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신화를 뒤좇아간다. 인류의 우주탐사도 마찬가지다. 우주 공간에 생명체가 살 것이라는 신화와 상상력이 아폴로 우주선을 달로 보냈다. 소설 <마션>을 쓴 앤디 위어와 원작을 스크린에 옮긴 리들리 스콧 감독은 “<마션>은 과학에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말했다. 이 러브레터는 신화와 함께 동봉해 보내져야 한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의 앤디 위어는 구글링을 통해 화성에 사람이 생존할 수 있다는 과학적 증거를 바탕으로 소설을 썼다. 소설에 감명받은 리들리 스콧 감독은, 1979년 <에이리언>과 1982년 <블레이드 러너>에서 보여준 디스토피아의 음울한 잿빛 분위기를 걷어내고, 흥미로운 과학과 유쾌한 낙관이 결합된 공상과학(SF) 영화를 만들었다.
먼저, 화성의 이름은 마르스(Mars)다. 마르스(그리스식 이름은 아레스)는 ‘전쟁의 신’이다. 옛사람들은 화성의 붉은빛이 전쟁을 연상시킨다며 마르스로 명명했다. 모래폭풍에 휩쓸려 홀로 남겨진 마크 와트니(맷 데이먼)는 화성을 상대로 생존 전쟁을 벌인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 감자를 심고, 산소를 만들고, 물을 생산하고, 지구와 통신에 성공하며 전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인다. 당연히, 마크 와트니가 소속된 탐사대의 이름도 아레스(Ares)다.
화성은 두 개의 위성을 거느리고 있다. 마르스의 쌍둥이 형제인 포보스(Phobos)와 데이모스(Deimos)다. 소설에서 마크 와트니는 “포보스는 공포의 신인데, 나는 그것에 의지하여 길을 찾고 있다”라고 말한다.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마크 와트니는 오디세우스를 닮았다. 10년간 펼쳐진 트로이전쟁이 끝난 뒤 고향 이타케로 돌아가기 위해 10년 동안 갖은 고생을 하며 모험을 했던 오디세우스의 삶은 화성에서 1년 반 동안 농부, 전기공학자, 장거리화물차 운전자, 우주비행사로 살아야 했던 마크 와트니와 겹친다. 오디세우스는 20년 동안 돌아오지 않아 고향 사람들에게 죽은 사람 취급을 당했다. 마크 와트니 역시 화성에서 돌아오지 못해 장례식까지 치러졌다.
오디세우스는 칼립소에게 7년간 붙잡혀 있었다. 칼립소는 자신과 영원히 살자고 설득했지만, 그는 고향에 가서 아내와 아들을 만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어느 날 아테네가 오디세우스를 떠올렸고, 제우스는 헤르메스(Hermes)를 보내 칼립소에게 풀어주라고 명령하면서 오디세우스의 서사시가 시작된다.
헤르메스는 누구인가. ‘전령의 신’이다. 제우스의 뜻을 신과 인간에게 전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신이다. ‘해석학’(Hermeneutics)의 어원이 바로 헤르메스다. 마크 와트니와 동료들이 탔던 우주선 이름도 헤르메스다. 마크 와트니가 죽은 줄 알고 지구로 향하던 동료들은 미 항공우주국(NASA)의 메시지를 해석해 다시 화성으로 돌아가 그를 구출해낸다.
신화학자 강대진은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에서 강조한 것은 ‘생존과 귀환’이며, 그것을 위해 필요한 덕목은 인내·절제·지혜라고 했다. 과연 그렇다. 마크 와트니는 1년 반의 외로움을 인내했고, 식량을 절제했으며, 과학적 지식을 총동원하는 지혜를 발휘했다.
그는 루이스 대장(제시카 차스테인)이 남긴 1970년대 디스코 음악을 들으며 외로움을 달랬다. 마크 와트니는 끔찍하다고 툴툴거리면서도 음악에 몸을 맡겨 고독을 이겨냈다. 헤르메스도 태어나자마자 이복형 아폴로의 소를 훔쳐 소 창자와 거북의 등을 이용해 비파를 만들었다. 아폴로는 헤르메스가 연주하는 비파에 정신이 팔려 소도둑을 혼내지도 못했다. 헤르메스는 ‘음악의 신’이기도 하다. 우주선 헤르메스에 음악을 좋아하는 루이스 대장이 있었던 것은 이렇게 신화적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이 영화가 개봉되기 전인 지난 9월28일(현지시각) NASA는 화성에 액체 상태의 물이 ‘소금물 개천’ 형태로 지금도 흐르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를 발표했다. 물은 화성에 외계 생명이 존재할 수 있고, 인간이 화성에 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담고 있다. 붉은빛 별을 보며 외계 생명의 존재를 꿈꿨던 인류의 상상력이 현실화될 날도 그리 머지않았다. 신화는 과학이다.
곽명동 객원기자·<마이데일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