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있다. 이 집 창문은 한 장이 유독 투명하다. 그 창으로 바깥세상을 본다. 이 집의 이름은 ‘현재’다. 현재에 사는 모두는 예술이라는 창으로 세계를, 과거의 겹겹인 문화를 본다.
<예술, 역사를 만들다>는 예술 스토리텔러 전원경의 ‘예술 3부작’ 중 첫째 권. 예술의전당에서 한 강의가 책으로 묶였다. 입말에서 온 활자라 문장엔 자연스런 리듬이 스몄다. 600쪽 넘는 분량도 미끄러지듯 읽힌다. 300장 넘는 도판, 각 장에 딸린 추천 음악과 연대표가 책손님을 정성으로 대접한다.
루브르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책은 예술의 창으로 역사를 보여준다. 고대 이집트, 그리스·로마, 초대 기독교, 중세, 르네상스, 종교개혁, 바로크, 로코코와 계몽주의, 프랑스대혁명, 산업혁명, 제국주의, 양차 세계대전까지 아우르는 일에 미술뿐만 아니라 음악, 문학, 무용이 다층적으로 동원된다. 문화란 과거의 허다한 겹겹이다. 미술사가 케네스 클라크의 의견대로, 걸작 역시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다. 삶의 정수치고 쉽게 알 수 있는 건 없다. 간단하게 파악되지도, 설명할 수도 없다보니 삶은 풍부해진다. 방대한 이 책은 걸작을 걸작답게 대우하고, 걸작이 왜 걸작인지 증거하는 적절하고도 빼어난 시도다.
“사막 안에서 찬란하게 빛났던 이집트 예술은 왜 후대의 서양 예술에 계승되지 못했을까?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예술, 기독교 예술과 달리 왜 이집트는 겨우 공포영화의 이미지로만 남게 되었을까?” 고대 이집트 예술을 짚으면서 바로 현대가 온다. 1980년대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루브르박물관 재건사업을 벌인다. 가장 큰 고민은 박물관 입구를 어떻게 만들지였다. 그때 확정된 루브르의 입구, 즉 얼굴은 오늘날까지도 유명한 유리 피라미드. “서양 문명이 남긴 유산들을 단 하나의 이미지로 집약한다면,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큰 건물인 피라미드일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음악이 뒤따라온다. 모차르트가 마지막으로 작곡한 오페라 <마술피리>의 배경이 고대 이집트고,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도 이집트 문명이 무대다. 18세기까진 잊히다시피 한 이집트 문화를 알아본 나폴레옹을 거쳐 이집트를 재발견한 19세기 유럽 무대예술로 이어지며 시간, 인물, 장르가 곳곳에서 마주친다. 예술이 역사에 스파크를 일으킨다. 책은 이런 불꽃들로 그득해서 눈앞이 자주 밝아진다. 뿌연 현재에 갇혀 있어도 예술이란 창 앞에 서면, 자주 불꽃놀이가 펼쳐진다.
도상학이 흥미로운 독자라면
책은 유명한 작품들의 의미를 속속들이 읽어준다. 한 예. 피카소의 사실상 ‘마지막 대작’이라 할 수 있는 <게르니카>(1937)는 독재자 프랑코와 독일군이 스페인 게르니카를 폭격해 1600명 넘는 민간인이 학살된 사건을 고발한다. 학살의 주체는 ‘황소’로 그려진다. “죽음도 구경거리가 되는” 투우의 아이콘(icon)이 절묘하게 쓰였다. 손바닥에 성호가 그어진 채 나뒹구는 자들, 죽어 축 처진 아이, 그리고 가운데엔 신문(뉴스)을 연상시키는 빼곡한 무늬의 말 한 마리가 섰다. 이 참극의 ‘현대’성이 날 선다. 미술사 중에서도 형식보다 내용 해석에 주안점을 두고 문화·역사 문헌으로 작품을 분석하는 아이코노그래피(iconography·도상학)가 흥미로운 독자라면 더욱 반길 만하다.
석진희 <한겨레> 교열팀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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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역사를 만들다> 전원경 지음, 시공아트 펴냄, 2만9천원
석진희 <한겨레> 교열팀 기자 nin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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