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익계산을 맞추기 위해 이들은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는 이른바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MMORPG·Massive Multiplayer Online Role Playing Game)을 통해 검증된 방식으로 수익을 뽑아낸다. 대개 정형화된 흥행 공식에 따라 ‘장르게임’을 만들기 때문에 다양성이나 파격, 사회적 함의, 실험성 같은 것은 기대하기 어렵다. 또 수지를 맞추기 위해 게임 내내 돈을 쓰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캐릭터 레벨 상승’ ‘더 강한 아이템’ 같은 코스가 필수적이다. ‘게임을 위한 게임’ ‘이용자들의 스트레스를 판매하는 게임’이란 비판을 받는 까닭이다.
반면 인디게임은 남의 돈이나 힘을 빌리지 않으니,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마음대로 만드는 경우가 많다. 다른 문화 장르에서 ‘인디영화’(독립영화)나 ‘인디음악’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게임 속에서 거침없이 사회적 현실을 비판하거나,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게 할 수 있다.
특히 국내 인디게임들은 한국적 현실을 고스란히 반영해 인기를 끄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 ‘금수저·흙수저’ 논쟁이 확산하면서 인디게임계에도 ‘흙수저 탈출’ 게임이 급증하는 추세다. ‘금수저 친구들’이란 부제를 단 인디게임 <사장이 될 거야 2>도 그런 경우다.
전작 <사장이 될 거야>(1편)는 알바생으로 시작한 주인공이 정규직 사원을 거쳐 사장까지 승진하는 내용을 담았다. 사장으로 승진한 주인공이 ‘새파랗게 젊은 회장이 횡령을 하면서 파산하게 되고, 주인공을 믿고 따르는 ‘흙수저 직원 3명’과 창업과 부동산·주유소 사업 등을 통해 재기에 나선다는 내용이다.
<거지키우기>는 구걸 알바를 동원해 사업을 키운 뒤, 기업과 도시를 잇따라 인수한다는 다소 황당한 설정인데도, 지난해 9월 출시돼 단숨에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게임 속 ‘흙수저들의 반란’인 셈이다.
인디게임 제작사 ‘퀵터틀’이 내놓은 게임 <내 꿈은 정규직>은 취업난 속에 ‘열정페이’ ‘3포 세대’ 등으로 규정되는 사회 초년생들의 고충을 담아 지난해 국내 구글플레이 10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다.
인디게임이 소규모 자본과 인력으로 만들어졌다고 얕볼 게 아니다. <마인크래프트>는 전세계적으로 1억 장 이상 팔린 ‘인디게임의 전설’이다. 게임 화면 갈무리
3인 회사를 운영하는 퀵터틀 이진포 대표는 자신의 잇단 실직 경험을 게임에 녹였다. 게임 속에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이완구 전 총리의 ‘비타500 박스 사건’ 등을 대담하게 패러디했다.
‘금수저 가정’에서 돈을 마음껏 소비하는 것을 소재로 한 <만수르 게임>은 2014년 말 첫선을 보인 뒤, 구글플레이 9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고, 후속작 <만수르 게임 2: 금수저>도 인디게이머들에게 호평받고 있다.
인디게임 안에서도 독특한 감성의 ‘비주류 인디게임’도 있다. <자고 일어나니 번뇌가 넷>은 모태솔로 30년차인 주인공이 어느 날 아침, 말 형상의 반인반수로 변신한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워메, 시방 이게 뭐시여”를 연발한다. 그러나 결국 자신에게 ‘모스부호’를 통해 지구인의 번뇌를 모으는 능력이 생긴 사실을 알게 되고, 직접 외계인들의 침략을 막는다는 독특한 설정이다.
이 밖에도 <암버스터즈>처럼 팔씨름을 소재로 한 ‘액션 아케이드 게임’이나 드래곤을 무찌르는 기사 같은 롤플레잉 게임 <용사는 진행 중>도 인디게임에서 만날 수 있다.
인디게임이 적은 돈을 들였다고 얕잡아볼 게 아니다. 대표적인 게 인디게임 업계의 전설로 불리는 <마인크래프트>다. 스웨덴 출신의 제작자 마르쿠스 페르손이 만든 이 인디게임은 2009년 5월17일, ‘클래식 버전’이 처음 출시된 이후 PC 버전만 1억 장 이상 팔렸다. 단순한 사각 나무목재를 조립해 무한 확장하는 방식으로 우주공간까지 구축할 수 있다. 전세계적 팬덤 현상이 빚어지면서 제작사 ‘모장’이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MS)사에 25억달러(약 2조9600억원)의 막대한 금액에 인수되기도 했다.
국내 인디게임도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인디게임 개발자 모임 ‘인디라’ 대표이자 부산게임아카데미 김성완 교수 등이 1990년대 ‘1세대 인디게임 개발자’로 세계적인 인디게임 경쟁장인 GDC(Game Developer’s Choice) 어워드와 IGF(Independent Games Festival) 어워드에서 이름을 알린 뒤, 최근에는 더 강한 경쟁력을 갖춘 개발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2014년 국내 1인 개발자 박용옥이 만든 <바운스볼>은 공을 튕기며 퍼즐을 푸는 단순한 게임인데도, 국외에서만 1천만 다운로드 이상을 기록했다. 인디게임 제작사 SUD가 만든 모바일 자동차 시뮬레이션 게임 <주행의 달인>은 지난해 다운로드 횟수가 1억 건을 넘었다. 대형 게임업체를 포함해도 넷마블게임즈 <모두의 마블> 이후 국내 역대 두 번째 1억 다운로드를 돌파한 사례다.
최근 구글의 자밀 모레디나 게임사업 부문 인디게임 담당자가 방한해 “다른 나라의 인디게임이 퍼즐 같은 수준이 다수인 것과 달리, 한국은 게임 시스템과 비주얼 면에서 모두 수준이 높다. 한국 밖 제작자들에게 새 경험을 만들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게임 내려받기’를 서비스하는 다국적 플랫폼 ‘스팀’이나 소니가 운영하는 ‘플레이스테이션 네트워크’ 등이 인디게임을 적극 지원하면서, 유통에도 조금씩 숨통이 트이고 있다.
국내 유통망 숨통 틔어야
그러나 국내 인디게임 개발자들 대부분은 여전히 인력과 자금, 유통망 확보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특히 국내 게임물관리위원회가 인디게임 사업자로 등록하기 위해 400만원가량 심의료(모바일 플랫폼 제외)를 책정하는 등 진입 초기 단계부터 장벽이 있다.
이정엽 서울대 연합전공 정보문화학 연구교수는 자신의 책 <인디게임>에서 “이 때문에 많은 인디게임 개발자들이 국내 시장을 포기하고 한국어 서비스를 하지 않은 채, 스팀이나 PSN과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서 해외 유저를 대상으로 인디게임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도 ‘인디 정신’은 살아 있다. 네이버카페 ‘인디게임 개발자 쉼터’를 보면, 바둑용 인공지능 알파고의 알까기 버전인 <알까고>, 퍼즐게임 <택배왕 키우기>, 주식게임 <사라파라 주식왕>, 계약직 사원의 사장 자리 도전기인 <사장이 될 거야> 등 톡톡 튀는 게임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국내 최대 ‘인디게임 개발자 커뮤니티’인 페이스북의 ‘인디라! 인디게임개발자 모임’에서도 5천여 명의 개발자가 새 게임 개발을 위해 불꽃을 튀기고 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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