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악적인 남자와 짓밟힌 여자의 사랑을 보여주는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
김기덕 감독은 갈수록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큰 지명도를 얻고 있다. <섬> <수취인불명>이 베니스영화제 본선에 초청받은 데 이어 7번째 작품 <나쁜 남자>(1월11일 개봉)가 오는 2월 열리는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호출받았다. <나쁜 남자>의 주인공은 사랑을 얻으려고 ‘그녀’를 창녀로 만들어 자기 눈높이에 맞추고 자기 손아귀에 가둬두더니, 사랑을 얻은 뒤에는 생계수단으로 ‘그녀’의 몸을 팔게 한다. 그 이야기가 마치 가학과 피학 사이에서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할 거냐고 취조하는 것 같다. 사창가 깡패두목인 한기(조재현)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여대생 선화(서원)에게 매혹당하지만 그의 애인과 군중으로부터 심한 모욕만 당한다. 복수심과 소유욕에 사로잡힌 한기는 그가 생존해온 방식대로 일을 꾸미고, 그 계략에 빠져든 선화는 사창가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몸이 되고 만다. 한기는 매음방 거울과 연결된 밀실의 유리창을 통해 추락하는 선화의 몸부림을 지켜본다. 그리고 선화는 한기에게 동화돼간다.
남쁜 남자? 멋있는 남자?
바보도 아닌데 어떻게 대학생에서 금세 매춘부로 전락할 수 있느냐고 황당해할 법도 하다. 무자비한 폭력 앞에 무방비 상태로, 그것도 홀로 노출된 경험을 가져본 이라면 도리없이 무기력해지는 처지가 상상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자기를 철저히 파괴한 대상을 운명처럼 사랑하게 된다는 건 인간의 보호본능 혹은 이기심을 생각하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마치 복병처럼 나타난 타인에 의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삶을 만나게 되고 피할 수 없이 그런 삶에 길들여지는 운명”을 그리고 싶었다는 ‘연출의 변’이 위장처럼 느껴지는 건 이 때문이다. 영화의 시선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위악적인 인간들의 처절한 본능이 어떻게 타인을 다시 짓밟는지를 날것처럼 보여준 게 처음은 아니지만, 이번에는 명백히 감독의, 남성의 판타지가 개입해 들어간다. 한기의 겉은 악으로 보이지만 속내는 전혀 악하지 않고 오히려 연민스런 좌절과 자기희생적인 의리심으로 똘똘 뭉쳤다. 영화의 시선으로 보면, 한기는 나쁜 남자가 아니고 멋있는 남자다. 그런 그가 굽힘없는 자기 방식으로 사랑을 차지했으니, 그리고 ‘그녀’도 여기에 동의했으니, 이들 스스로 선택한 누추한 삶에 애정어린 축복이 필요한 게 아니냐고 ‘주장’한다. 김기덕 영화에서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타자화되고 대상화돼 판타지의 충족수단이 돼버렸다. 냉혹해보이지만 애정이 묻어나는 포주 은혜의 캐릭터나, 대낮 길바닥에서 한가로이 파를 다듬는 매춘부들 사이로 선화가 정감있게 끼어드는 모습을 통해 이런 세계에도 나름의 인간미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그들에 대한 적확한 포옹으로 다가오기보다 이런 판타지가 저급한 것이 아니라는 수식어로 보여진다. 매춘부를 왜 경멸의 대상으로 보느냐는 감독의 시선대로라면, 선화의 얼굴에서 어느 순간 그늘을 걷어내줘야 앞뒤가 맞는 게 아닐까.
“분노를 표하는 건 우습지 않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이래서 힘이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자기 판타지를 거세게 밀어붙이는 힘과 이를 형상화해내는 놀랍고 섬세한 상상력! 이야기는 어디까지 이야기일 뿐이니 여기에 어떤 분노를 표하는 건 우습지 않으냐는 감독의 영리함까지. 게다가 이야기 바깥으로 나가면, <나쁜 남자>는 <섬>에서 보여줬던 단아한 화면과 속도감을 넘어서는 연출 솜씨를 느끼게 해준다. 어디로 튈지 모르던 날선 상상력도 큰 호흡 아래 자유자재로 조율되고 있는 듯하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사진/ '나의 애인 창녀만들기' 가 부제처럼 달린 <나쁜 남자>는 가학과 피학의 세계에서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할 거냐고 취조하듯 달려든다.
“분노를 표하는 건 우습지 않나”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이래서 힘이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자기 판타지를 거세게 밀어붙이는 힘과 이를 형상화해내는 놀랍고 섬세한 상상력! 이야기는 어디까지 이야기일 뿐이니 여기에 어떤 분노를 표하는 건 우습지 않으냐는 감독의 영리함까지. 게다가 이야기 바깥으로 나가면, <나쁜 남자>는 <섬>에서 보여줬던 단아한 화면과 속도감을 넘어서는 연출 솜씨를 느끼게 해준다. 어디로 튈지 모르던 날선 상상력도 큰 호흡 아래 자유자재로 조율되고 있는 듯하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