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이후엔 거리의 노인들이 달리 보였다. ‘나는 그들을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줄곧 했던 것 같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짤짤이 순례길’의 노인, 고독사하는 노인을 볼 때도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언덕을 오르고 있다. 오직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무언가로부터 미끄러져, 자신이 있는 장소에 승인되지 못한 존재로 서 있다는 사실, 그래서 어디에서도 그들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일본에는 ‘이바쇼’(居場所)라는 말이 있다. ‘있는 곳, 거처’ 등으로 직역되는데, 사회학·건축학에서 ‘안심할 수 있는 장소, 자기 본연의 모습 그대로 있을 수 있는 장소’의 뜻으로 쓰인다. 일본 도쿄대학 니시데 교수는 “그곳에 있다는 것이 타인으로부터 수용·승인되는 장소를 비로소 이바쇼라고 할 수 있다”고 정의했다. 최근 고령화로 고독사 등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실외 공간의 ‘노인의 이바쇼’에 대한 연구도 있는 모양이다. 어느 벤치, 나무 그늘이 드리워진 진출입로 등 노인이 머무는 장소의 패턴을 연구해 이들을 위한 공간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복덕방 노인의 눈물 시공간이 나로부터 멀리 휘어져 더 이상 ‘있어도 되는’ 장소가 없어졌을 때,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 지칠 줄 모르고 이야기를 토해내던 복덕방 노인은, 어느 순간 돌연 무너져내렸다. 가끔 위트 있게 찡긋거리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나는 허둥대다 그의 쭈글쭈글한 손을 잡고 같이 울고 말았다. ‘어버이연합’은 어떤 노인들에게 ‘이바쇼’일 것이다. 어버이들을 볼 때마다, 울던 복덕방 노인을 떠올린다. 이것이 비극인지 희극인지 알지 못하지만, 그들에게서 미래의 내 모습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이로사 현대도시생활자 ※카카오톡에서 <한겨레21>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