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률 감독의 열 번째 상업영화 <춘몽>은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경계의 존재들을 애처롭고 따뜻한 시선으로 보듬는다. 스톰픽쳐스코리아 제공
배경이 된 수색도 영화 속에서 고유한 지명을 사용한다. <경주> <이리> <두만강> <중경> 등 장소를 앞세우는 경향이 있는 장률 감독은, 그곳이 가진 경계성에 주목한다. 이전 작품 <경주>에 대해 그는 “삶과 죽음이 단절되지 않고 연결된 도시”라고 말했다. <춘몽>의 장소, 수색은 높은 빌딩과 아파트로 가득 찬 상암 디지털미디어시티와 철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 장률 감독은 제21회 부산영화제 개막작이기도 했던 <춘몽> 발표를 앞두고 한 인터뷰에서 두 동네의 상반된 표정에 대해 말했다. 실제 디지털미디어시티에 거주하는 감독은 그곳에서 첨단산업 구역에 사는 사람들의 ‘준비된’ 표정을 마주친다면 수색에서는 생기를 접했다고 했다. 그럼에도 감독은 수색을 두고 “도무지 컬러로 생각나지 않는 공간”이라고 말한다. 매끈한 디지털미디어시티가 무표정한 도시라면, 수색은 사람의 온기는 있어도 너무 낡고 오래되고 지쳐 색이 바랜 무채색의 동네 같다는 것이 그의 요지다. 수색과 디지털미디어시티 사이의 철길 아래 굴다리가 있다. 10여 분 지하도로를 통과하는 사이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미묘하게 다르다. 영화에서 예리와 세 남자가 영상자료원의 무료 영화를 보러 가기 위해 걷는 길도 이 굴다리다. 무채색 세계에서 무표정의 세계로 넘어온 이들은 매끈한 도시에 스며들지 못하고 쫓기듯 자기들 세계로 돌아간다. 이상하고 온화한 흑백의 꿈 영화는 내내 흑백 영상으로 그려진다. 영화 후반부에 잠시 색이 입혀지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꿈에 불과하다는 뜻일까. 혹은 있는 그대로의 색을 내보이면 너무 비루해서 영화는 내내 흑백의 시각을 취했는지도 모른다. 골목마다 공사장 가림막이 둘러쳐진 동네는 ‘물빛’이라는 오래된 이름이 무색하게 황폐하다. 술 마시고 웃고 떠들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인물들을 색을 입혀서 보면, 옹색한 일상이 너무 초라해 보일 것 같다. 몽롱한 빛을 덧입힌 흑백 영상은 어리숙한 아웃사이더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영화에서 이들은 단 한 번도 서로 부둥켜안지 않지만, 내내 서로를 보듬는 듯한 인상을 준다. 도시 주변부를 헤매다 결국 어느 곳에도 발 딛지 못할 것 같은 불안한 존재들은 이처럼 헐겁게 연대하며 꿈결 같은 삶을 이어나갔다. 별다른 음악도 대사도 없이 별안간 끝나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긴 뒤척임 끝에 여러 개의 꿈을 이어서 꾼 듯하다. 마지막으로, 뜬금없이 등장하는 여러 카메오들도 이 영화가 현실보다는 꿈을 그리는 데 주력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신민아, 유연석, 조달환, 가수 강산에, 변호사 송호창 등이 조금 이상하고 뒤숭숭한 꿈결처럼 잠시 나왔다 사라진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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