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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암살’에는 없고 ‘베테랑’에는 있는 것

흥행에 성공한 건 메시지보다는 오락적 쾌감 때문… 폭력의 스펙터클에 매혹된 시선까지 위장하지 않는 영화적 솔직함의 미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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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0-06 15:00 수정 : 2015-10-0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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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올여름 <암살>과 <베테랑>(사진)이 1천만 관객을 돌파하자, 다수의 매체들은 흥행 원인을 두 영화의 소재 혹은 이야기에서 찾았다. 이렇게 정리해도 되겠다. ‘<암살>은 독립투사의 이야기이고 <베테랑>은 재벌과 이에 저항하는 소시민 형사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들은 지금 대한민국 현실정치의 빈곤함을 겨냥해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암살>과 <베테랑>은 한국 사회의 현실을 환기하고 관객에게 대리만족을 주며 메시지 전달과 흥행에 성공한 영화로, 서로 유사한 맥락에서 자리매김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암살>과 <베테랑>은 막대한 제작비를 들여 만든 오락영화다. 두 영화에 대한 관객의 충족감은 이들의 메시지가 아니라 폭력의 스펙터클이 주는 오락적 쾌감에서 비롯됐을 확률이 훨씬 높다. 그 스펙터클 자체나 거기서 야기된 쾌감이 잘못됐다고 말하려는 건 물론 아니다. 다만 우리가 그 폭력의 순간들을 즐길 수 있었던 이유가 ‘정의 대 불의의 싸움’이라는 서사적 맥락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건 솔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그 주장은 개별 작품의 영화적 고유함을 읽어내는 데도 실패한 접근 방식이다.

두 영화는 다르다. 단지 다루는 내용의 차이가 아니라, 자신이 창조한 세계를 바라보는 영화적 시선의 차이 때문에 그렇다. 공교롭게도 <암살>과 <베테랑>에선 결정적 국면에 어린아이가 등장해 영화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그러나 그 장면들에 숨겨진 두 영화의 태도는 극명하게 나뉜다.

<암살>의 안옥윤 일행이 작전에 실패한 뒤, 사건 현장에서 하와이 피스톨(하정우)은 일본 군인 카와구치와 재회한다. 그때 꽃을 파는 소녀가 불쑥 등장해 카와구치가 쏜 총에 맞아 쓰러진다. 이 장면이 주는 충격은 우리가 소녀에 대해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소녀의 극적이고 급작스러운 죽음만을 보고 있다는 점에 기인한다. 영화는 이 죽음이 왜 필요했을까. 대답은 명확하다. 소녀의 죽음은 일본군의 사악함을 재차 강조함과 동시에 하와이 피스톨이 독립군 편에 서게 될 계기를 마련해준다. 이 장면이 사악하다면, 그건 나쁜 일본군이 죄 없는 한국 소녀를 무참히 쏴서가 아니라, 소녀의 죽음이 이야기의 전개를 위해 무참히 기능적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야기를 추동하는 전능한 위치에서 소녀의 죽음을 그저 구경하고 있다.

<베테랑>에서 재벌가 아들 조태오(유아인)는 밀린 임금을 받으러 온 배 기사(정웅인)와 사태의 주범인 전 소장(정만식)에게 서로를 향해 주먹질을 하라고 명령한다. 조태오는 배 기사가 데려온 어린 아들을 붙잡고 아버지가 처절하게 맞고 쓰러지는 모습을 보게 한다. 그때 대다수의 우리는 마치 결백한 아이의 처지에 놓인 듯, 용납할 수 없는 이 잔인한 장면을 어쩔 수 없이 보고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이 장면 이전과 이후에 등장하는 각종 폭력의 스펙터클을 마음껏 즐긴 우리가 이 순간에서만 괴로움을 느낀다고 토로하는 건 이상한 일 아닌가. 그 장면이 섬뜩한 이유는 거기 작동하는 영화적 시선이 폭력을 즐기는 조태오와 폭력을 강제로 지켜보는 아이 사이에서 위태롭게 흔들린다는 데 있다. 달리 말해, 이 영화는 폭력 바깥에 서서 그것을 선악의 구도 속에서 판정하며 스스로를 도덕적으로 무결한 위치에 두는 대신, 폭력의 스펙터클에 매혹된 자신의 시선을 위장하지 않는다.

<암살>에는 없으나 <베테랑>에 있는 것은 자신이 구축한 사태를 바라보는 바로 그 시선이다. 소재나 메시지의 ‘정치적 올바름’보다 중요한 건 영화가 자신의 세계에 어떤 방식으로 시선을 기입하는지의 문제다. 그 지점에서 우리는 최소한의 영화적 솔직함을 판별할 수 있다. 그 솔직함은 한 편의 상업 오락영화로서 <베테랑>이 성취한 영화적 활력의 쾌감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남다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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