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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자전거 왕국, 중국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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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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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일러스트레이션/ 차승미
영화 <첨밀밀>은 돈을 벌러 홍콩으로 건너온 중국 본토의 가난한 두 남녀 여명(여소군 역)과 장만옥(이요 역)이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면서 사랑과 이별을 거듭하다 우여곡절 끝에 뉴욕 시내 한복판에서 해후를 하게 되는 애틋한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영화에는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한다. 여명이 자전거를 타고 뉴욕 시내를 지나가는 모습을 장만옥이 얼핏 보고 막 쫓아가다가 놓치는 장면이 그것이다. ‘자동차’와 ‘복잡한 뉴욕 시내’로 상징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자전거’로 대변되는 중국 본토에서 온 두 남녀의 순수한 사랑을 얼마나 엇갈리고 뒤틀리게 만들었는가를 잘 표현한 장면이다.

자전거는 중국사람들에게 아주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중국사람들이 출퇴근을 할 때 대부분 자전거를 이용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세명당 두대꼴로 자전거가 있다고 하니, 나이 드신 분이나 어린이 빼고는 거의 다 한대씩 가지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에서는 자동차가 귀해서 자전거 수가 자동차 수의 무려 250배에 이른다. 6km 이내인 경우에는 버스나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자전거를 타는 게 더 빠르다.

만약 중국의 경제가 좀더 발전해서 자전거가 모두 자동차로 대체된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중국경제를 생각해볼 때 머지 않은 미래에 벌어질 만한 상황이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따르면, 지금 현재 전세계적으로 사용되는 기름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기름을 앞으로 중국인들이 자동차로 소비할 것이며, 그 자동차들이 내뿜는 매연으로 인해서 심각한 ‘대기오염’이 초래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중국에 자동차 문화가 확산되기 위해서는 포장되지 않은 도로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국 전체의 포장된 도로의 길이(1만5천km)가 뉴욕시의 포장도로보다 짧다고 한다.

중국이 ‘자전거 왕국’이라는 말은 곧 ‘거대한 자동차 시장’이라는 말과 통한다. 언젠가는 그들도 자동차를 타고 다닐 테니 말이다. 그래서 지금 각 나라의 자동차 회사에서는 중국사람들이 탈 만한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해 연구중이다. 값이 싸고 유지비가 적고 소형이라는 자전거의 장점을 충분히 살린, 그래서 한 사람이 탈 만큼 폭이 좁고, 초강력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서 가볍고, 덕분에 연료비도 적게 들고, 또 전기 모터를 사용해서 경제적이면서 매연이 없는 자동차를 개발하고 있다. 미국의 포드나 크라이슬러, 독일의 벤츠, 일본의 혼다, 심지어 스위스의 시계 회사인 스워치 같은 회사에서는 이미 이런 자동차를 개발해 모터쇼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가격은 약 900만원 정도.

그러나 재미있게도 중국에서는 이런 자동차에 전혀 눈길도 주지 않고 있으며, 해마다 자전거 판매량은 늘어만 가고 오히려 기존의 자동차들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자동차를 사려면 자전거와는 전혀 다른 ‘진짜’ 자동차를 사야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오히려 중국인들을 위한 ‘자전거를 닮은 자동차’는 미국에서 인기가 높다. 차 모양이 귀여워서 동네에서 타고 다니거나 레저용으로 구입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래’ 하면 머릿속에 최첨단 미래형 자동차가 바글거리는 미국형 사회를 떠올리지만, 좀더 편리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무공해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사회도 충분히 대안적인 미래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자전거를 닮은 자동차’는 중국을 위한 차가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차일지 모른다.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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