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위대한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질투를 불러일으키냐 보편적 인간성을 구현하느냐라는 논쟁은 예술시장과 문화정책, 탁월성과 접근성을 둘러싼 오래된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러나 이 낡은 논쟁은 예술이 지니고 있는 다른 면, 즉 예술이 자유로운 실천이자 제작 활동이자 놀이라는 점을 배제하고 있다. 자유로운 실천이자 제작 활동이자 놀이인 예술의 특이성은 어디서 나타날까? 물론 시장 안에서도 나타나고 정책 안에서도 나타난다. 하지만 시장의 무자비함과 정책의 고지식함은 그러한 예술의 특이성을 충분히 살리지 못할 때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의 특이성은 시장과 정책 바깥에서 자주 나타난다. 여러 장소가 있지만 최근 두드러지는 곳은 주거권을 둘러싼 싸움이 일어나는 장소들이다. 건물의 소유주들은 소유권을 주장하며 세입자들을 쫓아내려 한다. 하지만 세입자들은 인간의 기본권인 주거권을 주장하며 장소를 점유하고 일방적인 철거에 저항하는 싸움을 벌인다. 세입자들은 그저 장소를 점유하고 용역의 강제퇴거를 기다리며 전전긍긍하지 않는다. 주거한다는 것은 놀고 먹고 일하고 대화하며 인간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주거권을 주장한다는 것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이고 이 주장은 자유로운 삶의 형태, 즉 예술을 자연스럽게 불러들인다. 두리반, 테이크아웃드로잉 철거민들이 점유한 장소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유명 예술가들의 탁월한 작품만이 아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예술가인 것 같기도 철거민인 것 같기도 한 사람들의 활동, 그 모든 역할과 선입견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말과 행동을 만난다. 우리는 그것을 예전엔 두리반에서 보았고 지금은 테이크아웃드로잉에서 보고 있다. 심보선 시인·사회학자 ※카카오톡에서 <한겨레21>을 선물하세요 :) ▶ 바로가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