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두편의 영화로 다시 찾아온 데이비드 린치가 선사하는 기괴한 세계
지금 극장에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스트레이트 스토리> 두편이 동시에 걸려 있다. 하지만 ‘린치 붐’이 일어나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데이비드 린치는 다수가 아니라, 소수의 관객에게만 열광적인 호응을 얻어온 ‘컬트 작가’다. 데이비드 린치의 데뷔작 <이레이저 헤드>(1977)는 <엘 토포> <록키 호러 픽쳐쇼>와 함께 심야극장에서 장기상영되었던 컬트영화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혹시 <스트레이트 스토리>에서 데이비드 린치의 이름을 처음 발견했다면, 그런 평가가 의아할 수도 있겠다. 73살 노인의 6주간의 여정을 담은 아름다운 로드무비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데이비드 린치가 지금까지 펼쳐왔던 기괴한 영화세계에서는 비껴난 작품이다. 스스로 “실험적인 영화”라고 부를 만큼, 은근한 아름다움이 배어나오는 작품이다.
중산층의 위선에 침을 뱉다
올해 칸영화제에 출품되었던 최신작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세계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린치의 영화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악몽’이다. 린치의 영화는 정말 악몽을 꾸는 것처럼, 몸 속으로 스멀스멀 기어들어온다.
“나의 영화는 살아가면서 언어로 구체화시키지 못하는 비논리적인, 혹은 추상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성이 아닌 직감에 의해서 받아들이면 말이다.” 린치의 말은, 그의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코멘트다. 이성과 논리가 아닌, 느낌과 감정으로 받아들일 것.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자동차사고를 당한 뒤 기억을 잃어버린 리타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막 LA에 온 배우지망생 베티는 그녀가 기억을 찾는 것을 도와준다. 그런데 찾은 기억은 모든 것이 뒤틀려 있다. 리타는 카밀라 로즈라는 인기 배우였고, 베티는 카밀라를 사랑하는 다이안이다. 인물들이 뒤집히고 비틀리는 것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모든 사건들의 인과관계가 허물어지고 단절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끔찍한 ‘악몽’일 뿐이다. 첫 단추부터 그랬다. 아보리아츠 SF/판타스틱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이레이저 헤드>는 데이비드 린치가 살았던 필라델피아의 낡고 스산한 풍경을 담고 있다. 주인공인 헨리 스펜서는 헤어진 여자 친구 메리의 집에 갔다가, 괴물처럼 괴상하게 생긴 아기가 자신의 아이임을 알게 된다. 아이를 데리고 온 스펜서는, 라디에이터를 바라보며 금발 여인의 환상에 빠져든다. 환상의 무대 속으로 빨려들어간 스펜서의 머리가 똑 떨어지고, 지나가던 아이가 주워서 공장으로 가져간다. 스펜서의 머리는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가 된다. <이레이저 헤드>는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와 60년대 아방가르드 영화의 스타일을 혼용하고, 공포영화와 필름 누아르 등 여러 장르에서 인용한 요소와 모티브가 뒤섞여 있다. 대사와 상황은 시트콤처럼 부조리한 상황과 대사들이 연발된다. <이레이저 헤드>가 개봉되었을 때 <뉴스위크>의 잭 크롤은 “우주에 만연한 타락 그 자체”라고 평했다. 일종의 악취미를 가진 데이비드 린치는 현실의 그럴듯한 포장, 특히 중산층 가정의 위선을 잘근잘근 씹어댄다. 신랄한 비난은 <블루 벨벳>으로 이어진다. 미국인들의 ‘좋았던 시절’ 50년대의 노래와 주택가가 나오는 영화의 첫 장면, 화사한 정원에서 주인공은 잘린 귀 한쪽을 발견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엇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충격적인 ‘이미지’로 그려내는 린치의 재능은 <블루 벨벳>에서 만개했다. 폭력적이고, 자학적이고,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혼돈. 스크린 뒤, 성장기의 어둠
이런 정서는 린치의 성장 배경에서 연유한다. 46년 몬태나에서 태어난 린치는 필라델피아의 공업지대에서 성장했다. 늘 공장의 소음이 들려오고, 모든 것이 멈춰버린 듯한 낡은 도시. 도시, 중산층, 희망 같은 단어들은 린치에게 거짓이었다. 그는 현실의 이면에 자리잡은 기괴한 것들에 끌렸다.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예술대학을 자퇴하고, 유럽여행은 가자마자 돌아오고 그는 현실과는 악수하지 못했다. 린치의 관심은 평범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심연에 자리잡은 어둠이었다. 스티븐 킹 원작, 존 카펜터 연출의 <매드니스>란 공포영화를 보면, 안개낀 도로를 달리다가 ‘뒤틀린 공간’에 자리잡은 마을로 빠져드는 장면이 나온다. 그것은 <로스트 하이웨이>와 <멀홀랜드 드라이브>가 제공하는 경험과 일치한다. 목적지까지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달리지만, 그 과정은 결코 ‘현실’이 아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논리적으로 설명되고 인과율이 지배하는 곳이지만, 그 이면에는 불가해한 무엇이 자리잡고 있다. 린치는 일관되게 그 ‘불가능한 것’을 영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레이저 헤드>가 심야극장에서 인기를 모으자, 패러디영화의 제왕인 멜 브룩스가 데이비드 린치를 불러들인다. 기형의 몸을 가졌던 실제 인물 존 메릭의 지독한 꿈과 현실을 그려내는 데 린치만한 인물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흑백으로 촬영된 <엘리펀트 맨>은 린치의 작품 중에서, <스트레이트 스토리>와 유사하다. 영화라는 매체가 가장 잘 다룰 수 있는 ‘감정’을, 아주 능숙하게 끌어내는 것. 처음에는 단지 그의 신체를 동정하다가, 점차 ‘인간의 증명’으로 끌어가는 린치의 연출력은 어떤 멜로영화의 감독 못지않게 서정적이다. <엘리펀트 맨>이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며 연출력을 인정받은 린치는 대작인 <사구>를 만들게 되지만, 제작사와 다투고 흥행에서는 실패한다. 이후 린치는 할리우드와 적당히 거리를 두고 만든 <블루 벨벳>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완성하고, <광란의 사랑>으로 칸영화제 그랑프리를 수상한다. 미국 인디펜던트영화의 거장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데이비드 린치가 TV에 도전한 <트윈 픽스>는 성과 폭력, 이야기의 구조 등 모든 면에서 TV시리즈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트윈 픽스>는 평화로워 보이는 소도시 트윈 픽스에서 벌어지는 기묘한 연쇄살인사건에 얽힌 이야기다. 처음에는 질투와 치정, 욕망의 결과로 빚어진 단순 범죄처럼 보이지만 파고들어갈수록 악취는 심해진다. 마을 전체가 악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고, 초자연주의적인 존재까지 개입해 있다. <트윈 픽스>에서 데이비드 린치는, 자신의 소우주를 광활하게 펼쳐놓는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세계란 이런 곳이다, 라고 말하듯 기괴한 세계의 모든 것을 그려낸다. 이 세계처럼, <트윈 픽스>에도 결말이 없다. 린치는 컬트를 대중문화의 주류로 끌어올렸고, <트윈 픽스>는 90년대의 컬트가 되었다,
브라운관 속의 환상 <트윈 픽스>
“70년대에 대학생들이 심야극장에 가서 <이레이저 헤드>를 봤다면 90년대에는 텔레비전으로 토요일 저녁에 <트윈 픽스>를 본다.”(<빌리지 보이스>의 영화평론가 짐 호버먼)
<트윈 픽스>의 극장판을 만든 뒤 린치는 <로스트 하이웨이>를 연출했다. <로스트 하이웨이>는 감정이 개입하지 않는다. 재즈 연주자 프레드는 아내의 살인범으로 몰리고 감옥에 수감된다. 다음날 아침 프레드가 사라지고 정비공인 피트가 남아 있다. 피트의 기억 속에서 르네는 마피아의 정부가 되어 그를 유혹한다. <로스트 하이웨이>는 <멀홀랜드 드라이브>와 마찬가지로 인물과 인물, 사건의 인과관계, 시간과 공간이 뒤틀리면서 기묘한 악몽을 연출한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린치의 이미지는 전작들보다 훨씬 강렬하다. <블루 벨벳>에서 정점에 올랐던 린치의 스타일은, <로스트 하이웨이>에서 불꽃을 발한다. 이야기는 이해불가능이지만, 이미지만은 그대로 낙인처럼 찍힌다. 예나 지금이나 데이비드 린치는 ‘환상’ 다른 말로는 ‘악몽’을 탁월하게 이미지로 옮겨내는 거장이다. 그런 점에서 린치는, 스필버그와 루카스와 동일한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스필버그의 시선이 우주에 꽂히는 동안 린치는 고름이 튀고, 역한 냄새가 나는 내면의 덧난 상처를 끊임없이 헤집고 있다. 데이비드 린치는 우리 마음의 지옥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김봉석/ 영화평론가

“나의 영화는 살아가면서 언어로 구체화시키지 못하는 비논리적인, 혹은 추상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지성이 아닌 직감에 의해서 받아들이면 말이다.” 린치의 말은, 그의 영화에 대한 직접적인 코멘트다. 이성과 논리가 아닌, 느낌과 감정으로 받아들일 것.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자동차사고를 당한 뒤 기억을 잃어버린 리타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막 LA에 온 배우지망생 베티는 그녀가 기억을 찾는 것을 도와준다. 그런데 찾은 기억은 모든 것이 뒤틀려 있다. 리타는 카밀라 로즈라는 인기 배우였고, 베티는 카밀라를 사랑하는 다이안이다. 인물들이 뒤집히고 비틀리는 것만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그리고 모든 사건들의 인과관계가 허물어지고 단절된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냥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끔찍한 ‘악몽’일 뿐이다. 첫 단추부터 그랬다. 아보리아츠 SF/판타스틱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이레이저 헤드>는 데이비드 린치가 살았던 필라델피아의 낡고 스산한 풍경을 담고 있다. 주인공인 헨리 스펜서는 헤어진 여자 친구 메리의 집에 갔다가, 괴물처럼 괴상하게 생긴 아기가 자신의 아이임을 알게 된다. 아이를 데리고 온 스펜서는, 라디에이터를 바라보며 금발 여인의 환상에 빠져든다. 환상의 무대 속으로 빨려들어간 스펜서의 머리가 똑 떨어지고, 지나가던 아이가 주워서 공장으로 가져간다. 스펜서의 머리는 연필 끝에 달린 지우개가 된다. <이레이저 헤드>는 독일의 표현주의 영화와 60년대 아방가르드 영화의 스타일을 혼용하고, 공포영화와 필름 누아르 등 여러 장르에서 인용한 요소와 모티브가 뒤섞여 있다. 대사와 상황은 시트콤처럼 부조리한 상황과 대사들이 연발된다. <이레이저 헤드>가 개봉되었을 때 <뉴스위크>의 잭 크롤은 “우주에 만연한 타락 그 자체”라고 평했다. 일종의 악취미를 가진 데이비드 린치는 현실의 그럴듯한 포장, 특히 중산층 가정의 위선을 잘근잘근 씹어댄다. 신랄한 비난은 <블루 벨벳>으로 이어진다. 미국인들의 ‘좋았던 시절’ 50년대의 노래와 주택가가 나오는 영화의 첫 장면, 화사한 정원에서 주인공은 잘린 귀 한쪽을 발견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엇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서 충격적인 ‘이미지’로 그려내는 린치의 재능은 <블루 벨벳>에서 만개했다. 폭력적이고, 자학적이고, 꿈과 현실을 구분할 수 없는 혼돈. 스크린 뒤, 성장기의 어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