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거기 있어줘요 헤비
대구에서 20년째 운영 중인 클럽 헤비… 밴드들 미발표곡 모아 기념 앨범 발매
등록 : 2016-06-02 10:44 수정 : 2016-06-04 15:34
록밴드 라이프앤타임은 얼마 전 전국 투어를 하며 대구 대명동 ‘클럽 헤비’에서 공연했다. 폰부스 역시 지난해 전국 투어의 대구 공연장으로 클럽 헤비를 선택했다. 최근 클럽 공연이 다시 잦아진 기타리스트 조정치도 클럽 헤비 무대에 올랐다. 장기하와얼굴들, 국카스텐, 디어클라우드 등 전국을 돌며 공연하는 밴드 가운데 클럽 헤비를 거치지 않은 이를 찾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대구에서 클럽 헤비가 갖는 상징성은 크다.
클럽 빵, 스팽글, 재머스, 푸른굴양식장, 롤링스톤스, 마스터플랜…. 1990년대 중·후반부터 인디동네 음악에 관심을 기울인 이들에겐 ‘추억이 방울방울’거리는 이름이다. 이 클럽들은 헤비메탈부터 모던록, 힙합, 테크노까지 당대의 새로운 경향을 소개하며 서울 마포구 홍대 앞과 서대문구 신촌을 음악의 거리로 만들었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지금까지 운영되는 건 클럽 빵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클럽 헤비의 의미는 남다르다. 서울이나 수도권이 아닌 대구에서 처음 시작해 지금까지 건강하게 대구의 신(scene)을 지키고 있다. 어느새 20년이 되었다.
클럽 헤비에 가면 ‘헤비누나’가 있다. 클럽 헤비의 신은숙 대표다. 클럽 헤비는 1994년 영상과 음악을 틀어주는 ‘헤비네’란 이름의 술집으로 시작했다. 신 대표는 그곳을 드나들던 손님이었다. 1996년부터 주말마다 공연을 열며 본격적으로 클럽 모습을 갖춰갈 때부터 신 대표는 옆에서 일을 도왔고, 1999년부터는 혼자 운영하기 시작했다.
대구는 예전부터 록의 기운이 강한 곳이었다. 대구 출신 기타리스트 김도균은 어린 시절부터 그런 기운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경북대의 일렉스나 영남대의 에코스 같은 캠퍼스 밴드가 많은 인기를 얻은 적도 있다. 영남대에서 주최하는 ‘영대락페’는 전통 있는 록 페스티벌이기도 하다. 지금도 꾸준하게 거리공연이 열리고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음악가가 늘었다. 클럽 헤비는 그런 수요를 충족시키며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같은 자리에 있다.
얼마 전 클럽 헤비 20주년을 기념하는 앨범 'CLUB HEAVY 20th'가 발표됐다. 클럽 헤비를 지지하는 이들의 후원금과 소셜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마련했다. “헤비에서 오래 활동했던 최고 실력을 가진 팀, 이제 막 헤비에서 공연을 시작한 팀 중 꿈나무라 불릴 만한 멋진 밴드, 그리고 헤비를 집처럼 생각하는 팀”들이 클럽 헤비의 20주년을 축하해주었다. 사람또사람처럼 대구에서 시작해 이제 서울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는 팀, 마치킹스나 노벰버 온 어스처럼 점차 이름을 알려가는 팀, 하우스보트와 우주전복처럼 대구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팀 등 다양한 밴드가 미발표곡을 들고 참여했다. 대구에 올 때마다 헤비에서 공연했던 부산의 언체인드, 대전의 버닝햅번 같은 다른 지역 팀들의 참여도 이어졌다.
신은숙 대표는 지금까지 클럽 헤비를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헤비 공연이 좋기 때문”이라는 간단하고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여기에 “더 큰 이유는 아직 헤비를 원하는 분이 많아서”라는 말을 덧붙였다. 앨범에 참여한 팀들의 헤비에 대한 헌사를 보고 있으면 그 애정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언체인드는 “계속 거기 있어줘서 고맙습니다, 헤비”라고 말했다. 계속 같은 자리에 있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우리는 잘 안다. 고맙습니다, 헤비.
김학선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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