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컴퓨터에 감시의 눈이…
등록 : 2000-08-30 00:00 수정 :
(사진/감시용 소프트웨어는 50달러 안팎의 가격에 구입할수 있다.위는 스펙터소프트사가 판매하는 '스펙터')
더이상 온라인은 자유로운 공간이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흐름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손길이 어디에든 미치는 탓이다. 일부 대기업은 직원들의 전자우편, 인터넷 접속, 컴퓨터 파일 등에 일상적으로 접근하기도 한다. 특정 사이트에 접속하지 못하도록 하는 차단 프로그램이 설치되면, 차단 프로그램을 뚫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한다. 디지털 시대의 창과 방패의 대결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형국이다. 가정에서도 감시와 통제가 이뤄진다. 채팅방의 대화까지 엿들을 수 있는 소프트웨어들이 널리 보급된 까닭이다. 감시용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면 컴퓨터와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상대방의 모든 행적을 은밀하게 추적해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
기업들은 직원들의 사이트 접근을 막는 프로그램을 주로 이용한다. 증권정보 사이트 등 이른바 ‘블랙 리스트’를 만들어 접근을 아예 봉쇄하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직접적으로 직원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정도는 아니어서 애교스럽게 봐줄 수도 있다. 하지만 인터넷 접속 경로를 감시하는 인터넷 감시용 소프트웨어는 사정이 다른다. 최근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인터넷 도청 시스템은 사생활을 침해하는 디지털 시대의 ‘빅 브라더’로 떠올라 논란을 일으켰다. 카니보어(Carnivore)는 거대한 데이터 속에서 의심이 가는 ‘고깃덩어리’(표적)를 순식간에 찾아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인터넷서비스공급업자(ISP)의 서버에 설치되는 카니보어는 네트워크상의 전자우편이나 정보 등을 탐지해 FBI의 하드드라이브에 복사해 둔다. 이 시스템은 불과 수초 만에 수백만통의 전자우편 내용을 자동 검색할 정도로 성능이 위력적이다.
개인의 사생활을 감시하는 소프트웨어들의 위험성은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값이 싸기 때문에 누구나 구입할 수 있고 불법인지 여부조차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는 실정이다.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 개인용 컴퓨터에 설치돼 그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이 감시당한다는 것은 섬뜩한 일이다. 만일 연인에 대한 불타는 사랑이란 이름으로, 비즈니스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요주의 회사원 등의 컴퓨터에 감시용 소프트웨어를 설치한다면 개인의 사생활을 근거로 파멸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미국 내에서는 감시용 소프트웨어로 인한 가정의 파산이 잇따르고 있으며, 음탕한 전자메일을 교환했다는 이유로 뉴욕타임스 사원들이 해고되는 등 기업의 사생활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고 있다.
현재 웹센스(Websense), 윈왓웨어(WinWhatWhere), 사이버 스냅(Cyber Snoop) 등 수많은 감시용 소프트웨어들이 온라인상에 널려 있다. 가장 대표적인 제품은 미국 플로리다주의 스펙터소프트(Spectorsoft)가 개발한 스펙터(Spector)라는 소프트웨어. 원래 이 프로그램은 아이들의 온라인 서핑을 지도 감독하려는 부모들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런데 효과는 엉뚱한 곳에서 나타났다. 자신의 연인이 사이버섹스를 하는 것을 밝혀낼 수 있게 해주어 감사하다는 전자우편들이 회사로 날아들었던 것이다. 슬라이드쇼를 펼치듯 수초에 한번씩 잡힌 스크린들이 펼쳐지는 이 프로그램은 해당 컴퓨터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이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모든 것이 기록된다.
사이버 중독자의 ‘온라인 사랑’이 싹트면서 감시용 소프트웨어의 수요는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하지만 전통적인 형태의 도청과는 다른 감시용 소프트웨어가 불법인지 아닌지 여부는 아직 명확하게 판결나지 않았다. 감시용 프로그램 제작 회사들은 겉으로는 자사의 프로그램이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웹 사이트에는 “부인, 남편, 연인이 부정을 저지르는지 알 수 있다”는 문구로 사용자들을 유혹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용자가 어느 특정인에게 전자메일로 보냈던 괴상한 농담이나 분홍빛 대화 내용이 여러 사람에게 공표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김수병 기자
soo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