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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혼자 사는 게 중인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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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2-01-09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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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의 먼 길을 가고 있는 아름다운 스님들의 모습 <봐라, 꽃이다!> <성철스님 시봉이야기>

사진/ 성철스님은 불같은 성전으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데 한 치의 벗어남을 용납하지 않았다. 지난해 그의 열반 8주기를 맞아 경남 산청군 생가 앞에 세워진 동상.(이용호 기자)
문학평론가 고 김현은 그의 문화론집 <두꺼운 삶과 얇은 삶>에서 “좋은 시집이나 아름다운 시를 읽는 일은 즐겁고, 그 즐거움은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 적이 있다. <봐라, 꽃이다!>(김영옥 지음, 호미 펴냄, 02-332-5084, 9천원)와 <성철스님 시봉이야기>(원택 지음, 김영사 펴냄, 02-745-4823, 8500원)는 진솔한 사람 이야기도 아름다운 시 못지않게 읽기에 즐거우며, 다른 사람과 그 즐거움을 나누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올 수 있음을 되새기게 한다.

보통 사람 이야기는 아니다. 스님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 시대 한국 불교의 유장한 풍경을 그려보이는 책들이다. 두 책이 다루는 대상은 다르면서도 같다. <봐라, 꽃이다!>는 “불교 신자도 아닌” 저자의 눈으로 지금 한국 불교를 떠받치는 중견의 스님들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성철스님 시봉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고 성철 스님의 상좌승이 옆에서 받들며 지켜본 큰스님의 삶을 이야기한다. 그러나 부딪치며 상승하는 구도의 생애담을 통해 대자대비와 궁극의 진리를 향해 정진하는 불가 ‘수행자’의 진면목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둘은 결국 한 갈래로 묶인다.

성철 스님은 욕쟁이?


성철 스님은 입적한 지 8년여 세월이 흐른 지금도 모르는 이가 드물 만큼 당대의 선승으로 꼽히는 이다. 그런 그가 그러나 당대의 ‘욕쟁이’이자 걸핏하면 제자들에게 불호령을 내리는 성격 급한 스승이었음을 아는 이가 불가의 밖에 또 얼마나 될까? “평소에야 감정 표현이 없는 편이시지만 일단 화가 났다 하면 고함을 지르며 박한 말만 골라 퍼부었다. 그래서 급할 때는 삼십육계가 최상이다.”

한번은 향나무 가지 위에 육중한 시멘트 포대가 놓여 있는 것을 본 성철 스님이 제자 한명에게 치우라고 시켰다. 제자가 다른 일에 열중하느라 잠깐 깜빡해버리자 곧바로 벽력같은 고함이 떨어졌다. 그 기세에 눌려 아무도 가까이 못 가고 벌벌 떨었다. 성철 스님은 향나무 가지를 누르고 있는 시멘트 포대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고승의 소탈한 태연자약의 면모를 엿보게 해주는 다채로운 에피소드를 하나둘 넘겨가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성철 스님의 그런 불같은 성정이야말로 부처의 법을 따르고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는 데 한치의 벗어남을 용납하지 않았던 엄격한 수행의 토대였다고 옛 상좌승은 돌이킨다. 스승의 형형한 눈빛과 웅혼한 기상에 매료돼 무명초(머리카락)를 깎고 불문에 들어선 제자에게 돌아간 첫 번째 임무는 쌀의 돌을 골라내고 밥을 짓는 공양주였다. 당시엔 드물게 대학까지 나온 제자가 낯선 부엌일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본 성철 스님은 이렇게 말한다. “니도 먹고 노는 것이 중인 줄 알았제. 그게 아이고, 혼자 사는 게 중인기라. 밥 할 줄 모르고, 반찬 할 줄 모르고 빨래 할 줄도 모르면 우째 혼자 살겠노. 혼자 사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라도 반찬 하는 것은 지가 할 줄 알아야제. 그래서 공양주 시키는 것인데 알지도 못하고 불만만 해. 이 나쁜 놈아.”

하긴 스스로의 공양부터가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쑥갓 대여섯 줄기와 2∼3mm 두께로 썬 당근 다섯 조각, 검은콩 자반 한 숟가락 반이 반찬의 전부였다. 거기에 감자와 당근을 채썰어 끓이는 소금기 없는 국과 어린아이 밥공기만한 그릇에 담은 밥이 한끼 공양의 전부였다. 그나마 아침 공양은 밥 대신 흰죽 반 그릇이었다.

1950년대 말 몇몇 신도들이 그의 생일상을 차렸다가 쫓겨나기도 있다. “중이 무신 생일이 있노.” 입적하기 직전 급성폐렴의 병상에서도 평생을 한결같이 품어온 무(無)자 화두를 뇌리에서 놓지 않았다는 병중일여의 경지는 그런 철저한 수행의 근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터이다.

<봐라, 꽃이다!>는 거대한 자락을 드리우고 떠난 거목 성철을 이어 한국 불교의 맥놀이를 한층 활력있게 만드는 스님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월간 <해인>이라는 40쪽 남짓한 절 집안의 회보에 ‘호계삼소’라는 제목으로 7년여 연재된 스님들 이야기 중 30편을 골라 홍현숙씨의 사진과 함께 묶어냈다.

연관, 명진, 지현, 보각, 동욱, 영운, 도법, 종림…. 이름의 수만큼 펼쳐지는 삶의 풍경도 다채롭다. 어떤 이는 잠없이 밤을 새우는 용맹정진의 참선수행으로, 어떤 이는 팔십 화엄을 우리말로 풀어내는 교학의 행장으로, 어떤 이는 불가의 제도와 살림을 정비하는 사판행으로 불가의 책무를 맡아 해내고 있다. 또 어떤 이는 속세간에 뛰어들어 주리고 헐벗은 이의 아픔을 어루만지는 보살행을 통해, 어떤 이는 팔만대장경의 전산화를 통해, 어떤 이는 생명운동과 지역활동이 결합된 사찰공동체의 모색과 실천을 통해 대자대비행의 궁극적 이상에 다가가고자 한다.

그들의 이야기는 지은이의 맛깔스런 문장에 어우러져 하나하나 아름다운 별자리를 이룬다. 사십년 견성의 선기를 쌓아온 봉암사 백련암의 법연 스님은 한밤중 발길에 걸리는 굵지 않은 독뱀 한 마리를 지팡이로 걷어내 풀숲으로 던져놓는다. “멀리 가서 살아라이. 나랑 이 산중에서 같이 살라믄 가까이는 오지 말아라이.”

도시든 산중이든 제대로 앉아 있어야

사진/ 실상사의 도법 스님은 도시든 산중이든 어디에 처하느냐가 아니라 거기에 제대로 앉아 있느냐가 수행의 근본문제라고 강조한다.
강원도 원주의 도심포교당에서 행려자 복지원을 운영하는 현각 스님은 “불교란 산중에서 별개의 세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역동적인 역할을 해내는 것이어야 함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믿는다. 실상사에서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보듬고 있는 도법 스님은 “도시든 산중이든 어디에 처하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거기에 제대로 앉아 있느냐가 문제”라고 말한다. “제대로 앉아 있다 함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역사인이라면 인적이 끊긴 산중에 앉아 있더라도 북한 아이들의 굶주림을 제 아픔으로 삼는다는 거지.”

그는 나아가 스님들의 행장을 지켜보며 ‘수행자’의 의미를 한길 더 깊숙이 성찰해보고 싶은 이들에게 맞춤한 책까지 펴냈다. <내가 본 부처>(호미 펴냄, 7천원)에서 그는 이제 막 출가한 행자들을 향해 “수행자 개인의 인격과 지성과 삶의 내용들은 특별할 것이 없”으면서도 “머리 깎고 먹물 옷을 입은 수행자라는 이유만으로 특별히 존경받고 대접받곤” 하는 타성을 버릴 때 진정 부처의 뜻을 따르는 “수행의 먼 길을 차질없이 갈 수 있다”는 진솔한 조언을 보낸다. 그리고 싯다르타의 생애를 통해 오늘 바람직한 수행자의 삶과 꿈을 되짚어 보여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건 그저 노래가사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스멀거림이 가끔 일곤 했다. 이제 이 책들이 되묻는다. “봐, 아름답지?”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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