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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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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12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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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방송 스타PD ‘쌀집아저씨’의 <!느낌표>는 얼마나 성공한 것일까

사진/ 공익적 가치를 담은 예능프로그램 장르를 특화해온 문화방송이 기존 장기를 집대성했다고 볼 수 잇는 <!느낌표>(문화방송 제공)
지난 10월 말 문화방송 TV 제작2국의 김영희 프로듀서가 서울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기자간담회를 가졌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이경규가 간다’, <21세기 위원회> <칭찬합시다> 등 인기 높은 예능프로그램을 다수 연출한 김 프로듀서는 ‘쌀집아저씨’란 별명으로 시청자에게도 잘 알려진 스타PD. 1년6개월 동안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그가 가을프로그램 개편에 맞춰 신작을 선보인다는 소식에 ‘어떤 물건이 탄생할 것인가’를 놓고 귀를 쫑긋 세우는 이가 적지 않았다. 그 물건은 바로 현재 토요일 밤 9시45분에 방송을 타고 있는 공익버라이어티쇼 <!느낌표>다.

<태조 왕건>과 한판 붙겠다고?

방송 전 의 청사진을 소개하면서 김 프로듀서는 “모든 코너가 블록버스터급이고 대박감”이라며 특유의 호방한 웃음(그의 웃음소리는 프로그램에도 배경음악처럼 자주 등장한다)을 터뜨렸다. 무엇보다 그는 41명의 연출자 및 작가진, 첫회 제작비 1억여만원, 정상급 개그맨 5명의 집합(이들의 회당 출연료만 2천만원이 넘는다) 등을 예로 들며 한 프로그램에 이토록 많은 인원과 돈이 들어간 예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든든한 지원과 기대 아래 <!느낌표>는 동시간대에 시청률 40% 전후로 막강한 아성을 구축하고 있는 한국방송의 <태조 왕건>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야심차게’란 수식어를 붙여도 손색없는 출발이었다. 프로그램은 모두 4개의 코너로 구성된다. 개그맨 김용만과 유재석이 콤비를 이뤄 진행하는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도시에 사는 야생동물을 찾아나서는 ‘이경규의 다큐멘터리 보고서’, 이 사회의 진정한 어른에게 삶의 교훈을 얻는다는 ‘박경림의 길거리 특강’, 아침밥 먹기 캠페인을 통해 청소년의 교육문제를 얘기하는 ‘신동엽의 하자하자’ 등. 여기에 자동차에 장착된 ‘피그뽕’이란 인형의 앙증맞은 방귀 한방으로 난폭 운전자에게 경종을 울리는 신교통 혁명캠페인 ‘방귀뀌는 자동차’란 막간 코너를 포함하면 <!느낌표>는 교통, 노인, 환경, 교육, 책 등 가히 우리 사회의 주요 문제를 망라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김 프로듀서의 히트작을 통해 공익적 가치를 담은 예능프로그램이란 특화 장르를 개척해온 문화방송이 이번에 기존의 장기를 집대성했다고 볼 수 있다. 돛을 올린 지 한달여가 흐른 현재 <!느낌표>의 평균시청률은 20%에 약간 못 미친다. <태조 왕건>의 기세를 누르기에는 역부족이지만 지상파 3사의 예능프로그램 가운데 상위권에 해당하는 성적을 거두고 있다.

이제 막 탄생한 신설 프로그램임에도 현재 방송가는 <!느낌표>에 대해 성공작이냐 범작이냐를 놓고 벌써부터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시청률만 해도 그렇다. 제작진은 이 정도면 선전이라며 만족하는 반면 방송사 고위층은 기대에 못 미친다며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공익버라이어티쇼라는 프로그램의 특성에 대해서도 설왕설래가 한창이다. 일각에서는 “스타의 신변잡기와 장기자랑 등으로 채워지는 기존 예능프로그램보다 의미있는 재미를 추구하고 있다”며 박수를 보내는가 하면 또다른 일각에서는 “공익적인 주제가 겉핥기에 그치고 있다”며 공익과 오락의 불편한 동거를 지적하고 있다. 또 문화방송표 공익 예능프로그램의 형식을 재탕한 것 아니냐며 참신성에 낮은 점수를 매기는 의견도 있다.

외부의 이런저런 ‘말말말’ 때문인지 현재 ‘쌀집아저씨’의 표정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예능프로그램이 고상한 체만 했지 알맹이는 없다’는 등 일부의 비판적인 시각은 예능프로그램에 대한 편견에서 비롯한 것”이라며 섭섭함을 내비친다. 또 “<!느낌표>는 공익적인 주제에서도 얼마든지 재미를 견인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엄연한 예능프로그램이며, 책이나 환경을 예능프로그램의 소재로 삼는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발상”이라는 것이다.

<!느낌표>가 킬링타임용 이상의 유익한 재미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문제는 공익적 가치를 담은 기존 예능프로그램에 비해 재미의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점. 정보의 재미가 있는 <21세기 위원회>나 감동의 재미가 쏠쏠했던 <칭찬합시다>와 달리 <!느낌표>는 규모의 재미에만 기운 인상을 준다. 너구리를 찾으러 헬기를 타고 이동하고, 인파가 운집한 번화가에 즉석 야외강의실을 속전속결로 설치하며, 아침밥을 못 먹는 학생들을 위해 거대한 밥차가 학교를 찾아가 근사한 아침식사를 대접하는 등 마법사 같고 산타클로스 같은 모습을 선보인다. <!느낌표>를 시청하면서 감탄의 ‘!’를 내뱉는 순간은 물량공세를 마다하지 않는 방송의 힘을 확인하는 대목에 머물러 있다.

<!느낌표>는 공익의 그늘 아래 일을 잔뜩 벌여놓고 정작 그 문제의 심층부로 들어가는 것은 피곤해하는 기색을 엿보인 채 진행자의 개인기를 감상하라고 유도한다. 그 유난스러운 방식 때문에 그냥 가볍게 즐기기엔 부담스럽고, 의미를 찾겠다고 덤비면 허전하다. 구경거리는 화려하지만 외관에 걸맞은 재미의 ‘!’는 아직 획득하지 못하고 있다.

조재원/ <스포츠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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