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고>와 <두사부일체>, 학생과 교사 사이에 벌어지는 피튀기는 대결을 보시라
올 연말 극장가는 ‘수능 대란’에 휩싸인 현실의 학교와 또다른 ‘학교 대란’에 빠져들 모양이다. 학원무협이란 새로운 장르를 들고 나온 <화산고>(8일 개봉)에서 학생과 교사가 ‘죽느냐 사느냐’의 지존 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겉은 코믹 조폭영화인 <두사부일체>(14일 개봉)는 실제 있었던 사학비리 사건을 소재로 학원문제에 개입한다. 영화에서 학교 주도권을 놓고 학생과 교사, 교사와 교사 사이에 벌어지는 피튀기는 대결은 유희로 포장됐지만 가벼운 장난만은 아니다. 교실에 피를 토하게 했던 <여고괴담>의 현실은 여지껏 크게 달라진 게 없으니까. 또 화산고와 상춘고가 벌이는 학교끼리의 흥행 싸움에 물건너 온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14일 개봉)의 마법학교까지 가세해 치열한 삼각구도를 이룰 참이다.
‘동시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선으로 엇갈리며 내달리기 시작하는 경수(학생)와 수학(교사). 파바바―밧, 도화선이 타 들어가듯 두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물보라가 뿜어져나온다. 펑―경수를 향해 연거푸 장을 날리는 수학. 날아오는 물줄기를 피하며 경수 역시 연거푸 장력을 내뿜는다. 펑―펑― 두 사람의 호신강기가 폭발하면서 물줄기가 솟구치고 거센 비바람이 몰아친다.’
한국영화의 ‘내공’을 증명하다
허풍스러워 보이는 이 시나리오를 그림으로 만든 콘티를 보면 딱 만화 같다. 여기에 공중에 뜬 채 온몸의 내공을 끌어모아 엄청난 장력을 뿜어내는 장면에 이르면 영락없이 <드래곤 볼>이다. 또 수학 교사(허준호)에게 혈도가 막힌 경수(장혁)가 화산고의 1인자였던 송학림(권상우)과 대결하며 상처를 치유하는 장면이나 복도에 벌어지는 싸움들은 <매트릭스>의 와이어액션을 닮았다. ‘너무 쎄서 슬픈 사나이’ 경수가 여덟번의 퇴학 끝에 화산고에서 어떻게 하든 졸업을 하려고 사파와 정파간의 싸움에 휘말리지 않으려는 구도는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단골로 등장하던 마카로니 웨스턴을 보는 듯하다. 또 분노와 증오로 이글대던 눈이 순식간에 어벙벙하게 변하는 경수 역의 장혁 연기는 침을 뭉터기로 흘리며 헤벌어지는 입이 특징인 <슬램 덩크>나 <시티 헌터>의 주인공을 떠올리게 한다.
자칫 이도 저도 아닌 짬봉이 될 수도 있었을 <화산고>는 이 모든 히트 오락물의 쾌감을 깔끔하게 정련해냈다. 고풍스런 무협액션이 현대적인 테크노 음악과 어울려 흥분을 자극하듯, 10대에서 30대에 이르는 연령층이 각기 익숙하게 즐겼던 오락 코드들이 알맞게 섞여 있다. 그렇다고 짜깁기라고 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매트릭스>가 <블레이드 러너>와 <공각기동대>의 후계자라는 건 비난거리가 아니라 자랑거리였다. 또 총싸움하듯 날아다니며 장력을 쏘아대고 높은 물기둥이 폭발로 치솟는 콘티가 그럴싸한 실사 장면으로 나타났듯, 이제 상상하면 뭐든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한국영화의 ‘내공’을 새삼스레 증명해준다.
“때는 화산 108년”으로 시작하는 가상의 시공간은 현실의 학교 풍경과 다를 바 없다. 어릴 적 뇌전벽력을 맞아 스스로도 조절할 수 없는 내공을 갖게 돼 늘 싸움에 휘말려온 경수가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화산고에 전학온 날, 모종의 음모가 시작된다. 17년간 계속된 전교사화의 대환란을 사비망록으로 잠재웠다는 교장 장오자는 화산고의 1인자이자 정파를 상징하는 송학림과 연합전선을 이뤄 학교의 평화를 유지해왔다. 여기에 반기를 든 게 교장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교감과 화산고 2인자이자 사파를 대표하는 역도부 주장 장량. 이들이 장오자와 송학림을 계략에 빠뜨려 무력화하면서 환란이 시작된다.
이건 교감으로 대표되는 주입암기학파가 교장의 자율방임학파를 거세하려는 음모이기도 하다. 영화는 장량마저 골치덩어리로 여기는 교감이 학원5인방을 학교에 끌어들이면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수학을 ‘우두머리’로 국어, 음악, 체육, 영어 교사로 구성된 이들은 학원진압 전문 사파 고수들로 공포정치를 시작한다. 담배피는 아이들의 기도를 막아 호흡을 곤란하게 만드는 ‘연초단폐장’, 인성강화라는 명목으로 머릿속의 모든 것을 지워 백지인간으로 만들어버리는 ‘공명파장공’ 등의 사파 무공을 마구 휘두르더니 “쓰레기를 자꾸 버리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느냐”며 문제아들의 숨을 아예 끊어놓는 ‘인생종지부’까지 쓰려고 한다. 벼랑 끝에 내몰린 학생들은 이제 목숨 건 싸움을 시작할 수밖에 없다.
고난도 액션, 무데뽀 정신의 산물?
“와이어액션을 나름대로 구상했으나 막상 현장에서 잘 나올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모든 게 그랬다. 모두가 초짜였으니까.”(김태균 감독)
“이런 연기 방식이 도대체 먹혀줄까 싶었다. 이게 가장 큰 모험이었다.”(차승재 제작사 싸이더스 대표)
첫 시사가 끝나고 감독과 제작자의 표정에는 안도감과 자부심이 엇갈렸다. 이들의 말이 보여주듯 <화산고>는 ‘무데뽀’ 정신의 산물이다. 와이어액션만 해도 그렇다. 홍콩팀을 부르면 간단하게 만들겠지만 그들 색깔대로 찍을 수밖에 없고, 노하우도 쌓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순수 국내 인력으로 팀을 꾸렸다. 10m 높이에서 수평 이동뿐 아니라 상하 수직 이동에 공중돌기까지 넣는 고난도 액션을 시도하면서 줄을 조종하는 7∼8명의 스태프에 엑스트라를 기용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기가 찰 지경이다. 국내에 전문 인력이 없으니 어쩔 수 없기는 하다. 장혁씨는 “미국에서 광고를 찍을 때 보니까 안전장치만 7개 정도를 마련하던데 여기선 잘해야 한두개의 안전장치를 썼을 뿐”이라고 한다. 장씨는 자신의 목숨이 걸린 줄을 쥐락펴락하는 ‘엑스트라 스태프’들과 소주를 들이키며 친해지면서 호흡을 맞춰갔다. 또 순제작비만 50억원에 이르는 비용 가운데 상당액이 컴퓨터그래픽 작업에 쓰였다. 필름의 60%가량에 CG를 사용하게 되자 아예 모든 필름을 디지털 스캐닝해서 컴퓨터 안에서 모든 공정을 마쳤다. 할리우드에서도 보기 드문 경우다.
<화산고>의 흥행 여부는 영화계 내부에서 큰 관심거리다. <플란다스의 개> <유령> <봄날은 간다> <무사> 등 메이저답지 않게 상업영화와 작가주의 영화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실험작’들을 줄곧 내놓은 영화사 싸이더스는 번번이 흥행 운을 놓쳐왔다. god 등 싸이더스 소속 가수들이 음반시장에서 벌어준 돈이 아니었으면 어떡할 뻔했나, 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자꾸 이러면 우리도 영화 노선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는 차승재 대표의 엄살이 꼭 허풍만으로 들리지 않는 게 이 때문이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인터뷰|<화산고> 주연배우 장혁 ![]() 사진/ (씨네21 손홍주 기자) |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