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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음악/ 이것이 쿠바음악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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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0-08-30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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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지배자와 노예의 음악이 뒤섞여 영혼의 선율을 만든다

서인도 제도에 위치한 작은 공화국인 쿠바를 이야기할 때 여러 사람들이 ‘모로스 이 크리스티아노스’(moros y cristianos: 회교도와 기독교인)라는 음식을 언급한다. 검은콩과 쌀을 마늘과 여러 양념을 섞어 조리한 이 음식은 아프리카와 유럽의 다양한 문화가 뒤섞여 공존하는 쿠바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상징이라 할 수 있는데, 이러한 쿠바 문화의 바탕에는 수세기 동안 이어진 스페인의 식민 통치와 그들이 데리고 온 수많은 아프리카의 노예들이 존재한다. 이질적인 여러 문화의 결합과 충돌은 새로운 삶의 양식과 오락거리들의 등장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 중 쿠바의 정체성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결과물로 가톨릭과 아프리카의 다신교가 혼합된 종교인 ‘산테리아’(santeria), 그리고 ‘아프로-큐반’(Afro-Cuban)으로 일컬어지는 쿠바 특유의 음악을 들 수 있다.

‘아프로-큐반’은 콩가와 봉고, 클레이브 등 아프리카의 전통 타악기들과 플루트, 바이올린, 트럼펫, 그리고 기타 등 유럽의 악기들이 이루는 선율과 리듬의 결합으로 탄생한 음악이다. ‘손’(son)이라 불리는 이 음악 스타일에는 1900년대 초반의 탱고와 30년대의 룸바, 40년대와 50년대의 맘보, 또 그 요소들이 바탕이 된 살사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쿠바의 음악은 몇몇 실험적인 대중음악가들의 관심이 비영어권 나라들의 민속음악으로 향하던 1980년대 이후 점차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97년 발표된 한장의 앨범과 그 이듬해에 개봉된 한편의 영화를 통해 좀더 많은 이들이 보석과도 같은 쿠바 음악의 향에 흠뻑 취하게 되었다.

수많은 이들을 감동시킨 주인공은 바로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Buena Vista Social Club)이다. 쿠바의 수도인 아바나의 동부에 위치한 한 사교클럽에서 차용한 이 이름은 쿠바를 대표하는 뛰어난 뮤지션들으로 구성된 음악 집단이자 앨범의 타이틀이며 동시에 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쿠바 음악의 과거와 현재를 집대성했다고 할 수 있는 이 프로젝트에는 기타리스트인 라이 쿠더가 참여하여 앨범의 프로듀스와 기타 연주를, ‘새로운 독일영화’(New German Cinema)의 기수로 평가되는 빔 벤더스가 특유의 영상미를 담아낸 다큐멘터리영화의 연출을 맡았다. 이미 영화 <파리 텍사스>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는 두 거장은 이 뜻깊은 작업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고 그 결과는 그야말로 완벽한 것이었다.

쿠바 최고의 싱어인 이브라임 페레르와 기타리스트 콤파이 세군도, 피아니스트인 루벤 곤살레스, ‘쿠바의 에디트 피아프’로 일컬어지는 오마라 포르투온도 등 일흔살 이상의 노장들을 포함한 20여명의 음악가들이 빚어내는 소리의 향연은 듣는 이들의 잠자고 있던 감성을 살며시 깨워 기분좋게 어루만져준다. 눈을 감으면 영혼으로 교감하며 더할 수 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자연스러운 음(音)들 하나 하나의 조합이 이루어내는 풍경은 산들바람과 같은 부드러움과 봄햇살과 같은 따사로움과 유리창을 가볍게 두드리는 빗소리와 같은 경쾌함이다. 그 정서는 ‘쿠바’에서 비롯되지만 이미 한정된 지역을 넘어 ‘인간’에 교감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이 앨범이 지니는 힘이요, 전세계 수백만 사람들이 이들에게 갈채를 보내는 이유인 것이다.


김경진/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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