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의 상징 에펠탑은 최적화된 조명 아래 찍힌 사진이 무수히 돌아다닌다. 실제 보는 것은 사진과 비슷한 것을 ‘확인’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한겨레 남종영 기자
영주의 성을 형상화한 놀이공원과 공룡을 재현해놓은 민속박물관. 이나라
현대적인 테마파크의 원조는 애니메이션 제작사 월트디즈니사가 1955년 미국 캘리포니아에 세운 디즈니랜드다. 월트디즈니사는 자사의 대표 캐릭터들을 사용해 “꿈이 이루어지는” 환상의 공간으로 디즈니랜드를 구상했다. 세계 대형 테마파크 대부분을 소유한 디즈니사, 디즈니에 경쟁할 만한 규모의 테마파크를 소유한 유니버설사 모두 20세기 대중적 상상력의 보고인 영화 제작사다. 한국 최초의 대규모 테마파크는 지금은 ‘에버랜드’로 이름을 바꾼 ‘자연농원’이다. 이국의 조형물을 배치하고 약간의 놀이기구, 사파리와 동물원을 갖췄던 자연농원이 1976년 문을 열었고, 대형 놀이기구를 갖춘 종합 놀이공원(amusement park) 서울랜드가 1988년 문을 열었다. 호텔·백화점·영화관·아이스링크 등을 같은 장소에 갖춘 롯데월드 어드벤처는 점차 대형 리조트로 변신했던 디즈니랜드의 모델을 따르며 1989년 문을 열었다. 같은 시기 남한에서 유행하던 후기 자본주의, 고도 소비사회에 대한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의 지지자들은 롯데월드의 사례를 빈번하게 인용했다. 롯데월드는 한번 들어가 소비의 쾌락에 빠져들면 길을 잃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도록 하는 공간으로 묘사됐다. 한 프랑스 학자는 1980년쯤 개척과 모험의 땅 미국을 재현하고 있다는 디즈니랜드를 예로 들어 존재한 적이 없는 것(디즈니랜드)이 원본(미국이라는 실재의 세계)에 오히려 영향을 미치는 새로운 세계의 작동 방식을 설명하려고 애쓰기도 했다. 테마파크는 아니지만 놀이공원은 도시가 팽창하고 여가시간을 확보한 계급이 등장하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전반 사이 서구 대도시에서 휴식과 오락의 공간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1920년대 대공황 이전 미국에는 1천 개 이상의 놀이공원이 존재할 정도였다. 특히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 만국박람회를 개최했던 빈, 파리, 뉴욕 등의 도시들은 기술력을 과시하고 대중에게 눈요기와 오락거리를 제공하기 위해 놀이공원을 지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 등장하는 오스트리아 빈의 놀이공원은 18세기에 처음 만들어졌고 1873년 빈 만국박람회 때 롤러코스터와 대관람차를 추가로 설치했다. 건축가 렘 콜하스는 20세기 맨해튼의 도시계획이 1880년대 조성됐던 뉴욕 코니아일랜드의 놀이공원을 본뜬 것이라고 주장한다. 코니아일랜드 놀이공원이 스카이라인, 복합적인 쾌락과 흥분의 공간을 갖춘 도시의 모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아기의 흥분이 집적된 놀이기구 회화, 사진, 소설, 신문, 상품 진열장에서 이국(異國)의 취향을 대충 맛보며 상상했던 서구인들은 놀이공원에서 좀더 직접적으로 이국을 체험했다. 아프리카 식민지에서 포획한 짐승, 심지어 인간이 놀이공원에 전시됐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런 장소를 가득 채운 호기심이 타 문화와 인간을 존중하지 않는 폭력적인 과정을 용인했음을 비판했다. 이국적인 풍경 사이에는 놀이기구가 설치됐다. 1970년대 어린이대공원의 ‘청룡열차’부터 ‘88열차’ ‘프렌치 레볼루션’ 등 제각각 다른 이름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롤러코스터는 기차가 운행을 시작한 19세기에 등장한 놀이공원의 대표적인 상징이었다. 롤러코스터는 놀이공원을 극단적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현기증의 공간으로 인식되게 했다. 강한 감각적 체험을 제공하는 놀이기구 이외에도 회전목마, 공중그네, 대관람차, 공원을 천천히 가로지르는 모노레일 등 역동적이고 새로운 시야를 열어줄 놀이기구들이 존재했다.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가 열렸을 때 파리 시내에는 대관람차가 설치됐다. 대관람차는 놀이공원 내부나 공원 바깥 도시에 대한 파노라마를 감상할 기회를 제공했다. 1920년대 유럽의 아방가르드 영화작가들은 놀이동산의 연회원인 요즘의 이웃 유치원생들처럼 놀이기구의 감각에 열광했다. 이들에게 놀이공원은 유아기의 욕망과 성적 흥분, 시각적 현란함의 장소였다. 오늘의 테마파크를 다시 떠올려보자. 대체로 ‘랜드’와 ‘월드’ ‘킹덤’ ‘스튜디오’라는 이름을 가진 테마파크 형식의 놀이공원에는 언제나 ‘궁전’(palace)이 아니라 영주의 ‘성’(castle)이 있다. 궁전이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서구 근대 권력의 거처라면 성은 외부의 침략에 맞서 거주민을 보호하는 영주의 거처였다. 그래서 성은 보통 중세적 상상력을 담고 있는 외딴 공간이다. 동화 속 마법의 성에는 성을 지키는 전설 속 괴물, 첨탑에 갇힌 공주, 공주를 구하는 왕자가 존재한다. 성은 숲을 가로지르고 다시 험준한 산 정상까지 올라야 겨우 침입해 들어갈 수 있는 고립된 장소다. 물론 노동과 의무, 규칙의 지배를 받는 동시대 일상 세계의 거주자는 모험을 감당하는 대신 돈을 지급하면 일상 바깥의 환상을 부여하는 테마파크에 입장할 수 있다. 고교 자율학습 시간에 견딜 수 없는 학교를 벗어나 롯데월드로 도망치곤 했다는 친구는 ‘어둠’ 속에서 배를 타고 모험을 하는 ‘신밧드의 모험’을 제일 좋아했다고 한다. 19세기 서구의 상상물이 21세기 남한에 19세기 유럽인들은 만국박람회장과 놀이동산 속에 자신들이 발견했다고 믿었던 세계의 기물을 재현하고자 했다. 21세기 남한 첨단의 테마파크 내부는 여전히 19세기 서구가 상상했던 이국의 풍경, 역사의 풍경을 모방한다. 공룡과 인기 3D·4D 애니메이션의 배경과 캐릭터가 더해졌지만 여전히 열기구 아래 그리스 신전과 풍차, 중세의 성, 야자수가 곳곳에서 이국에 대한 서구의 판타지와 시각적 상상력을 답습한다. 19세기 서구가 상상하고 재현한 세계의 이미지는 이제 한국의 테마파크에 와서 연신 사진을 찍는 21세기 아시아 관광객의 상상력을 구속하고 제한할지 모른다. 그리고 놀이공원과 테마파크에서 이국의 풍경을 체험하던 일단의 지구인들은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내며 이국으로 직접 여행을 떠난다. 스스로 판타지가 되려는 관광지의 풍경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세계의 진위와 운명을 염려하지 않는다. 우리는 과연 테마파크 바깥을 여행하고 있을까? 이나라 이미지문화 연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