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국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역사적인 막장드라마를 낳았다. 현직 드라마 작가가 현실을 빗대 드라마 기획안을 구성했다. 두 차례에 나눠 싣는 ‘프린세스 vs 프린세스’ 기획안은 지난호(제1139호)에 기획 의도와 인물 소개를 싣고, 이번호에 줄거리를 싣는다. 아직 드러나지 않은 진실이 많아 드라마는 더 이어질 수 없다. 작가는 “현실에서 드라마보다 더 극적 반전이 있기 바란다”고 전해왔다. _편집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그럼 왜 가, 거길?” 공식적으로, 엄마의 시대는 끝났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엄마와 외할아버지가 오랫동안 기생했던 왕의 시대, 엄마가 스퍼트를 올려 1~2년에 모든 걸 뽑아내야 했던 근라임의 시대가 끝났다. 사람들이 근라임을 쫓아내려고 매주 토요일, 광화문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소리쳤다. 근라임 옆을 지키던 사람들이야말로 권력에 가장 예민하다. 아마 다음 스텝으로 근라임을 배신하고 새로운 권력으로 잽싸게 옮겨갈 것이다. 그래서 유로라 집안의 재산이 몰수될까봐, 공든 탑이 무너지고 길바닥 아니 차가운 감옥으로 내던져질까봐 무서운 게 아니다. 학창 시절 유로라의 국사 과목 성적은 양 아니면 가였지만, 기나긴 대한민국 역사에서 그런 경우를 본 적이 없다. 결국 어떻게든 해먹는 방법을 알아온 자들이 이긴다. 돈이 많으면 백전백승이다. 다만 유로라는 엄마가 너무 무섭다. 이제 엄마가 제자리로 돌아오면, 유로라의 가족은 길고 지루한 나날을 보내야 할 것이다. 돈은 흘러넘치고, 욕망은 바로 채워지고, 해야 할 일도 숨겨야 할 일도 없이, 폐쇄된 성 안에서. 엄마가 거기서 만족하지 않으면 어쩌지? 엄마가 외할아버지에게 가업을 이어받은 것처럼, 나에게 가업을 이어받으라고 하면 어쩌지? 난 일하고 싶지 않은데…. 지금, 독립운동 할 절호의 기회! 엄마가 돌아오면, 엄마와 한판 승부를 벌일 생각이다. 난생처음 벌였던 첫 번째 승부에서는 유로라가 이겼다. 보험을 깨서 남자친구와 나가 살 때도 검소함 같은 건 배운 적 없다. 결국 결혼도 했고, 아이도 낳았다. 그러나 이제 남편 역시 유로라의 가족과 함께하는 생활에 익숙해졌다. 엄마의 가장 큰 무기는 돈이다. 엄마에게서 돈줄이 끊기면, 내 이름으로 된 재산을 엄마가 몰수하면, 방법이 없다. 엄마가 원하는 게 뭔지 아직은 모르지만, 딜을 할 무기는 있어야 한다. 지금이 엄마에게 적이 가장 많은 시기다! 그리고 적의 적은 동지라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것 같다. 그렇다면 대한민국 5천만 국민이 내 동지가 아닌가. 지금이 독립운동을 할 절호의 찬스다! 유로라는 얼굴에 점을 하나 찍고, 여권을 위조해 한국으로 들어온다. 역시 아무도 유로라를 알아보지 못한다. 감출 필요가 없을 때 유로라는 늘 당당했다. 지금은 정체를 숨겨야 하지만, 역시 대한민국의 정보력이란, 네티즌이 나서지 않는 이상 구멍이 많다. 네티즌을 깊이 신뢰하는 유로라, 인터넷으로 엄마의 뒷조사를 해본 결과 자신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검색 결과 엄마가 임신한 적 없다는데? ‘아냐, 이건 묻어야 해.’ 돈 많은 부모도 능력이다. 능력을 제거할 수 있는 가설은 신경 쓰지 않기로 한다. 엄마의 가장 큰 약점이라면 근라임일 것이다. 사람들은 엄마 퀸시리가 근라임을 조종했다고 하지만, 엄마야말로 근라임 없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근라임은 엄마의 숙주이고, 바이러스는 숙주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지금까지 밝혀진 것 외에, 근라임이 가장 목숨 걸고 지키려는 비밀이 뭘까. 2014년 4월16일 ‘비밀의 7시간’ 사람들이 가장 알고 싶어 하고, 알게 되면 가장 분노할 비밀. 더구나 엄마와 아빠가 모두, 그 비밀에 연관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근라임은 배가 가라앉고 아무도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떤 지시도 내리지 않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가 뒤늦게, 이 난리통과 무관한 듯 평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다는데,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유로라는 갑자기 불안해진다. ‘이건 내가 페이스북에 안 해도 될 말을 했을 때보다 더 치명적이야. 우리 엄마는 이 정도가 아닌 거 같은데…. 그렇다면 내 DNA는…?’ 고개를 젓는 유로라. 서둘러 이 가설을 머릿속에서 지운다. 아무튼 그 7시간은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 근라임이 엄마의 지시를 기다리느라 아무 일도 하지 못했든, 외할아버지에 대한 근라임의 존경과 사랑의 뜻으로 추모굿을 했든, 심지어 인신공양을 했든, 혹은 엄마가 성형시술을 시켜줘서 근라임이 잠들어 있었든…. 모두 엄마와 연결된 의혹이고, 정말 엄마가 그 7시간 동안 근라임이 아무 일도 하지 못한 데 일조했다면…. 이 비밀을 누구보다 먼저 알아낸다면, 엄마와 근라임 모두, 이제 내 말을 들어야 할 거야! 나 때문이라고, 그럴 리가? 유로라는 흥신소를 찾아간다. <한겨레21>이라는 간판이 붙은 흥신소는 직원들이 모두 사건을 맡아 바쁘기 이를 데 없다. 무시당한 것 같아 살짝 기분이 상한 유로라, 엄마가 ‘유로라 아빠가 누군지 알아?’ 한마디만 하면 해결 안 되는 일이 없었는데…. 이제 시골에 있는 아빠가 끗발이 있을 리도 없고, 어떡하면 좋지. 다행히 누군가 다가와주었다. “저, 우리 어디서 만난 적이 있나요? 많이 본 듯한 얼굴인데….” 자신이 유로라임을 들킬까봐 두근대는 심장을 누르며, 얼굴을 돌려 크게 찍은 점을 강조하는 유로라. “2014년 4월16일, 아시죠? 그 7시간. 그 시간 동안 근라임이 뭘 했나 말고, 우리 엄…, 아니 퀸시리랑 정윤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좀 조사해주세요.” 흥신소에서는 아빠의 전화 발신지부터 추적한다. “왜 엄…, 아니, 퀸시리가 아니라 정윤해부터 조사한 거죠?” 흥신소 직원은 무뚝뚝하다. “그때는 근라임이랑 정윤해가 더 친한 걸로 알려졌어. 둘이 사귀었다는 소문도 있고.” 유로라는 충격을 받는다. ‘아니, 나한테는 날 위해서 이혼하는 거라고 해놓고.’ 아무튼 그날 아빠는 근라임의 궁전 2km 인근에 있다가, 엄마 집 인근 100m 지역으로 돌아와 최소 2시간 이상 머물렀다고 한다. ‘그때 엄마와 아빠는 별거 중이었는데…. 아빠가 근라임과 함께 뭔가를 하고, 그것 때문에 엄마와 할 얘기가 있었던 건가.’ 로맨틱한 삼각관계를 그려보던 유로라는 다시 서둘러 고개를 젓는다. 이런 상상 안 한 뇌라도 있으면 사고 싶다. 흥신소 직원이 갑자기 훅 들어온다. “근데 우리 진짜 어디서 본 적 없나요?” 유로라는 다시 옆얼굴을 들이댄다. 고개를 갸웃대던 직원, 알아내길 포기하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때 유로라 공주가 국가대표를 날로 먹었다는 의혹이 나와서 승마협회가 난리가 났죠. 그리고 정윤해가 궁전 인근에 있던 시간과 퀸시리 집에 갔던 시간 사이의 공백이, 근라임 공주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잠수 탔던 시간이랑 얼추 맞아떨어져요. 다음날, 김벨 차관이 승마 관련해서 체육 개혁을 하라고 근라임의 지시가 내려왔다고 이야기하죠. 그런 걸 보면 근라임은 정윤해랑 퀸시리 말을 들었고, 그 둘은 자기 딸 국가대표랑 대학 보내는 게 큰일이었으니까….” 근라임 vs 유로라, 파헤쳐질 진실 아, 결국 대한민국에서 모든 일의 결론은 “내가 널 위해서 어떻게 했는데”가 되는 건가. 유로라는 무릎이 꺾이는 걸 느낀다. 모든 게 결국 나 대학 보내려고 벌어진 일이라는 건가. 그렇다면 엄마와의 한판 승부는 결국 엄마의 승리로 끝나버리고 말 텐데…. 제발 다른 이유가 있기를 바라는 유로라, 더 정확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엄마 몰래 근라임을 만나기로 결심하고…. (시간 점프) 우여곡절 끝에 근라임과 마주 선 유로라, 두 공주의 대결이 이제 막 시작되는데…. 유로라가 알게 될 충격적인 진실은 무엇일까! -진실이 밝혀져 ‘to be continued’ 될 수 있기를…. 김순득(필명) 드라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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