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머리에 떠오른 이 단어의 뜻은 무엇인가. ‘킬러, 네거티브, 무스탕, 저질.’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킬러: 배구에서 공격을 주로 하는 세 사람.’ ‘네거티브: 사진의 원판.’ ‘무스탕: 미국의 대평원에 사는 야생의 작은 말. 기르던 말이 야생화된 것이다.’ ‘저질: 낮은 품질.’
우리가 아는 ‘청부살해업자’나 ‘킬러 콘텐츠’는 없다. 정당의 ‘네거티브 전략’도 알지 못한다. 무스탕을 누가 입는다면 말가죽 옷을 입은 것으로 해석할 만하다. 이 뜻대로라면 인간이 ‘저질’일 수가 없다. 국어교사 박일환은 이 사전을 ‘미쳤다’고 한다. <미친 국어사전>(뿌리와이파리 펴냄)에서 표준국어대사전의 잘못을 낱낱이 밝힌다.
표준국어대사전 발간 때부터 한자어가 너무 많다는 비판을 받았다. 중국 청나라의 연호를 가경, 건륭, 동치, 숭덕, 순치, 함풍 등 일일이 실었고 잘 알려진 건륭제, 옹정제 이름은 한 번 더 실었다. 청전, 청차염, 보복은 중국 청나라의 돈, 소금, 옷이다. ‘옌타이의 옛 이름’이라는 ‘지부’라는 표제어도 있다. 청나라만이 아니다. 국어사전은 외국 이름, 외국 지명도 사랑한다. 오럴법(구두법), 롱샹, 맨틀피스, 로브몽탕트, 가네팅, 스타티세…. 박 교사는 천이나 옷감을 나타내는 외래어를 한 페이지 가득 보여주기도 한다. 일본어 또한 좋아하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우리말이다. 낱말에는 단어를 찾아가라고 되어 있고, 단어에는 단어장, 단어집, 단어명료도, 단어글자 등 표제어가 즐비하다. 단어체계, 단어구조는 있는데 낱말체계, 낱말구조는 없다. 겹낱말은 있는데 홑낱말은 없다.
이렇게 안 쓰는 말과 한자어로 단어 수를 많이 부풀려놓았는데, 전문용어를 부으면서 단어 수는 비약적으로 늘어난다. 발간 당시 ‘전문용어’ 19만 개를 수록했다고 했는데, 이 전문용어의 특색은 설명이 ‘전문가’ 수준이라는 점이다. 원숭이의 설명은 이렇다. “구세계원숭잇과와 신세계원숭잇과의 짐승을 통틀어 이르는 말. 늘보원숭이, 개코원숭이, 대만원숭이 따위가 있다. ≒노유03, 목후, 미원03, 미후02, 원후01, 호손01.” 이 어려운 한자 유사어도 표제어로 실렸으며 뜻이 두세 개씩 된다는 말이다.
이 방대한 언어의 ‘바다’는 미로다. 사전의 기본이 잘못되었다. 설명이 잘못되었다. 설명이 어려워 단어를 다시 찾아봐야 하는데 설명을 찾으면 다시 원래 설명으로 돌아온다. 이런 식으로 뺑뺑이를 돌고 나면 책 제목의 말이 나오는 건 당연해 보인다. 호박무늬는 호박단의 무늬라고 되어 있고, 호박단을 찾으면 태피터로 가란다. 태피터에는 설명이 나온다. “광택이 있는 얇은 평직 견직물. 여성복이나 양복 안감, 넥타이, 리본 따위를 만드는 데에 쓴다. ≒호박단.” 사전을 보고 호박무늬가 뭔지 알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놀랍게도 <표준국어대사전>은 ‘최신’ 업데이트되는 사전이다. 1992년 편찬을 착수해 학자 500명이 8년을 작업해 1999년 10월11일 3권으로 <표준국어대사전>이 발간되었다. 2008년 10월부터 온라인으로 사전을 제공하기 시작했다. 국민 참여로 사전을 개정하고 있는데 2015년 3분기에 국민 참여로 고쳐진 것은 ‘끝부분’ 등을 표제어로 추가한, 고작 22가지다. 미치겠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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