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채 속에 끝난 <오페라의 유령> 첫 공연… 국내 대형공연 제작환경에 전환점될 듯
“국내에서, 더군다나 한국어로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는 솔직히 별 기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기대 이상의 공연이었습니다. 한국어라 이해하기도 쉬웠고, 브로드웨이에서 봤을 때보다 가수들의 노래도 더 훌륭했던 것 같습니다.”
5개월 동안 설왕설래가 오가던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붉은 커튼을 올리고 처음으로 관객 앞에 모습을 드러낸 12월2일. 공연장에서 만난 한 관객의 얼굴에는 공연이 끝난 뒤 무대 위로 던져졌던 수십 송이의 붉은 장미꽃처럼 홍조가 피어났다. 세번의 커튼콜을 받으며 무대에서 인사하는 배우와 스탭들의 얼굴에도 조심스런 안도의 웃음이 퍼졌다.
브로드웨이보다 낫더라
국내 뮤지컬 평균 제작비의 열배를 웃도는 100억짜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준비기간 동안 쏟아졌던 불안과 의심의 시선들을 불식시키며 7개월 대장정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구조물뿐 아니라 무대를 둘러싼 장식까지 꽁꽁 싸맨 상태의 어두컴컴한 무대에서 시작된 경매장면. 극의 배경이 되는 파리 오페라 극장이 겪었던 불행의 상징물인 ‘재앙의 샹들리에’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객석 한가운데 천장으로 올라가는 동안 바로크풍의 화려한 무대장식이 베일을 벗으며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거대한 코끼리 모형이 동원된 극중 극 <한니발>의 연습장면. 수천개의 촛불이 빛나는 가운데 안개 자욱한 지하동굴에서 미끄러지듯 배를 타고 등장하는 주인공 크리스티와 유령 등 오스트레일리아에서 40피트 컨테이너 26개에 실려온 무대 세트와 장치들은 블록버스터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블록버스터 뮤지컬의 장중한 스펙터클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특히 등장인물이 모두 무대에 선 2막 도입부 가면무도회에는 30억원을 쏟아부은 화려한 의상들이 저마다의 빛깔을 자랑하며 볼거리의 극치를 만들어냈다. 공연장인 LG아트센터의 구조 때문에 촛불이 바닥에서 솟아오르거나 등장인물들이 홀연히 무대 아래로 사라지는 장면 등은 재현되지 못했지만 철저하게 계산된 배우들의 움직임과 무대전환, 조명 등을 통해 전체적으로 완성도 있는 무대가 됐다는 게 중평이다. 9차에 걸쳐 진행된 까다로운 오디션을 통과한 주인공들의 노래실력도 관객의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여주인공 크리스틴 역의 이혜경씨를 비롯해 대부분의 배우들이 뮤지컬계에서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신인들이었지만 까다로운 성악적 기교를 무난히 소화했다. 유령 역의 윤영석씨는 두어번 정도 불안정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뛰어난 감성연기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관객은 “영국에서 본 같은 역할의 가수보다 훨씬 담백하면서 호소력 있게 노래해 마지막 장면에서 코끝이 시큰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첫 공연을 본 관객 중 많은 사람들이 외국공연과 비교할 정도로 이미 미국이나 영국 여행에서 이 작품의 관람을 필수코스에 넣고 있는 유명한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은 이미 13개 나라에서 개막해 전세계 6천만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프랑스 작가인 가스통 르루의 동명소설을 뮤지컬음악의 귀재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86년 음악으로 빚어낸 작품으로 이번 공연 역시 로이드 웨버가 대표로 있는 RUG(The Really Useful Group.Ltd)가 제미로(대표 설도윤)와 함께 제작해 연출, 안무 등을 담당했다. 국내 영화의 투자방식 도입
태어나면서부터 추한 얼굴로 인해 사람들을 등지고 사는 정체불명의 ‘유령’, 그리고 그가 사랑에 빠지는 프리마돈나 크리스틴과 귀족청년 라울의 삼각관계를 중심으로 파리 오페라 극장의 몰락을 그리는 이 뮤지컬은 플롯의 정교함과 오페라처럼 화려한 음악적 구성으로 사랑받는 작품. 정식으로 성악교육을 받지 않은 배우들에게는 도전이 쉽지 않은 뮤지컬로 사라 브라이트만은 크리스틴 역을 통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기도 했다. 국내 뮤지컬 배우층이 두텁지 않음을 염려해 오디션 때 해외 배우의 기용을 배제하지 않았지만 다행스럽게도 대사를 전달하는 모든 배역을 한국 배우들이 맡아 관객으로서는 한결 부담없는 감상이 가능하게 됐다.
작품이 베일을 벗은 지금 가장 큰 관심거리는 100억원이라는 제작비 회수가 가능할까 하는 문제. 개막 이전에 벌써 12월달의 예매율이 90%를 넘었고, 예매된 티켓이 4만7천장에 이르지만 손익분기점을 넘기 위해서는 공연기간 내내 좌석점유율 60%를 넘겨야 한다. 프리뷰와 초연의 관람평이 대부분 “기대 이상”이고, <오페라의 유령> 원작소설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관심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VIP석 15만원, R석 10만원, S석 6만원 등 국내 다른 뮤지컬에 비해 높은 가격 책정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가장 예매율이 높은 좌석은 R석. 초연 전 하나은행에서 VIP고객을 위한 프리뷰 공연을 마련했고, 현대자동차에서도 차량 구매자 선물용으로 대량의 표를 구매하는 등 기업체들의 홍보 마케팅과 맞물려 주최쪽은 여유있는 표정을 짓고 있다. 이제 대장정의 돛을 올린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여부는 국내 대형공연 제작 환경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 작품은 대규모화되고 있는 국내 영화의 투자방식을 도입했다. 미래에셋, 산은캐피털, 코리아픽처스 등 영화에 투자해온 투자사들이 처음으로 공연작품에 대규모의 투자를 해 제작비를 모았다. 한주에 5천원 하는 네티즌 공모도 시행해 개장 5초 만에 2억5천만원의 네티즌 펀딩을 마감하기도 했다. <오페라의 유령>이 성공할 경우 영화쪽에만 몰리던 투자사들의 쌈짓돈이 공연작품에도 흘러들어와 대규모 공연물 제작 활성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오페라의 유령>의 성공이 가뜩이나 브로드웨이의 대형뮤지컬만 장사가 되는 국내 공연문화의 양분화를 심화시키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창작뮤지컬을 주로 제작하는 한 극단의 관계자는 “좋은 뮤지컬의 성공은 잠재관객을 극장으로 끌어오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전제하면서도 “볼거리 중심의 상업적인 작품으로만 관객이 몰리면 물량에서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저예산 창작뮤지컬이나 정통극, 실험극에 대한 투자는 더욱 빈곤해질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했다.
제작비 회수 가능할까
높은 티켓가격과 평균적인 공연 수준을 압도하는 제작비 등에서 <오페라의 유령>은 여전히 비판의 불씨를 안고 있다. 그렇지만 스타시스템에 의존했던 기존 제작방식에서 탈피해, 엄정한 오디션을 통해 실력있는 새 얼굴을 발굴했다는 점과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대한 일반관객의 궁금증과 갈증을 채워줬다는 점 등에서는 바람직한 기여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다. 초연에서 기대만큼의 혹은 기대 이상의 반응을 얻은 <오페라의 유령>은 일단 순항을 시작했다. 그러나 수백개의 프린트를 동시상영해 제작비 회수가 어렵지 않은 블록버스터영화와 달리 한회 한회 땀을 놓듯 관객의 수를 차곡차곡 쌓아가야 하는 장기 공연의 성패는 아직 미지수다. 두세달이 지나야 윤곽이 드러날 <오페라의 유령>의 성패는 어떤 식으로든 우리 공연문화의 중요한 갈림길을 만들어놓을 것으로 보인다.
글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사진/ 가면무도회 장면. 30억원을 쏟아부은 화려한 의상들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국내 뮤지컬 평균 제작비의 열배를 웃도는 100억짜리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은 준비기간 동안 쏟아졌던 불안과 의심의 시선들을 불식시키며 7개월 대장정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구조물뿐 아니라 무대를 둘러싼 장식까지 꽁꽁 싸맨 상태의 어두컴컴한 무대에서 시작된 경매장면. 극의 배경이 되는 파리 오페라 극장이 겪었던 불행의 상징물인 ‘재앙의 샹들리에’가 모습을 드러내면서 객석 한가운데 천장으로 올라가는 동안 바로크풍의 화려한 무대장식이 베일을 벗으며 관객의 탄성을 자아냈다. 거대한 코끼리 모형이 동원된 극중 극 <한니발>의 연습장면. 수천개의 촛불이 빛나는 가운데 안개 자욱한 지하동굴에서 미끄러지듯 배를 타고 등장하는 주인공 크리스티와 유령 등 오스트레일리아에서 40피트 컨테이너 26개에 실려온 무대 세트와 장치들은 블록버스터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블록버스터 뮤지컬의 장중한 스펙터클을 아낌없이 보여줬다. 특히 등장인물이 모두 무대에 선 2막 도입부 가면무도회에는 30억원을 쏟아부은 화려한 의상들이 저마다의 빛깔을 자랑하며 볼거리의 극치를 만들어냈다. 공연장인 LG아트센터의 구조 때문에 촛불이 바닥에서 솟아오르거나 등장인물들이 홀연히 무대 아래로 사라지는 장면 등은 재현되지 못했지만 철저하게 계산된 배우들의 움직임과 무대전환, 조명 등을 통해 전체적으로 완성도 있는 무대가 됐다는 게 중평이다. 9차에 걸쳐 진행된 까다로운 오디션을 통과한 주인공들의 노래실력도 관객의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여주인공 크리스틴 역의 이혜경씨를 비롯해 대부분의 배우들이 뮤지컬계에서 아직 이름을 얻지 못한 신인들이었지만 까다로운 성악적 기교를 무난히 소화했다. 유령 역의 윤영석씨는 두어번 정도 불안정한 목소리를 내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뛰어난 감성연기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 관객은 “영국에서 본 같은 역할의 가수보다 훨씬 담백하면서 호소력 있게 노래해 마지막 장면에서 코끝이 시큰했다”고 소감을 말했다. 첫 공연을 본 관객 중 많은 사람들이 외국공연과 비교할 정도로 이미 미국이나 영국 여행에서 이 작품의 관람을 필수코스에 넣고 있는 유명한 뮤지컬인 <오페라의 유령>은 이미 13개 나라에서 개막해 전세계 6천만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프랑스 작가인 가스통 르루의 동명소설을 뮤지컬음악의 귀재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86년 음악으로 빚어낸 작품으로 이번 공연 역시 로이드 웨버가 대표로 있는 RUG(The Really Useful Group.Ltd)가 제미로(대표 설도윤)와 함께 제작해 연출, 안무 등을 담당했다. 국내 영화의 투자방식 도입

사진/ 지하동굴에서 배를 타고 등장한 주인공과 유령. 무대세트와 장치들이 장중한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

사진/ <오페라의 유령>은 플롯의 정교함과 화려한 음악적 구성으로 사랑받는 작품이다. 이미 전세계 6천만이 관람했다.
사진 김종수 기자 jongsoo@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