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승의 과학으로 세상읽기
‘당신이 사색에 잠겨 있는 동안, 밖에 있는 사람은 사색이 되어갑니다.’ 화장실 벽에 써 있는 이런 유의 낙서는 항문과 사투를 벌여야 하는 변객들(?)의 입가에 작은 미소를 선사하던 유머였다. 시사적이고 풍자적이며 때론 철학적이기까지 한 화장실 유머가 영화판으로 건너오면서 어느샌가 지저분한 유머의 대명사로 변했다. 방귀와 설사가 범벅이 된 <덤 앤 더머>에서부터 정액을 젤 삼아 머리를 세운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애플파이로 자위행위를 하다 들키는 <아메리칸 파이>에 이르기까지 온갖 지저분하고 엽기적인 소재들로 요절복통 웃음을 선사하는 코미디를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화장실 유머’ 영화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과학계에서도 연구의 주된 실험실을 화장실로 여기는 ‘화장실 과학’이란 게 있다. 미국 거스리 클리닉 비뇨기과 의사인 제임스 놀란 박사팀의 연구테마는 ‘지퍼에 낀 남자 성기’다. 패럴리 형제가 만든 영화에나 나올 만한 이런 상황이 결코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한다. 아이들의 경우 소변을 본 뒤 지퍼를 올리다가 성기가 지퍼에 끼는 사고가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응급의학을 전공한 놀란 박사는 이 경우 어떤 응급조치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해 기술한 논문을 1990년 응급의학 저널에 발표했다. 그는 이 논문에서 찢어진 부위에 바르는 일차 소독제 ‘포비돈 아이오다인’을 바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오일을 바른 뒤 지퍼를 열고 파상풍 예방약을 바르고 마무리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놀란 박사는 이 논문을 발표한 뒤 신문과 TV로부터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고 한다. 그의 진지하고 학문적인 연구가 사람들에겐 황당하고 엽기적인 연구로 비쳤던 것이다.
‘소리없는 방귀의 냄새가 더 지독하다’는 사실은 오랜 경험으로 코저리게 터득한 삶의 지혜다. 그러나 심각한 얼굴로 “그게 정말 사실일까?”라고 물으면, “그냥 하는 얘기지 뭐” 하며 웃어넘길 사람들이 대부분이리라. 그러나 우리의 과학자들이 누군가! 세상 어떤 것도 과학자들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는 것은 없다. 방귀란 큰창자나 작은창자에서 소화되지 않은 음식찌꺼기가 장내 미생물에 의해 발효될 때 발생하는 가스다. 우리가 하루에 방귀를 뀌는 횟수는 10∼15회. 그 양은 대략 0.6∼1리터에 이른다. 방귀를 뀔 때 소리가 나는 것은 소화기에 있는 ‘괄약근’이라는 반지 모양의 근육 때문이다. 이 근육들은 평소 벌어졌다 조였다를 반복하는데, 방귀 소리가 크게 나는 것은 괄약근이 꽉 조일 때 가스를 방출한 탓이다.
방귀는 약 400종류의 가스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산화탄소와 메탄, 수소가 99%를 이룬다. 아직까지 방귀 냄새의 주범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주로 인돌이나 스케톨, 암모니아 등이 방귀 냄새의 주범이라고 여겨지고 있지만, 다양한 물질들이 새롭게 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독일의 의사들은 방귀 냄새를 만든다고 여겨지는 물질들의 양과 방귀 소리의 상관관계를 알아보았다. 그 결과, 방귀 소리와 냄새주범 물질의 양과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다는 것. 그들은 이 결과를 1997년 워싱턴에서 열린 소화기질병 학회에서 발표했다. 그러나 ‘소리없는 방귀가 더 독하다’는 잠언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일러스트레이션/ 차승미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