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판도라>는 한국에서 지진으로 인해 원전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가능한 상황을 그린 시뮬레이션과 같다. 영화는 재난 앞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린다. 국가 위기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 무능한 대통령부터 안전하다고 믿어왔던 원전에 배신당한 보수층 지지자, 의지와 상관없이 삶이 황폐해진 시민, 노후 원전이 보내온 경고를 미리 들었던 전문가까지. NEW 제공 (※이미지를 누르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좀더 가까운 현실을 살펴보자. 지난 9월12일 규모 5.1과 5.8의 경북 경주 지진 이후, 원자력발전소가 집중된 일대에 경고등이 켜졌다. 11월 초까지 500여 차례 이어졌다는 여진처럼, 공포는 지속되고 있다. 며칠 전 신문만 펼쳐봐도 영화 속 주민들의 목소리와 현실적 공포의 경계는 무너진다. 11월28일 20시57분, 경주 남남서쪽 8km 지역에서 규모 2.4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이 발표한 9월 경주 지진 이후 이어진 500여 차례 여진 중 하나다. 같은 날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고리 2호기 재가동을 승인했다. 원안위는 9월 경주 지진이 고리 2호기의 운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무능한 정부 대응은 ‘2차 재앙’ 비슷한 시점 정부,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전력공사 등도 여기에 가세했다. 경주 지진 이후 가동을 멈춘 월성원전 1~4호기의 내진 성능 강화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도 않은 채 재가동 신청을 했다. 이 발전소들은 활성단층이 가장 많은 땅 위에 서 있다. 특히 월성 1호기는 설계수명 30년을 훌쩍 넘었고, 잇단 고장으로 논란의 중심에 있다. 원전을 대하는 국가의 태도는 어떤가. 끔찍하지만 영화 속 광경이 현실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판도라>에서 정부는 노후 원전을 계속 가동하는 데 문제를 제기한 발전소 소장을 파직하고, 전문성이 전혀 없는 친정부적 인물을 자리에 앉힌다. 정부는 사고 발생 뒤에도 상황 전체를 파악하고 대응하는 게 아니라, 진실을 은폐하는 데 급급한다. 무력하고 무능한 대통령은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골든타임을 놓친다. 노후 발전소 곳곳이 부서지면서 냉각수가 새고 방사성물질이 마을에 퍼져나가는 것이 1차적 재앙이었다면, 정부가 지지부진 대응하는 사이 원전이 통째로 폭발할 수도 있는 2차적 재앙이 눈앞에 닥친다. 재난 상황은 언론을 통해 전국에 알려지고, 정부는 혼돈에 빠진 시민사회를 다독일 능력이 없다. 대규모 재난의 대비책 자체가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박정우 감독은 11월29일 기자간담회에서 “영화의 현실성이 90%에 가깝다”고 말했다. 실제 우리는 이미 2년 전 위기 대응 능력 빵점인 ‘사라진 국가’를 경험했고, 무능력한 대통령은 현재진행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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