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동물 감소 원인으로 떠오른 각종 감염증… 인간에게 치명적 영향 입힐 수도
야생동물들이 갑자기 떼죽음을 당할 때 사람들은 흔히 공해나 그 밖의 환경오염에서 그 원인을 찾으려고 시도한다. 물론 오염물질이 야생동물에게 많은 해를 입히는 것은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60년대에 DDT가 독수리를 비롯한 조류들의 떼죽음을 불러온 경우였다. 지금은 고전으로 꼽히는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바로 그런 배경에서 씌여졌다. 그러나 최근 바이러스나 균류(菌類) 등에 의한 감염증이 야생동물의 숫자를 급격하게 감소시키는 중요한 한 원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사람과 가축을 통한 전염도 주요한 감염 경로를 이루고 있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흰목대머리수리는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였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이 독수리의 모습을 인도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1986년까지도 인도의 한 국립공원에서만 2400마리 이상이 관찰되었지만 지난해에는 100여 마리, 그리고 올해에는 단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다. 봄베이 자연사학회의 회장인 아사드 라마니는 지금까지의 모든 자료와 연구보고서들을 토대로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말한다. 20세기 후반의 환경문제 중 가장 큰 수수께끼로 꼽히던 양서류의 급격한 감소에 대해서도 최근의 생태학적 연구는 감염증이 원인일 가능성을 가장 크게 꼽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그 주범은 양서류의 피부를 이루는 주요 단백질인 케라틴에 기생하는 균류로 밝혀졌다. 오스트레일리아와 중앙아메리카의 7개종의 양서류를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한 치트리디오미코시스(chytridiomycosis)라 부르는 신종 감염증은 1998년에 처음 알려진 것으로 아직 그 출현 경로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외에도 여러 가지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지만, 학자들은 이런 사례들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한다. 감염에 의한 개체군 감소, 특히 사람에 의한 바이러스 전파의 가장 두드러진 예는 이미 100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아프리카를 휩쓸었던 우역의 영향
아프리카를 떠올릴 때면 많은 사람들은 넓은 초원에서 사자가 얼룩말을 뒤쫓아 달리는 모습을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프리카가 처음부터 그런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럽인들이 아프리카에 도착한 이후의 변화된 모습이며, 그 변화를 일으킨 주역은 바로 우역(牛疫)이라 부르는 치명적인 전염병의 바이러스였다. 우역은 반추(反芻)동물에게 전염되는 급성 질병으로 사망률이 매우 높은 무서운 병이다. 1887년 이탈리아 원정대가 처음 아프리카에 도착했을 때 그들이 데리고 간 가축들에서 처음 이 바이러스가 아프리카에 퍼지기 시작했다. 이 바이러스는 아주 오래 전에 중앙아시아의 스텝 지방에서 유럽으로 건너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전파 경로는 주로 군인들이 원정을 나갈 때 데리고 다닌 가축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당시까지 이 바이러스가 아프리카에 전파되지 않았던 것은 사하라 사막이 자연의 방벽 구실을 한 덕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1887년에 이탈리아 원정대가 식민지로 삼은 에티오피아의 에리트레아 지방을 시작으로 서진(西進)을 시작한 바이러스는 무세운 기세로 퍼져나갔고 불과 5년 만에 대서양 연안까지 도달했다. 그리고 10년 만에 남아프리카 전역으로 번졌다.
그 과정에서 아프리카가 입은 피해는 엄청난 것이었다. 우선 누, 아프리카산 얼룩영양 등을 비롯해서 발굽이 있는 야생동물들의 4 분의 3이 몰살했다. 동물의 먹이사슬에서 토대와 같은 지위를 차지하는 이들 초식동물들의 대량 감소가 전체 생태계에 끼친 영향은 거의 파국에 가까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밖에도 마사이족을 비롯한 원주민들이 기르던 소떼의 거의 90%가 죽어나갔고, 살아갈 방편을 잃은 마사이족은 살아남은 소떼를 둘러싸고 전쟁을 벌이고 지나가는 대상(隊商)들에게 식량을 구걸하는 처참한 상황 속에서 전체 인구의 3 분의 2가 목숨을 잃었다. 당시 남아프리카를 식민통치하던 영국 당국은 이 죽음의 행진을 막기 위해 무려 1500km에 걸쳐 가시 울타리를 치고 감염된 소를 모두 사살했지만 1897에는 이미 최남단인 케이프타운 근처의 동물들까지 죽어갔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바이러스가 아프리카 전체를 황폐화시킨 것이다.
인간이 새로운 숙주로 지목되고 있다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야생동물 개체군의 급격한 감소는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먹이사슬의 파괴로 인한 생물다양성 파괴와 생태계 교란이 그 한 예이다. 앞에서 예로 들었던 아프리카의 경우, 풀을 먹고사는 영양과 누, 그리고 소떼의 급격한 감소로 그전까지는 몇cm 이상 자라지 못했던 풀이 지나치게 무성해지면서 가축과 사람에게 치명적인 트리파노소마를 일으키는 체체파리가 번성하게 되었다. 체체파리는 오늘날까지도 에이즈와 함께 아프리카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저해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좀더 심각한 것은 아직까지는 가설에 불과하지만 야생동물의 멸종이나 급격한 감소로 숙주(宿主)를 잃게 된 바이러스가 다른 숙주를 찾는 과정에서 인간을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최근 30년 동안 인류는 20여 가지의 새롭게 출현한 감염증(emerging infectious disease)에 시달리고 있다. 에이즈나 에볼라 바이러스 감염증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며, 이 신종 감염증들은 현재 인류에 대한 가장 큰 위협으로 부상하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그런 바이러스들이 원래 대형 유인원과 같은, 이미 그 바이러스에 적응한, 야생동물들 속에서 적절한 균형을 이루면서 살고 있다가 숙주가 사라지면서 인간에게 들어온 것일지 모른다는 가설을 제기하고 있다. 또한 직접 인간에게는 감염되지 않더라도 가축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생태학자들은 야생동물, 가축, 인간이 별개의 집단이 아니라 하나로 이어진 연속체임을 강조한다. 어느 한쪽이라도 균형이 무너지면 그 피해는 전체에 확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균형이 회복된다 하더라도 새로운 생태계의 구성과 그 속에서의 인간의 위치가 어떻게 바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김동광/ 과학평론가·과학세대 대표

(사진/바이러스 감염증이 야생동물을 감소시키고 있다.우역의 영향으로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든 아프리카 누. 사진 위는 인도에서 희귀종이 된 흰목대머리수리)

(사진/바이러스에 감염된 가축은 인간에게도 영향을 끼친다.에이즈 검진을 받고있는 아프리카인들)

(사진/인플루엔자 바이러스 모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