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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베스트앨범, 잘 고르면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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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26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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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가 추천하는 소장할 만한 베스트음반들…초보자에겐 좋은 입문서

이미지와 소비현실 사이의 괴리가 심한 문화상품 가운데 하나는 베스트음반이다. 대체로 베스트음반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부정적이다. 음반산업의 관점에 보면 ‘수익추구의 극한’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이른바 ‘팬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이 컴필레이션 음반은 전성기가 지난 뮤지션이나 해체, 사망 등으로 이제 더이상 활동할 수 없는 음악인에게서 판권을 가지고 있는 제작자가 마지막 한 방울의 단물을 빼먹는 수단이다. 비틀스나 아바, 엘비스 프레슬리 등 시대를 초월해 인기를 얻는 가수들은 음반 제작자들에게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가수와 제작사간 소송까지 간 김경호씨나 지난해 문제가 됐던 토이의 베스트앨범처럼, 뮤지션에게 직접적인 불이익까지 주는 급조된 베스트앨범의 범람으로 베스트음반 제작이 제작사의 횡포와 직결되기도 한다.

싸구려 상품, 제작사 횡포, 그러나…

진지한 음악팬들에게 편집음반은 수공업적 예술품이 아닌 조악한 싸구려 상품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일종의 짜깁기인 베스트앨범에서는 한 가수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음반 결결이 쌓인 음악적 고민과 성찰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뮤지션 역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신의 정규음반 목록에서 베스트앨범을 제외시킨다. 그러나 대체로 베스트음반의 판매율은 정규앨범을 훨씬 웃돈다. 베스트음반이 가지는 경제성 때문이다. 한 뮤지션의 웬만한 열혈팬이 아니고서는 한두곡씩 인기곡이 흩어져 있는 정규음반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인지상정이다.


한 뮤지션에게 호기심을 가지기 시작한 소비자가 베스트음반을 입문서로 삼는 것은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그 아티스트가 어떤 음악을 해왔나라는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베스트음반은 아티스트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바람직한 건 베스트음반으로 개론을 익힌 뒤 각론인 정규음반으로까지 들어가는 것이겠지만. 그러나 베스트음반을 고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유명한 음악인일수록 포장만 다르고 내용은 고만고만한 베스트음반이 여러 장 되고 그 가운데 상당수는 제작사에 의해 임의로 편집된 음반이기 때문이다. 대중음악평론가인 박준흠씨는 베스트음반을 고를 때 “리마스터링을 통해 새로운 음원으로 만들어진 음반”이나 “제작된 부클릿이나 패키지가 소장 값어치가 있는 음반”에 한해 선택하기를 권장한다.

<한겨레21>에서는 송기철, 오공훈, 김경식씨 등 젊은 대중음악평론가 3인과 함께 ‘소장해도 아깝지 않을’ 베스트음반을 추천한다. 베스트음반 역시 듣는 이의 취향에 따라 가지각색이다. 올해 쏟아져나온 베스트음반을 중심으로 ‘입문서 역할’에 충실한 7장의 음반을 선정했다.

아바 <The Definetely Collection>(유니버설)

기존의 아바 베스트앨범 <ABBA GOLD>가 절판되면서 나온 두장짜리 베스트앨범. <ABBA GOLD>는 최근까지도 국내에서 한달에 6천장 이상 판매되는 스테디셀러였다. 내년에 아바 결성 30주년을 앞두고 새롭게 발매된 이 앨범은 한마디로 아바의 모든 것을 담았다. 72년 발표한 그들의 첫 앨범 <People Need Love>부터 82년 활동중지 직전 발표했던 <Under Attack>까지 37개의 주요곡들을 연대기순으로 수록해 아바 음악의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비지스 <Their Greatest Hits>(유니버설)

30년 이상 장수하고 있는 비지스도 <The Best of BeeGees> <Greatest> 두 가지의 베스트음반을 이미 소개했었다. 두장으로 40곡이라는 방대한 분량을 수록하고 있다는 게 강점. 아바처럼 연대기순으로 정리돼 있어 초기 포크에서 발라드, 중기 사이키델릭과 디스코, 후반기의 뉴웨이브까지 이들의 음악적 전기를 꿰뚫을 수 있다. 특히 <Holiday>와 <Stayin’ Alive>가 함께 들어 있어 이들의 베스트음반들 사이에서도 망설이던 사람들에게 만족할 만한 음반이다.

핑크 플로이드 <Ecoes>(EMI)

핑크 플로이드처럼 대작지향이면서 앨범 전체가 하나의 컨셉을 가진 서사적 구성을 가지는 밴드가 베스트음반을 제대로 꾸미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자칫 중구난방이 되기 쉬운 이들의 작품들을 두장의 CD에 무리없이 솜씨좋게 만들어냈다. 특히 정규앨범에서 이어지듯 연결되는 곡들이 이 음반에서도 끊기지 않고 매끄럽게 편집되어 얼핏 핑크 플로이드가 내놓은 새 음반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프로그레시브의 시대는 갔지만, 포스트록의 전성기를 맞아 오히려 영향력이 늘어나고 있는 이들의 전체 세계를 조망해볼 수 있는 훌륭한 컴필레이션 음반.

라우드니스 <The Days of Glory>(워너)

80년대 우리나라에서도 뜨거웠던 헤비메탈 음악의 인기와 당시 속속 등장한 메탈 밴드들의 음악세계에 큰 영향을 끼쳤던 일본 밴드 라우드니스의 데뷔 20주년 기념 베스트앨범. 국내에서 기획됐고 일본 현지에서 디지털로 리마스터링한 앨범으로 국내 팬들이 가장 좋아하는 라우드니스의 곡들로 구성됐다. 특히 세계시장 데뷔작이자 라우드니스 최고의 앨범으로 꼽히는 <Thunder in the East>의 <Like Hell> <Heavy Chains> <Crazy Night>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들의 대표곡들이다.

마돈나 <GHV2>(워너)

최근 건강의 악화로 음악활동 중단을 선언한 마돈나의 두 번째이자 아마도 마지막일 베스트앨범. 80년대 음악활동을 결산한 <The Immaculate Collection>(1990)에 이어 90년대를 결산하는 후반기 베스트앨범이다. <Erotica>(1992)에서 지난해 발표한 <Music>까지 다섯장에 걸쳐 있는 마돈나의 후반기 음악세계를 15곡으로 추려 모았다. <The Immaculate Collection>이 최고의 댄스스타 마돈나의 베스트라면 <GHV2>는 뮤지션 마돈나의 베스트앨범이다.

스매싱 펌킨스 <The Greatet Hits>(EMI)

지난해 갑작스런 해체 예고 뒤 한국에서 가졌던 ‘마지막’ 공연 덕에 우리나라 팬들에게는 더욱 강렬한 인상으로 남은 얼터너티브록 밴드 스매싱 펌킨스의 첫 베스트앨범. 너바나, 펄잼 등 동료 얼터너티브 밴드와 달리 헤비메탈에서 환각적인 드림팝에 이르는 다양한 이들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두장의 CD에 담았다. <The End Is The Beginning Is The End> <I am One> 등의 곡이 빠진 건 아쉽지만 희귀 트랙과 B-Side 노래들을 모아놓은 두 번째 디스크는 이 앨범을 베스트가 아닌 새 음반으로도 충분히 가치있게 만들어준다.

비틀스 <1>(EMI)

지난해 11월 전세계 동시 발매돼 다섯주 동안 무려 1800만장 이상 팔린 이 앨범은 평단과 비틀스 마니아들로부터 ‘비틀스 최악의 음반’으로 비난받기도 했다. 오로지 음반사의 돈벌이를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이유였다. 어쨌거나 <1>은 국내외에서 경이적인 판매고를 기록해 판매 숫자면에서는 비틀스 최고의 음반이 됐다. 영미 차트 1위를 기록했던 비틀스 시절의 22곡을 수록한 이 음반은 훌륭한 개론서임에 틀림없다. 다만 이 음반으로 비틀스와 인연을 맺었다면 <Abby Road> <Sgt. Pepper’s Lonely Heart Club Band> 등 다른 정규앨범도 반드시 감상해보기를 적극 제안한다.


박준흠이 주천하는 한국 베스트 음반 5

봄여름가을겨울 <Best Of The Best>(1997/ 동아기획)

그들 최후의 정규앨범이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로 잘 기획된 음반이다. 1996년에 6집 <Banana Shake>를 발표하고 난 뒤 발표한 이 2장짜리 베스트앨범은 ‘노래’, ‘연주’ 편으로 나뉘어져 있고, 특히 조 개스트워트의 뛰어난 마스터링이 빛을 발한다. 그래서 음질만으로 본다면 그들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훌륭하다. 또한 일부곡은 다시 편곡되어 녹음되었는데, 이는 이 음반만이 갖고 있는 진정한 ‘팬 서비스’이다.

듀스 <Deux Forever>(1996/ 삼성뮤직)

김성재의 죽음 뒤 듀스는 자연 해체되었고, 이현도는 듀스의 4장의 정규앨범과 김성재의 솔로앨범에서 ‘작품성’을 기준으로 발췌하여 또 하나의 명작(2CD)을 만들었다. 대개의 베스트앨범들이 잘 알려진 싱글 위주로 편집되는 데 반해서 이 음반은 이현도의 ‘90년대 명작들’을 고스란히 걸러내었고, 역시 톰 베이커의 뛰어난 마스터링이 5장의 앨범을 1장의 앨범으로 재탄생시켰다. 김성재의 <말하자면>은 이 앨범이 아니면 듣기 힘들다.

정태춘, 박은옥 <발췌곡집1>(1987/ 삶의문화)

정태춘은 데뷔앨범인 <시인의 마을>(1978) 이후에 <사랑과 인생과 영원의 시>(1980), <우네>(1982>, <’85 정태춘/박은옥>(1985)을 발표하였지만, 사람들은 제작사의 기획인 베스트앨범 성격의 <정태춘/박은옥>(1984)을 주로 찾았다. 물론 <시인의 마을> <촛불> <우리는>과 같은 녹녹한 멜로디의 노래가 그를 말할 때 부적절하다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북한강에서> <서해에서>와 같은 중기 명작들이 가려지는 것이 문제였다. 그래서 그의 ‘삶의문화’에서 기획한 음반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은 <Don’t Say That Was Yesterday>(2000/ EMI)

3집 <더딘 하루>(1991)부터 9집 <Asian Prescription>(1999)까지 그녀의 10년간의 궤적을 담은 앨범. 어느덧 그녀는 9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는 거장으로 성장하였지만, 아쉽게도 시장에서는 변신작인 <더딘 하루> <Begin>(1992) 그리고 아티스트로 인정받는 계기가 된 <이상은>(1993), <공무도하가>(1995)를 볼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초기 명곡인 <너무 오래> <뉴욕에서>가 담긴 이 앨범은 팬들에게는 반가운 음반이다.

임재범 <Memories>(2000/ Warner)

1986년 시나위 데뷔를 통해서 이름을 알린 그는 명실상부하게 80년대 헤비메탈계를 대표하는 보컬리스트였고, 보이스컬러라는 측면에서 매력적인 보컬리스트였다. 90년대에 넘어와서 여타 메탈 뮤지션들처럼 오버그라운드 팝에 투신하여 적지 않은 굴곡을 보여준 그였지만 드물게도 이미지를 손상시키지 않은 축에 속한다. 그런 그가 ‘다시 부르기’ 방식으로 만든 앨범이고 그래서 <고해> <사랑보다 깊은 상처>와 같은 솔로 활동시 대표작뿐만 아니라 시나위 시절의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 외인부대 시절의 <줄리> 등이 실려 있다.

박준흠/ 쌈넷 인터넷 방송국장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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