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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이 기억의 끝을 다시 써보려 해

광주트라우마센터 ‘사진 치유 프로그램’ 참여하는 5·18 생존자들과 함께 낚시 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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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10-04 23:17 수정 : 2016-10-06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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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주화운동 생존자’ 양동남씨가 지난 9월23일 사진을 통한 마음 치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된 ‘주꾸미 낚시 출사’에서 새벽 여명 사이로 바다낚시를 시작하고 있다. 

“투두두두두…!”

지난 9월23일 새벽 5시를 조금 넘긴 시각. 9.77t급 선상낚시선 ‘블랙스톤호’가 충남 태안군 안면도 방포항을 벗어나기 시작했다. 달빛조차 없이 칠흑처럼 어두운 새벽바다는 요란한 엔진음에 치여 고요를 잃었다. 소풍 나선 개구쟁이들인 양 배에 오르기 전부터 들떠버린 다 큰 어른들은 키득거리며 낚시장비들을 살폈다. 달리는 선상 위로 선장이 틀어준 무명가수의 리듬 좋은 ‘뽕짝’까지 흥겹게 보태졌다.

들뜬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드러내는 것은 평소 이들에게서 볼 수 없는 낯선 풍경이다. 모진 고문과 구타로 자존감을 박탈당한 채 훼손된 자의식으로 간신히 삶을 지탱해온 그들이었다. 동지는 죽고 자신은 살아남았다며 죄책감 속에 웃음 잃은 36년을 버텨야 했던 그들이, ‘80년 오월 광주’를 온몸으로 막아섰던 그들이 지금 여기서 소년처럼 웃고 있었다.

이 ‘낯선’ 감정을 얼마나 기다렸나

13노트의 속력으로 1시간30분을 달려 도착한 바다 한가운데. 눈부신 햇살을 품은 낚싯대들이 번쩍거리며 허공을 맴돌다가 일제히 검은 바다 속으로 머리끝을 드리우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의 들뜬 기분을 가라앉힌 ‘5·18 민주화운동 생존자’들은 각자의 자리에 서서 바다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매년 9월부터 11월 사이 서해 바다는 봄철 산란기를 보낸 주꾸미들이 철철 흘러넘친다. 좋은 포인트를 찾은 우리도 질세라 낚싯대와 손끝의 감각에 촉을 세우며 몰입의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사진 치유 프로그램을 통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살피는 다소 무거운 시간이 훨씬 많았던 터라 이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사실 낯선 일이었다. 그러나 이 낯선 감정을 얼마나 고대하고 기다렸던가.

“우와!” “어이차!”


미세한 뱃고동 소리를 깨고 선상 여기저기에서 환호와 탄성이 터져나왔다. 고리에 걸려 올라온 주꾸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냉큼 어망 속으로 직행이다. 여섯 명의 5·18 생존자들은 서리짓에 나선 산골 개구쟁이들의 눈빛으로 말갛게 변해갔다.

“17년 만에 첨으로 바다 나왔지라. 같이 가자고들 헝께. 그란디 한쪽이 말을 안 들응게 쪼까 아쉽기도 허고. 뭘 헐 수가 없으니께.” 1980년 5월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했다가 붙잡혀 전남 화순경찰서, 505보안대, 상무대 영창 등으로 끌려다니며 수감생활을 했던 이성전(65)씨는 당시 받은 고문의 후유증으로 뇌졸중이 생겨 한쪽 몸이 마비되는 장애를 지니게 되었다.

“그래도 이렇게 나온 게 좋지라. 잡념이 좀 없어지네. 가만히 바라보니께 저 돌섬이 자꾸 눈에 들어와. 외로워 보이는 게 지금 내 꼴 같기도 허고. 저 옆짝이 등대를 봉게 마음이 짠하기도 허고요. 불 밝히믄서 사람 살리는 역할이잖여. 그란디 나라 지키라는 군인들이 나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응께. 속이 좀 타지라. 그래도 카메라를 들고 바라보다보믄 나를 비유하듯이 뭔가 느끼는 거이 자꾸 생기는디 그거이 재미나긴 허요.”

“사진 찍는 게 무슨 치유가 되냐”며 완강하게 버티던 1년 전 그의 모습이 떠올라 슬쩍 웃음이 나기도 했다. 무엇보다 고문받던 장소를 지속적으로 찾아가 불안을 누르는 평정심이 무엇인지를 이미 체험하고 받아들인 그였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자기감정의 실체를 인지하면서 방어가 아닌 ‘수용’의 의지를 갖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럼으로써 고통은 불안을 이기는 회복의 수단으로 전이될 수 있다. 물론 이 역시 스스로 해야만 한다.

이씨를 포함한 7명은 5·18 생존자들을 상대로 광주트라우마센터가 진행하는 ‘사진 치유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2013년 내가 처음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이들은 2기 참여자로 지난해 3월부터 2년 동안 사진을 통한 심리치유 과정에 함께한다. 이날도 치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낚시 출사’에 나섰다.

36년째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카메라는 꺼내도 그만, 안 꺼내도 그만이다. 사진 치유는 ‘이미지’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 자기감정을 만나는 과정을 만드는 것으로 충분하다. ‘주꾸미 낚시 출사’ 일행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1980년 5월, 기동타격대원으로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키다 체포돼 수감생활 중 받은 모진 고문으로 국군통합병원에 강제 입원했던 양동남(56)씨와 물고문과 고춧가루 고문이 가장 힘들었다는 이행용(61)씨는 끈끈한 우정을 확인이라도 하듯이 서로 짓궂은 농담을 쉼없이 주고받는다.

어느새 찾아온 점심시간. 식사 준비를 진두지휘한 사람은 곽희성(57)씨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으로 세상을 떠난 동지들에게 늘 미안하기만 했다”는 곽씨는 어딜 가나 항상 나서서 뒤치다꺼리를 챙긴다. 냄비 하나 가득 익어가는 면발 위에 잘 데친 주꾸미들이 수도 없이 떠 있었다. 모두가 낚싯대를 접고 허기진 배를 채우는데 말 그대로 ‘후루룩 꿀꺽’이다. 간간이 걸려든 갑오징어도 끓는 물에 데쳐진 채 접시 한가득 장식을 했다. 초장에 묻혀 입안 가득 털어넣으니 꼬들꼬들하게 혀를 타고 도는 감칠맛이 아주 일품이다. 이 맛이 처음인 ‘서울촌사람’들은 먹느라 경황이 없고, 이미 훌륭한 뱃사람인 5·18 생존자들은 동행해준 손님들에게 한 점이라도 더 먹이려는 듯 작정하고 챙기느라 손길이 분주했다. 아직 낚시가 서툰 손님들을 위해 막간을 이용한 기술교육도 다시 이어졌다.

“손끝에서 뭉클한 느낌이 오믄 바로 잡아채야 혀요. 그럼 갈고리를 탁 허니 물어.”

자신들과의 만남을 위해 일부러 찾아와준 게 그리도 고마운지 양동남씨를 비롯한 5·18 생존자들은 일일이 불편함이 없는지 살피고 물어보길 반복했다. 늘 고립감에 휩싸여 있던 그들이기에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함께하고자 기꺼이 온 손님들에게 느끼는 고마움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안다. 무자비한 국가폭력에 의해 자신의 정체성을 크게 훼손당했던 이들인 만큼 자기를 존중해주는 이들을 만나면 한없이 여린 감성의 아이가 된다.

“삑!”

좋은 포인트를 잡았다는 단발 신호음에 따라 모든 일행이 다시 낚싯대를 던지기 시작했다. 먹물을 내뿜는 갑오징어와 키조개도 잡혀 올라오고 누군가는 자동차용 컨베이어 벨트를 주꾸미 대신 건져올리기도 했다. 놓친 것은 팔뚝만 하고 잡힌 것은 손바닥만 해 보인다고 투덜거리는 소리도 들려왔다.

1980년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시민군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마찬가지로 크게 고문받아야 했던 서정열(55)씨는 몰입과 집중의 힘이 대단했다. 가만히 앉거나 서서 미동도 하지 않고 바다를 응시했다. 평소 말수가 적지만 사진 행위가 지닌 대면의 특성을 잘 이해하면서 적극적으로 자기의 아픈 기억에 직면해왔던 서씨는 즐기던 민물낚시를 그만두고 지금 한창 바다낚시의 재미에 빠져 있다. 너른 바다와 파란 하늘, 종종 따라붙는 갈매기들의 날갯짓을 보면서 자유의 흥을 충분히 즐기는 것이다.

이때 품에 넣어둔 카메라는 사실 꺼내도 그만, 안 꺼내도 그만이다. 사진 치유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하는 것이지만 이미지의 완성도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감정과의 대면을 통한 과정 자체에 큰 의미를 두기 때문이다.

사진이 ‘치유’를 돕는 방법

사진은 직면의 도구이다. 구체적인 사물이나 공간과의 대면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재된 감정과도 대면할 수 있는 것이 사진이다. 그 감정이 떠올리고 싶지도 않은 고통의 기억에서 올라온 것이라면 도리어 그것과 대면하는 일이 치유적 사진 행위의 의미에 더 다가서는 것이다. 스스로 바라보고 살펴서 상처 부위를 파악하고 적절한 치유의 손길을 건네야 한다. 내재된 상처에 대한 감정 해석의 재구조화를 통해 상처를 회복의 기제로 전환하는 것이 치유적 사진 행위의 실제적인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대면하고 마주하는 행위를 스스로 이루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미지의 예술적 완성도를 추구하는 일반적인 사진예술 활동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5·18 생존자들에게 유희의 감정은 아주 중요하다. 지독한 고문으로 무너진 자존감은 여전히 회복이 더디다. 시민을 지키겠다고 총을 들었지만 그 용기로 인해 수많은 이들의 죽음을 목도해야 했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에 그 오랜 시간 가슴을 죄며 살아와야 했다. 그래서 자기만의 유희 감정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바다낚시를 나선 그들이 제대로 유희의 감정에 빠져든다면 결국 이것이 자기 정체성과의 대면이나 다름없다. ‘놀러 가는’ 것이 양심의 가책이 될 이유는 전혀 없다. 상처와의 대면 못지않게 유희와의 대면 또한 모자라서는 안 된다. 5·18 얘기만 하면 얼굴이 굳지만 낚시 얘기를 하면 마냥 웃고 표정이 밝아진다.

“시내 있으믄 눈동자가 죽고 바다에 나오믄 눈동자가 삽니다!” 이행용씨의 확신에 찬 얘기에 공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치유의 힘은 자기 자신에게서 이렇게 나온다. 25년 경력의 선장 편근범(57)씨가 신호를 보냈다. 어느새 오후 2시. 이제 종료 5분 전이라고 한다. 어디선가 들리는 걸쭉한 목소리, “딱 한 마리만 잡고 땡 쳐!”

흡족한 표정으로 어망 정리를 시작한 박갑수(61)씨가 말했다. “맘이 편하잖아요. 다른 생각도 안 나고 여그만 집중허니께. 바다 보믄 마음도 편하고 그라요. 아파트 이웃들한테 잡은 물고기들 나눠주고 같이 먹으니까 다들 좋아하지라.” 1980년 당시 계엄군들의 무차별 구타를 당한 기억으로 오래도록 불면증에 시달렸던 그는 자신의 힘으로 주변 이웃들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에 큰 만족감을 가지고 있었다. 무력감에 지쳐 있던 자신을 털어내는 것이다.

“시야가 넓어지니 마음도 넓어진다”

뭍으로 나오는 길. 나는 아쉬움에 젖은 5·18 생존자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평일에 또 날 잡자고! 갈치 잡으러 가야제!” “오늘 끝나지도 안 혔는디 벌써부터 다음 생각을 혀?” “제철에 부지런히 다녀야제.”

이번에는 자기 느낌의 실체를 알도록 돕기 위해 감정이 어땠는지 물었다. 오랜 사이인 탓에 어떨 때는 귀찮아하기도 하지만 즐거움은 그대로다. 나의 일상을 같이 전하기도 하고 친구나 동생처럼 곁을 지키며 같이 웃고 떠들었다. “바다가 넓으니까 보는 눈도 넓어져요. 막히는 데가 없으니까. 시야가 넓어지니 마음도 넓어지고요. 시내에 있다가 오면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이 있으니까. 이런 데 나오면 이게 치유라고 생각하니께 자주 나와요.”

아쉬움을 뒤로한 하루를 보내면서 그들이 남긴 말이 진하게 가슴에 남는다. 기억 속 상처와의 대면은 당연히 아픔을 동반한다. 그러나 고통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려 들어가는 것임을 알게 될 때 상처와의 대면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을 용기를 얻게 되지 않을까.

글·사진 임종진 사진심리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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