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몸과마음 대표 이종찬 교수… 의사에서 문화 디자이너로 변신한 사연
문화 디자이너. 출판사 몸과마음의 대표 이종찬 교수(아주대 의대)의 명함에 적힌 자기 소개다. 의대 교수이자 출판사 대표인 그가 디자인하고 싶은 문화란 어떤 것일까. “아는 게 의학이다보니 제대로 된 의료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 힘이 되고 싶습니다.”
다시 제대로 된 의료문화란 어떤 것일까. 몸과마음(mommam.co.kr, 02-581-5956)이 지난 2000년 11월 문을 열었다는 점이 그 의문에 실마리를 준다. 2000년은 어떤 해였나. 새 밀레니엄의 첫해라는 설렘도 잠시, 시민들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며 2000년을 내내 떠들썩하게 했던 이슈는 다름 아닌 의사파업이었다. ‘의사의 난’이라 불린 의료대란은 한국사회의 의료문화 전반에 대한 심각한 회의와 절망을 부른 일대사건이었다. 의대생에서 대학병원 교수들까지 모두가 하얀 가운을 벗어던지며 막 싹을 틔운 의약분업의 철폐를 요구했다. 진료권 보장을 통한 환자들의 궁극적 이익이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보다는 의약분업으로 줄어들지 모를 의사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수호하기 위한 한판 힘겨루기였다는 비판이 더욱 설득력을 얻었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의료소비자인 시민의 처지에서 의료현실을 개혁해야 한다는 주장은 의사들의 큰 목청 앞에서 힘없이 사그라졌다.
의료계의 미국 종속성이 문제
2001년도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 건강보험 통합문제는 여전히 확답없이 이익집단과 정치권의 갈등 속에 표류하고 있다. 의료소비자가 대접받고 의사들이 떳떳하게 진료하는 균형잡힌 의료체계 확립을 바라마지 않았던 시민들의 염원은 출렁이는 현실 속에 이대로 좌초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짙어지고 있다. “건강한 사회라면 이런 일그러진 의료현실에 대해 다양한 갈래의 반작용이 일어나야 할 겁니다. 몸과마음은 미약하지만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는 담론의 물줄기를 모으고 성찰하는 작업을 해나가려 합니다.” 의약분업과 함께 시작된 의료대란을 지켜보며 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한 마음을 다잡게 됐다. “의약분업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단순한 제도화만으론 의료체제의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평소의 인식을 새삼 확인했다. 한국의 의료문제는 단순한 정책의 변화로는 풀 수 없는 120년 서양의학의 역사를 통해 쌓여온 적폐임을 봐야 한다.” 결국 그는 우리의 역사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의료문화의 근원을 되짚어보는 차분하고 장기적인 문화운동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개업 1년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몸과마음의 이름을 걸고 나온 책은 어느덧 12권에 이른다. 다달이 한권 정도씩 착실히 펴낸 셈인데도 이 대표의 마음엔 다 차질 못했다. “아직 펴내야 할 책이 많이 밀려 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5권 정도가 더 나와야 했어요. 아직 멀었습니다.” 첫 작품은 <아픈 것도 서러운데>(김철환 외 지음, 9천원)라는 제목을 단 환자들의 목소리를 모은 책이었다. ‘의약분업시대 환자 권리장전’이라는 부제처럼 환자들의 권리를 강조하고 그 제도화를 주장했다. 놀랍게도 이 책에 대해 대한의사학회장 이호영 박사는 “환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들의 알 권리를 제도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여론화하는 소망을 갖게 될 것”이라며 추천사를 써줬다. 2001년 2월엔 <의사대란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이종찬 지음, 1만2천원)를 통해 “시장과 국가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갇힌 한국의 의료현실을 비판하고 그 대안을 모색했다. “정부는 보건의료산업의 국가경쟁력에 홀려 있고, 의료인들은 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벤처기업으로 엮을 궁리나 하고 있다. 의료개혁가들은 여전히 시장과 국가 사이의 줄다리기 시합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 의료계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과도한 미국 종속성이다. “서양의학이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미국의학일 뿐이죠. 미국의학의 특징은 의산복합체의 시장지상주의에 따른 수술과 항생제 위주의 공격성에 있습니다. 같은 서양의학이라도 유럽은 전혀 달라요.” 그는 “주변국에 중심국의 논리가 들어오면 더욱 급진화되듯이 자연치유력의 인정과 공공의료부문의 강화 등 유럽적 의문화에 눈감은 채 오히려 미국보다 더 공격적인 의료논리가 판치는 현실이 정말 문제”라고 강조했다. 책 발간 못지않게 전문가와 시민을 상대로 한 각종 강좌에도 그는 힘을 쏟고 있다. 2001년 2월 동서양 의학의 만남과 환자와 의사의 권리 등을 다룬 강좌를 열었으며, 새해 1월 말에도 ‘의학의 경계-한계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라는 주제의 ‘2002년 의문화 게릴라 강좌’를 준비중이다. “미셀 모량주의 <분자생물학의 역사>와 전우택씨 등이 쓴 <의료의 문화사회학> 등 몸과마음이 펴낸 책을 기본 텍스트로 해 지식인운동의 차원에서 출판과 강좌 등을 한데 엮어 시너지효과를 높이려는 겁니다. ” 교수라는 편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굳이 힘겨운 출판에 뛰어들기까지 고민도 없지 않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의문화 개혁의 통로로 생각했던 출판문화도 결코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는 점이다. “책만 나오면 전국의 시립도서관에서 편지가 옵니다. 돈이 없으니 책 한권만 기증해달라는 거지요. 지식기반 사회의 목소리만 요란하지 아직 공공지식기반의 형성은 멀기만 합니다.” 해외출판물을 향한 출판계의 무분별한 경쟁과 소규모 단발기획에 치우친 출판인력의 문제까지 그가 먼저 디자인해야 할 문화적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에게선 아직 새로 뛰어든 문화 디자인 작업에 치이거나 지친 기색을 찾아보기 힘들다. 바쁜 가운데서도 <한겨레21>에 과학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경영도 출발치곤 썩 괜찮은 편이라고 자신한다. “아직 빚은 하나도 끌어쓰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이 있고요.” 건강은 시스템과 문화의 문제
무엇보다 과연 팔리겠느냐는 예상을 깨고 모든 책들이 재판 이상씩을 발간한 시장 사정의 덕이 컸다. “의사들도 돈버는 재미에 눈이 팔려 그렇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자각이 강합니다. 우리가 의미있는 책을 내면 사보게 돼 있습니다.” <의학논문 제대로 읽기>나 <병원을 경영하라> 같은 의사들을 위한 실무서를 각종 학술대회장에서 직접 판매하는 전략도 잘 들어맞았다. <의학의 과학적 한계>(에드워드 골럽 지음·예병일 외 옮김, 1만3천원)나 <하버드 대학병원의 의사들>(멜빈 코너 지음, 1만8천원) 같은 교양서들에 대한 관심도 기대를 웃돈다. “지금 건강의 문제는 무엇보다 의료시스템의 문제와 직결돼 있습니다. 그런데도 의사와 소비자 모두 그런 인식에 눈감은 채였습니다. 그 공백을 건강서적과 명의산책류의 책들이 독차지하고 있었고요. 이제 시스템과 문화에도 눈길을 돌릴 때가 됐다고 봅니다.”
사실 그가 새로운 직업에 뛰어든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원래 치과대학을 나온 뒤 잘 나가는 개원의로 자리잡았던 그는 개업 3년 만인 1989년 유학을 결심하고는 미국 존스홉킨스의대에서 의료정책과 역사를 전공하게 된다. “3년 동안 꽤 큰 규모로 병원을 키워 돈도 막 쏟아져들어오려는 찰나였지요. 그런데 하루는 일과 뒤 그날 수입을 계산하는데 갑자기 ‘이렇게 사는 게 다가 아닌데’ 하는 걷잡을 수 없는 허무가 밀려들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오늘 출판인이자 의료문화 게릴라로서의 그의 변신과 실천은 그때 그의 몸과 마음을 사로잡았던 문제의식에서 이미 싹트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사진/ (이정용 기자)
2001년도 결코 순탄치는 않았다. 건강보험 통합문제는 여전히 확답없이 이익집단과 정치권의 갈등 속에 표류하고 있다. 의료소비자가 대접받고 의사들이 떳떳하게 진료하는 균형잡힌 의료체계 확립을 바라마지 않았던 시민들의 염원은 출렁이는 현실 속에 이대로 좌초해버리고 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짙어지고 있다. “건강한 사회라면 이런 일그러진 의료현실에 대해 다양한 갈래의 반작용이 일어나야 할 겁니다. 몸과마음은 미약하지만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는 담론의 물줄기를 모으고 성찰하는 작업을 해나가려 합니다.” 의약분업과 함께 시작된 의료대란을 지켜보며 그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절박한 마음을 다잡게 됐다. “의약분업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단순한 제도화만으론 의료체제의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평소의 인식을 새삼 확인했다. 한국의 의료문제는 단순한 정책의 변화로는 풀 수 없는 120년 서양의학의 역사를 통해 쌓여온 적폐임을 봐야 한다.” 결국 그는 우리의 역사 속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의료문화의 근원을 되짚어보는 차분하고 장기적인 문화운동의 관점에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개업 1년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몸과마음의 이름을 걸고 나온 책은 어느덧 12권에 이른다. 다달이 한권 정도씩 착실히 펴낸 셈인데도 이 대표의 마음엔 다 차질 못했다. “아직 펴내야 할 책이 많이 밀려 있습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5권 정도가 더 나와야 했어요. 아직 멀었습니다.” 첫 작품은 <아픈 것도 서러운데>(김철환 외 지음, 9천원)라는 제목을 단 환자들의 목소리를 모은 책이었다. ‘의약분업시대 환자 권리장전’이라는 부제처럼 환자들의 권리를 강조하고 그 제도화를 주장했다. 놀랍게도 이 책에 대해 대한의사학회장 이호영 박사는 “환자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들의 알 권리를 제도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여론화하는 소망을 갖게 될 것”이라며 추천사를 써줬다. 2001년 2월엔 <의사대란 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이종찬 지음, 1만2천원)를 통해 “시장과 국가라는 이분법적 논리”에 갇힌 한국의 의료현실을 비판하고 그 대안을 모색했다. “정부는 보건의료산업의 국가경쟁력에 홀려 있고, 의료인들은 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벤처기업으로 엮을 궁리나 하고 있다. 의료개혁가들은 여전히 시장과 국가 사이의 줄다리기 시합에 참여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한국 의료계의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과도한 미국 종속성이다. “서양의학이라는 말은 맞지 않습니다. 미국의학일 뿐이죠. 미국의학의 특징은 의산복합체의 시장지상주의에 따른 수술과 항생제 위주의 공격성에 있습니다. 같은 서양의학이라도 유럽은 전혀 달라요.” 그는 “주변국에 중심국의 논리가 들어오면 더욱 급진화되듯이 자연치유력의 인정과 공공의료부문의 강화 등 유럽적 의문화에 눈감은 채 오히려 미국보다 더 공격적인 의료논리가 판치는 현실이 정말 문제”라고 강조했다. 책 발간 못지않게 전문가와 시민을 상대로 한 각종 강좌에도 그는 힘을 쏟고 있다. 2001년 2월 동서양 의학의 만남과 환자와 의사의 권리 등을 다룬 강좌를 열었으며, 새해 1월 말에도 ‘의학의 경계-한계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라는 주제의 ‘2002년 의문화 게릴라 강좌’를 준비중이다. “미셀 모량주의 <분자생물학의 역사>와 전우택씨 등이 쓴 <의료의 문화사회학> 등 몸과마음이 펴낸 책을 기본 텍스트로 해 지식인운동의 차원에서 출판과 강좌 등을 한데 엮어 시너지효과를 높이려는 겁니다. ” 교수라는 편한(?) 자리에 머물지 않고 굳이 힘겨운 출판에 뛰어들기까지 고민도 없지 않았지만, 정작 더 큰 문제는 의문화 개혁의 통로로 생각했던 출판문화도 결코 그리 만만치는 않았다는 점이다. “책만 나오면 전국의 시립도서관에서 편지가 옵니다. 돈이 없으니 책 한권만 기증해달라는 거지요. 지식기반 사회의 목소리만 요란하지 아직 공공지식기반의 형성은 멀기만 합니다.” 해외출판물을 향한 출판계의 무분별한 경쟁과 소규모 단발기획에 치우친 출판인력의 문제까지 그가 먼저 디자인해야 할 문화적 과제는 한둘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에게선 아직 새로 뛰어든 문화 디자인 작업에 치이거나 지친 기색을 찾아보기 힘들다. 바쁜 가운데서도 <한겨레21>에 과학칼럼을 연재하기도 했다. 경영도 출발치곤 썩 괜찮은 편이라고 자신한다. “아직 빚은 하나도 끌어쓰지 않았습니다. 조금씩 도와주시는 분들도 많이 있고요.” 건강은 시스템과 문화의 문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