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에 머무르지 않겠다”… 학벌에 상관없이 폭넓은 정보로 무장한 ‘대중문화평론가’ 등장
(사진/위부터 이명석씨,오은하씨,이상욱씨)
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시대를 맞아 이들의 활동영역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이들은 학술적 해석이나 평론 대신 대중성을 바탕으로 개성있는 글쓰기와 마니아들을 열광시키는 한발 앞선 정보로 무장하고 기존 평론가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평론가와 칼럼니스트, 비평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무리짓는 요즘 평론가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요즘 평론가 또는 칼럼니스트로 가장 왕성하게 뛰고 있는 평론가들은 그 이전 평론가들과는 달리 업계에서 다져진 실무감각으로 무장한 이들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학력과 학벌보다는 어려서부터 마니아적으로 특정 분야에 매달려온 감수성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일반적 팬들과 동떨어진 평론가들이 아니라 팬들 가운데 ‘고수급’ 같은 위치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특징이다.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송기철(31)씨와 김경진(29)씨의 경우는 모두 업계에서 활동하면서 전문지식을 인정받아 글쓰기를 시작한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현장에서 갈고닦은 전문지식과 함께 대중의 눈높이에 가까운 감각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송기철씨의 경우 대학을 중퇴한 학력이지만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음악평론가로 꼽힌다. 특히 송씨는 다른 음악평론가들과는 달리 어렸을 때부터 마니아적으로 음악을 들었고 또 음반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음반회사에 들어가 음반 기획과 제작, 홍보, 유통까지 모두 섭렵했다.(쪽 기사 참조) 역시 음악마니아인 김경진씨도 음반사에 들어가 음반 기획을 하다가 평론으로 진출한 경우다. 반면 한국방송공사 2텔레비전의 <뮤직타워>를 진행하고 있는 박은석(30)씨는 음반업계에 종사하지는 않았지만 대학 시절부터 다양한 매체에 글쓰면서 천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평론가의 길을 걸어왔다. 이처럼 마니아 출신 평론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분야는 바로 만화와 애니메이션 분야다. 현재 가장 이름이 알려진 만화평론가 손상익씨와 박인하씨가 모두 신춘문예 비평부문을 통한 ‘정통적 코스’를 거쳐 평론가로 등장했다면, 오은하씨나 이명석, 김의찬, 송락현씨 등은 모두 어려서부터 만화에 빠져 살았던 마니아 출신으로 개성적인 글쓰기를 인정받아 평론가가 된 경우다. 또한 이들은 일본만화의 영향이 커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평론가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최열씨나 손상익, 박인하씨 등 기존 평론가들이 주로 우리 작품 가운데 수준높은 것들을 발굴해 만화사적 자리매김을 해온 데 비해 이들 신세대 만화평론가들은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일본만화에 대한 해석과 앞선 정보로 만화팬들에게 접근했다. 문화 전방위에 걸쳐 입담을 자랑하는 ‘문화평론가’ 그룹도 90년대 후반 이후 새롭게 양상이 변하고 있다. 90년대 초반 문화평론가들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중문화의 의미가 재조명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맞물려 당시 탈장르화, 장르복합화되는 다양한 문화현상을 대중에게 설명해주는 존재였다. 사회현상에 대한 문화적 해석을 필요로 하는 언론이 이들을 발굴했고, 이들에게 문화평론가라는 칭호를 붙여줬다. 당시 이들은 “서태지가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인가”, “노래방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등 새롭게 떠오르는 문화적 현상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들은 연극이나 클래식 음악 등 고급문화보다 대중문화쪽에 대해, 개별장르를 평하기보다 문화 전반의 현상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었다. “누가 당신에게 그런 직함을 줬나”
(사진/위부터 김봉석씨,서동진씨,박상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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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의 전성시대다. 온갖 매체마다 ‘평론가’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 평론가의 개념과 범위도 바뀌고 있다. 평론가라고 하면 예전에는 고급문화 장르의 교수급들 또는 특정 장르를 전문적으로 다뤄온 기자 출신 등이 대세를 이뤘지만, 이제는 나이도 젊어지고 평론대상의 분야도 다양해지면서 새로운 성장과정을 거친 신세대 평론가들이 대거 등장하고 있다.
대중 눈높이에 맞는 감수성 90년대 들어 분야마다 전통적 범주의 평론가들을 대신하는 새로운 평론가 집단이 등장한 데 이어 요즘 문화계에는 이들과는 다른 또다른 평론가들이 활약중이다. 그리고 이들은 ‘…칼럼니스트’ ‘…비평가’란 새로운 이름을 달고 나오기도 한다. 특정장르의 평론가로 활동하기도 하지만 아예 ‘대중문화평론가’란 포괄적 이름으로 등장하기도 한다.대중문화가 지배하는 시대를 맞아 이들의 활동영역도 점차 넓어지고 있다. 이들은 학술적 해석이나 평론 대신 대중성을 바탕으로 개성있는 글쓰기와 마니아들을 열광시키는 한발 앞선 정보로 무장하고 기존 평론가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평론가와 칼럼니스트, 비평가 등 다양한 이름으로 무리짓는 요즘 평론가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일까. 요즘 평론가 또는 칼럼니스트로 가장 왕성하게 뛰고 있는 평론가들은 그 이전 평론가들과는 달리 업계에서 다져진 실무감각으로 무장한 이들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학력과 학벌보다는 어려서부터 마니아적으로 특정 분야에 매달려온 감수성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일반적 팬들과 동떨어진 평론가들이 아니라 팬들 가운데 ‘고수급’ 같은 위치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특징이다. 대중음악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송기철(31)씨와 김경진(29)씨의 경우는 모두 업계에서 활동하면서 전문지식을 인정받아 글쓰기를 시작한 이들이다. 이들은 모두 현장에서 갈고닦은 전문지식과 함께 대중의 눈높이에 가까운 감각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다. 송기철씨의 경우 대학을 중퇴한 학력이지만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음악평론가로 꼽힌다. 특히 송씨는 다른 음악평론가들과는 달리 어렸을 때부터 마니아적으로 음악을 들었고 또 음반가게에서 일을 하다가 음반회사에 들어가 음반 기획과 제작, 홍보, 유통까지 모두 섭렵했다.(쪽 기사 참조) 역시 음악마니아인 김경진씨도 음반사에 들어가 음반 기획을 하다가 평론으로 진출한 경우다. 반면 한국방송공사 2텔레비전의 <뮤직타워>를 진행하고 있는 박은석(30)씨는 음반업계에 종사하지는 않았지만 대학 시절부터 다양한 매체에 글쓰면서 천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평론가의 길을 걸어왔다. 이처럼 마니아 출신 평론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는 분야는 바로 만화와 애니메이션 분야다. 현재 가장 이름이 알려진 만화평론가 손상익씨와 박인하씨가 모두 신춘문예 비평부문을 통한 ‘정통적 코스’를 거쳐 평론가로 등장했다면, 오은하씨나 이명석, 김의찬, 송락현씨 등은 모두 어려서부터 만화에 빠져 살았던 마니아 출신으로 개성적인 글쓰기를 인정받아 평론가가 된 경우다. 또한 이들은 일본만화의 영향이 커지면서 새롭게 등장한 평론가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최열씨나 손상익, 박인하씨 등 기존 평론가들이 주로 우리 작품 가운데 수준높은 것들을 발굴해 만화사적 자리매김을 해온 데 비해 이들 신세대 만화평론가들은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는 일본만화에 대한 해석과 앞선 정보로 만화팬들에게 접근했다. 문화 전방위에 걸쳐 입담을 자랑하는 ‘문화평론가’ 그룹도 90년대 후반 이후 새롭게 양상이 변하고 있다. 90년대 초반 문화평론가들은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중문화의 의미가 재조명되기 시작하는 시점에 맞물려 당시 탈장르화, 장르복합화되는 다양한 문화현상을 대중에게 설명해주는 존재였다. 사회현상에 대한 문화적 해석을 필요로 하는 언론이 이들을 발굴했고, 이들에게 문화평론가라는 칭호를 붙여줬다. 당시 이들은 “서태지가 한국사회에 어떤 의미인가”, “노래방의 사회적 의미는 무엇인가” 등 새롭게 떠오르는 문화적 현상에 대한 설명을 시도했다. 그리고 이들은 연극이나 클래식 음악 등 고급문화보다 대중문화쪽에 대해, 개별장르를 평하기보다 문화 전반의 현상에 주목하는 경향이 있었다. “누가 당신에게 그런 직함을 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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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점차 떠오른 대중문화평론가는 게임, 만화, 음악 등 한두 장르를 집중해서 평론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또한 평론가와 칼럼니스트의 구분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문화평론가 김지룡(36)씨는 “마니아에서 오타쿠로”라는 말로 요즘을 설명한다. 오타쿠란 자기가 좋아하는 장르를 여러 각도에서 살피고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마니아를 넘어서는 열광적인 애호가들을 뜻하는 일본말이다. 즉 이러한 오타쿠가 결국 90년대 후반 대중문화 비평가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문화평론가 서동진(34)씨는 “대중문화 수용자층에서 계층이 생겼다”라는 말로 표현한다. 즉 일반 팬-마니아-오타쿠 식으로, 정보를 많이 쥔 자, 그 장르에 대해 많이 생각한 자가 점점 더 평론가에 가까워지는 현상을 보인다는 것이다.
90년대 후반부터 대중문화비평가이자 일본문화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김봉석(34)씨는 “기존의 문화평론가들은 문화이론의 측면에서 개별 텍스트들을 끼워맞추려는 경향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수용자의 측면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해 문화평론을 시작했지만, 기존의 문화평론가와 차별화를 하는 의미에서 ‘대중문화비평가’라는 호칭을 달고 글을 썼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90년대 후반 문화평론가들은 태생적으로 대중문화의 수용자에서 출발했고, 따라서 수용자의 측면을 중시하면서 글을 쓰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대중문화평론가들은 문학평론가처럼 신춘문예 등을 통한 제도하에서 배출되지 않았기 때문에 “누가 당신에게 그런 직함을 주었나”는 질문 앞에 난감할 수도 있다. 사실 ‘문화평론가’라는 직함이 공인 시험을 거쳐 얻은 것도 아니다. 그러나 문화평론가 정윤수(33)씨는 이에 대해 “평론가를 제도화한다는 건 사실 말이 안 된다. 제도화될수록 자유로운 발상이 막힌다”라고 말한다. 또한 “상을 주고받아 사람을 걸러내는 것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공존한다. 옥석 가리기 등의 순기능이 있지만, 역기능으로 권력화와 줄서기가 생길 수 있다. 주류문화의 권력화를 답습할 가능성이 있다. 시장이 옥석을 가린다”라고 덧붙인다. 즉, 평론가가 어떤 제도하에서 배출되지 않는 지금의 시스템이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는 뜻이다. 인터넷이란 사이버지면이 생겨나면서 이들은 더욱 많은 곳으로부터 글요청을 받고 있고 더욱 다양한 문화평론가들이 태어나고 있다.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직업 가운데 하나로 꼽힐 정도다. 그러나 이들이 환영받는다는 것이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에서 대중문화 개별 장르의 평론이든, 문화전반에 대한 평론이든, 대중문화평론가의 사정은 여전히 어렵다. 한달에 스무건 정도 원고를 쓰고, 그것을 다 팔 수 있어야 생활이 되는 수준이다. 게다가 이 평론가 ‘시장’은 그 시점에서 가장 잘 나가는 사람에게만 일감이 몰리고 부침도 심하다. 그래서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문화평론가를 지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맨땅에 헤딩할 각오부터 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한다. 척박한 기반, 맨땅에 헤딩한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은 높아가지만 체계적인 대중문화 평론 교육기관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국내, 해외 어디에나 정식 교육기관이 없기 때문에 “맨땅에 헤딩할 각오”로 이것저것 공부해야 한다. 또한 대중문화 평론을 위한 메타비평, 즉 분석을 위한 기본작업이 미비한 점도 해결해야할 숙제로 지적된다. 만화평론가 이명석씨는 “만화평론을 위한 기본 용어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아 서로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오해할 수 있는 소지가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만화를 나누는 칸을 어떤 사람은 프레임이라고도 부르고, 어떤 사람은 칸이라고 부르는 등 평론을 위한 공식용어조차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공부하다 포스트모더니즘과 게임과의 연관을 느끼고 게임평론가로 전업한 박상우씨 역시 “게임평론을 위한 방법론이 없어 이 부분의 연구가 차후 해결해야 할 숙제”라고 말한다. 해외의 경우, 일본에서는 만화평론만 해마다 서른권가량 출판되며, 미국같은 경우는 대중음악평론가가 음악장르의 이름을 부여할 정도로 권위를 갖고 있다. 앞으로 한국 대중문화가 한발짝 성숙하기 위해서는 이런 척박한 풍토에 심어진 대중문화비평가들의 수확률을 높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다. 이민아 기자min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