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월드컵을 앞두고 보신탕이 다시 해외언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국제축구연맹 제프 블래터 회장이 월드컵 대회 기간 중 개고기 식용을 중단하도록 요구하는 편지를 한국축구협회에 보냈는가 하면, 프랑스 여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는 “한국의 보신탕은 인간의 친구인 개를 학대하는 야만적인 문화”라고 비난한 바 있다. 88올림픽 때와 달리 이번에는 ‘보신탕 문화를 제대로 알리자’는 주장이 국내에서 힘을 얻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문화 상대주의와 문화 보편주의가 어떻게 사이좋게 공존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골치아픈 문제로 남을 것임에 틀림없다.
도대체 개는 왜 수많은 야생동물들과 달리 인간의 집안으로 들어와서 이같은 골칫거리를 우리에게 안겨준 것일까. UCLA 의대 생리학과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퓰리처상에 빛나는 그의 저서 <총, 균, 쇠>(1997)에서 수많은 야생동물이 가축으로 선택된 과정을 ‘안나 카레니나 법칙’으로 설명한다. 불륜과 자살로 이어지는 파경을 통해 19세기 러시아 귀족계급의 결혼생활을 묘사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은 이렇다. ‘행복한 가정은 대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이 그렇게 된 이유는 제각기 다르다.’ 결혼생활이 행복해지려면 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이어야 하며, 그중 한 가지만 모자라도 결혼생활은 불행해진다는 이 구절을 다이아몬드 교수는 ‘야생동물의 가축화’에 적용했다. 야생동물들은 대개 한번쯤은 가축이 될 기회가 있었지만 가축이 되기 위한 조건을 하나라도 갖추지 못한 종들은 결국 야생동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축으로 키우려면 고기를 많이 먹는 육식동물보다는 초식동물(최소한 잡식동물)이 좋으며, 성장 속도가 빠르고, 감금상태에서도 번식이 가능하며, 성격이 포악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모든 조건들을 만족해 오늘날 인간의 울타리로 들어온 동물들이 바로 소, 돼지, 말 등 유라시아 지역에 살았던 14종의 초식 포유류들이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구절에 빗대자면, 가축화된 동물들은 모두 엇비슷하며 야생동물들이 가축화되지 못한 데에는 제각기 다른 이유들이 있었던 것이다.
개가 브리지트 바르도의 말처럼 ‘인간의 친구’가 된 것은 가축으로서의 조건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개는 원래 야생에서 ‘늑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1만4천년 전 순종적인 동물로 길들여진 이후 ‘인간의 가장 오랜 동반자’가 되었다. 잡식성인 개는 썰매를 끌거나 사냥에 이용되기도 했으며, 고대 중국을 비롯해 지중해 연안 유럽 국가와 아스텍 시대의 멕시코 등지에서는 오랫동안 소나 돼지처럼 식용으로 길러졌다.
브리지트 바르도는 개가 단순한 가축을 넘어 ‘애완동물’이기에 보신탕이 잔인하고 야만적인 문화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인도인들은 지금도 치타를 애완동물로 키우며, 고대 이집트인들은 두루미나 기린, 심지어 하이에나를 애완동물로 키우기도 했다. 일본의 아이누족이 유럽산 불곰을 키우거나 우리나라에도 도마뱀을 애완동물로 키우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애완동물이라는 딱지가 동물들에게 그다지 특별한 지위는 아니다. 자기 집 정든 개를 잡아먹으면 모를까, 개를 잡아먹는 문화 자체를 ‘야만’이라고 몰아세우려면 브리지트 바르도에겐 좀더 그럴듯한 논리가 필요할 것 같다.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일러스트레이션/ 차승미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