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겨레21 ·
  • 씨네21 ·
  • 이코노미인사이트 ·
  • 하니누리
표지이야기

그 찬란했던 힙합공동체

387
등록 : 2001-12-05 00:00 수정 :

크게 작게

주류의 입김에 무너져버린 ‘힙합의 메카’ 클럽 마스터플랜의 성과와 한계

사진/ 마스터플랜에서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팀들이 생겨나면서 주류에서 이미 스타였던 DJ DOC가 MP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홍익대 앞 클럽 마스터플랜 앞에는 입장을 기다리는 관객의 줄이 꼬리를 이었다. 클럽 수용인원 200명의 뒷줄에 선, 그보다 훨씬 많은 숫자의 관객은 “음악소리라도 들을 수 있도록 공연시간 동안 문을 열어달라”며 안타까워했다. 이날은 언더그라운드 힙합팬들 사이에서 ‘힙합의 메카’로 통하는 클럽 마스터플랜이 마지막 공연을 하는 날이었다. 11월24일, 25일에 걸쳐 열렸던 마지막 무대에는 마스터플랜에서 성장한 24개 힙합팀들이 올라왔다. 힙합팀들 가운데 더러는 객석을 메운 관객과 함께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97년 겨울에 문을 연 마스터플랜은 그보다 일찍 주목받기 시작한 드럭과 함께 홍대 앞을 대표하는 클럽으로 자리잡았다. 비슷한 시기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던 클럽들이 운영난으로 절멸하다시피한 요즘도 공연 때마다 100명 가까운 청중을 끌어모으고 있는 이 클럽의 갑작스런 폐업선언은 의외의 ‘사건’이다.

갈등의 싹, 주류와 비주류의 혼재

드럭이 개장 초기부터 펑크클럽으로 정착한 데 비해 마스터플랜은 록, 테크노 등 다양한 장르의 무대를 선보이다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힙합클럽으로 자리잡아왔다. 밴드나 개인별로 활동하는 다른 음악장르와 달리 비슷한 음악적 성향을 가진 뮤지션들이 일종의 패(crew)를 만들고 무한증식하면서 공동작업을 하는 힙합음악의 특성과 맞물려 마스터플랜은 짧은 시간에 거대한 MP(MasterPlan)패밀리를 형성했다. 이 가운데 드렁큰 타이거, 허니 패밀리 등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둔 팀들이 생겨나고, 주석 같은 언더그라운드의 스타들이 탄생하면서 MP는 언더와 오버의 경계를 허무는 무대가 됐고, 주류 음악판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가지게 됐다. 주류에서 이미 스타였던 이현도나 DJ.DOC가 MP 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주류와 비주류의 혼재와 융화는 갈등이 싹이기도 했다. 음악적 성향이 다른 멤버간의 불화가 극심해져 패밀리라는 ‘초심’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7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던 MP레이블의 첫 앨범 를 제작하면서 멤버간 갈등은 불거지기 시작했다. 같은 무대에 서기를 거부할 정도로 서로에게 배타적인 분위기가 형성됐고, 독집 앨범 제작중에 있던 한팀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면서부터 이탈 멤버가 속속 늘어났다.

멤버들의 상업적 성공 역시 MP에 딜레마가 됐다. MP에서 주목받자 메이저음반사의 입질을 받은 멤버들이 무대를 등진 것이다. 계약상태에 있던 한 뮤지션은 어느날 갑자기 다른 음반사에서 제작한 앨범을 들고 나타나 MP관계자들을 황당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들의 계약형태가 음반제작을 위한, 단기간의 느슨한 것이기는 했지만 일방적인 파기는 다른 멤버나 관계자들에게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과정에서 힙합공동체라는 MP의 이념은 사라지고 뮤지션들이 주류에 진입하기 위한 홍보도구로 전락하는 부작용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팀들한테는 마스터플랜이 ‘뜨기 위해서’ 한번 발도장을 찍어야 하는 상표처럼 인식된 거죠.” 마스터플랜의 최한수 대표는 “우리가 하고 싶은 방식의 문화를 만들 수 없을 때 클럽의 존재는 무의미하다는 결론을 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한다.

당분간 레이블로만 남을 예정

사진/ 지난해 7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던 MP레이블의 첫 앨범.
당분간 마스터플랜은 레이블로만 운영할 예정이다. 현재 남아 있는 8개 소속팀의 음반을 제작하면서 힙합포털사이트와 힙합전문스튜디오를 준비하고 있다. “원하는 스타일과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여건이 될 때” 다시 클럽의 문을 열 생각이지만 시점은 무기한이다.

클럽 마스터플랜의 성공과 실패는 우리 클럽문화의 척박한 토양을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만하다. 주류의 틈새를 파고드는 가능성을 입증했던 언더그라운드의 자생력이 주류의 작은 입김에 허약하게 무너진 것이다. 마스터플랜의 간판이 내려짐으로 인해 한국의 언더그라운드음악과 문화는 한참을 뒤로 돌아가 다시 출발하게 됐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좋은 언론을 향한 동행,
한겨레를 후원해 주세요
한겨레는 독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취재하고 보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