는 오랜 역사 끝에 다양한 음악의 싹이 고사해버린 듯한 가요계. 일본의 영화인이 한국 영화계를 부러운 눈초리로 보고, 한국의 뮤지션들이 일본을 부러워하는 건 일상이 됐다. “도쿄 시부야의 타워레코드에는 인디음악이 굉장히 큰 코너를 차지하고 있고 인기 차트도 마련돼 있어요. 주류음악도 우리와는 달라요. 1천만장이 팔렸다고 하면 음악적으로 굉장히 공이 들어가 있어요. 립싱크 같은 건 생각도 못하죠. 우리는 대중음악뿐 아니라 문화 전체가 첫 단추를 잘못 끼우기 시작한 게 아닌가 싶어요. 다양성이 존중되고 인정받지 못하는 조류 말이에요.” 지난해 가을 일본 현지에서 1집을 내기 시작한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씨가 들려주는 말이다. 작가주의와 대중의 소통이 단절된 상태에서 문화의 다양성을 갖추자는 외침은 공허하다. 그런데 다수보다 소수가 즐기는 작가주의를 그들 자신은 왜 고집할까. 아니, 어떤 매력이 있기에 그런 ‘쓸쓸한’ 길을 자청할까. 또 대중과의 소통 문제에서 그들은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을까. 영화감독과 대중음악가에게 질문을 던져 돌아온 답에 임의로 나눈 ‘작가주의 옷’을 입혀봤다.
행복한 작가주의|이상은 “거짓말하지 않아 좋아요”

시큰둥한 작가주의|백현진작가주의라는 딱지 붙여야 하나

사진/ (박승화 기자)
사회파 작가주의|임순례잠재된 관객을 향해 외치다

사진/ (씨네21)
자부심 넘치는 작가주의|이광모탐구와 발견의 기쁨!

사진/ (씨네21)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