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2001년에 이루어진 가장 뛰어난 과학 분야 연구성과는 무엇이었을까? 미국의 과학저널 <사이언스>도 최근호(2001년 12월21일치)에서 ‘올해 최고의 과학적 성취‘를 선정했다. 2001년에 발표된 연구 중에서 한 분야를 새롭게 개척할 만큼 중요한 연구들을 선정하는 이 연말 행사는- <사이언스>에 실린 저널에 좀더 가중치를 주긴 하지만- 과학계의 흐름을 가장 정확히 짚어내는 종합과학저널이 선정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01년 <사이언스>가 선정한 최고의 과학적 성취는 ‘나노회로’를 만드는 데 성공한 데커 그룹 등 일련의 과학자들이 이룬 나노테크놀로지였다. 암세포를 찾아 파괴하는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개발이나 세포 내 RNA의 역할을 규명한 생물학적 성과들도 뛰어난 것이었지만, ‘나노컴퓨터’라는 물리학자들의 꿈에 한 발짝 성큼 다가가게 만든 분자전자공학기술에 <사이언스>가 좀더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나노테크놀로지를 연구하는 물리학자들의 꿈은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컴퓨터를 개미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 작게 만드는 것이다.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가전제품에 들어 있는 우표만한 크기의 실리콘 칩 위에는 현재 4천만개의 트랜지스터가 올라가 있지만, 나노물리학자들은 ‘분자’ 단위의 작은 화합물로 만든 트랜지스터로 이것들을 대체해 그 크기를 6만분의 1로 줄이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1974년 IBM사의 마크 래트너가 처음 제안한 분자크기 수준의 컴퓨터는 1980년대 분자들을 마음대로 옮기고 조사할 수 있는 ‘주사탐침현미경’(scanning probe microscope)이 발명되면서 그 현실적 가능성이 조심스레 제안됐다. 그뒤 일련의 고체물리학자들이 작은 분자 알갱이들이 컴퓨터 소자로 작동할 수 있을 만큼 좋은 전기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나노컴퓨터가 결코 과학자들의 공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1997년 앨라배마대학 로버트 메츠거 박사팀이 처음 ‘분자로 만든 다이오드’(한쪽 방향으로 전류를 흘려보내는 소자로서 전자회로의 기본 소자 중 하나)를 만드는 데 성공한 이후, 퓨즈나 트랜지스터처럼 간단한 소자를 만드는 데까지는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들을 서로 연결해 회로를 꾸미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 2001년 1월 하버드대학 찰스 리버 박사팀이 분자 크기의 소자들로 간단한 회로를 꾸미는 데 성공하면서 ‘나노회로’ 연구에 박차가 가해졌다. 뒤이어 UCLA와 IBM, 네덜란드 델프트대학 등에서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논리회로와 같은 간단한 회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사이언스>는 나노회로를 만드는 데 성공한 연구성과들을 나노컴퓨터 등장의 서막을 알리는 전주곡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나노회로의 등장은 조만간 컴퓨터 속도를 30배가량 올릴 것으로 예상되며, 분자전자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킬 것으로 보인다. 만약 나노물리학자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온다면, ‘18개월마다 컴퓨터 속도가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일러스트레이션/ 차승미
그러던 중 2001년 1월 하버드대학 찰스 리버 박사팀이 분자 크기의 소자들로 간단한 회로를 꾸미는 데 성공하면서 ‘나노회로’ 연구에 박차가 가해졌다. 뒤이어 UCLA와 IBM, 네덜란드 델프트대학 등에서 탄소나노튜브를 이용해 논리회로와 같은 간단한 회로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사이언스>는 나노회로를 만드는 데 성공한 연구성과들을 나노컴퓨터 등장의 서막을 알리는 전주곡으로 평가했던 것이다. 나노회로의 등장은 조만간 컴퓨터 속도를 30배가량 올릴 것으로 예상되며, 분자전자공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킬 것으로 보인다. 만약 나노물리학자들의 꿈이 이루어지는 날이 온다면, ‘18개월마다 컴퓨터 속도가 2배씩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될 것이다.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