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거실 한구석에 제단처럼 마련된 테이블이 있다. 그 위에는 칼레드의 사진과 아프리카산 목각 토속품들이 놓여 있다. “칼레드는 수단에 세 번 다녀왔어. 돌아올 때마다 기념품들을 가지고 왔지. 마지막 여행에서 돌아온 날 그는 쓰러졌어. 그는 내 품에서 힘겹게 말했어. ‘몸이 이상해요.’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어. 죽은 줄 알았던 가족들은 살았는데 살아남은 칼레드는 그렇게 죽었어.” ‘당신의 슬픔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신의 이야기는 나 또한 슬프게 해요.’ 나는 속으로 말한다. 한국어로 한 번, 그리고 영어로 한 번. 테이블 옆에 또 다른 사진이 있다. 내가 클로드에게 선물로 준 흑백사진이다. 내가 직접 찍은 그 사진에는 십여 년 전 내 친구의 딸이 마리오네트 인형을 가지고 노는 장면이 담겨 있다. 클로드는 그 사진을 어느새 아랍식 문양으로 테두리가 쳐진 프레임에 넣어놓았다. ‘클로드의 죽은 친구 옆에 내 친구의 살아 있는 딸. 복잡한 패턴 속에 단순한 패턴.’ 나는 속으로 말한다. 이번에는 한국어로만. 클로드와 산책을 나가 루아르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널 때, 그가 말한다. “이 다리 아래서 칼레드가 몇 달간 살았어. 대학살을 피해 수단에서 탈출해 프랑스로 넘어온 직후였지. 그 더운 나라에 살던 친구가 여기서 몇 달을 노숙했으니 건강이 많이 망가졌을 거야. 더구나 그는 담배를 쉬지 않고 피웠어. 슬퍼서 그랬을 거야.” “네가 머무는 방에는 곧 시리아 난민이 올지 몰라.”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내 집에 머물던 난민들이 문제를 일으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 혼자서도 이해하다 시인, 비평가, 퇴직 교수, 사회운동가, 유대인, 동양인, 아프리카인, 아랍인, 그리고 유령들. 이들은 서로서로 사진을 찍어주고 건네준다. 그 사진들에는 번역해야 할 언어가 없다. 한국어도, 프랑스어도, 영어도, 아랍어도 없다. 몸짓, 얼굴, 눈동자, 그림자, 흔들림, 형상, 흔적, 침묵, 빛, 어둠만이 있다. 나는 사진들을 보고 있다. 내가 먼 훗날 그 사진을 다시 본다면 그때는 혼자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죽었는지, 그들이 어떻게 사라지지 않고 기억되는지, 그들이 사진들 속에서 어떻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하나의 시간으로 만들고 있는지. 심보선 시인·사회학자 * 심보선 시인의 ‘노 땡큐!’ 연재를 마칩니다. 수고해주신 필자께 감사드립니다. ※카카오톡에서 <한겨레21>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모바일에서만 가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