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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포커페이스의 진짜 얼굴

스팅의 노래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는 왜 <레옹>의 마지막에 쓰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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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04 16:08 수정 : 2015-09-0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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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레옹>의 맨 마지막 장면에 스팅의 곡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Shape Of My Heart)가 흐르는 건 많이들 알고 있을 것이다. 사실 그 곡이 유명해지게 된 이유에 <레옹>이 큰 역할을 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러나 영화가 준 재미와 감동의 여운과는 별개로, 나는 그 곡이 왜 그 영화의 그 자리에 쓰인 것인지 한동안 이해되지가 않았다. 이걸 이해한 게 불과 몇 년 전이다.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는 원래 스팅의 <텐 서머너스 테일스>(Ten Summoner’s Tales·1993·사진)에 실린 곡이었다. 영국 고전문학 중 하나인 제프리 초서의 <캔터베리 이야기> 형식에 스팅 자신의 창작분을 역할극처럼 끼워넣은, 거의 콘셉트 앨범 수준의 강한 ‘통짜’ 맥락을 갖고 있던 이 앨범은, 간단히 말해 스팅이 소환자(원래 이름의 성이 Sumner로, 앨범 제목의 summoner, 즉 중세의 법정 소환자 직책에서 유래된 것)에 빙의해 개별적인 ‘열 가지’ 이야기를 노래로 들려주는 형식이다. 그중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는 카드게임을 하는 한 남자가 주인공이다. 그에게 카드는 돈이나 명예를 얻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오랜 신비를 간직한 철학적 도구다. 실제 그는 ‘명상을 하듯’ 패를 돌리고 ‘성스럽고 비밀스러운 확률의 법칙’을 알고 싶어 숫자를 예측하는 남자다. 제일 잘 알려진 후렴구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스페이드는 군인의 칼이고/ 클럽은 전쟁의 무기라지/그리고 다이아몬드는 이 업계의 돈/ 하지만 내 마음은 그런 모양이 아니야

여기서 우리가 잘 아는 트럼프의 네 가지 문양이 유래와 함께 설명되고, 그 설명은 화자 자신의 진심을 표현하기 위해 기능한다. 현재의 카드는 고대 타로카드에서 유래됐는데, 그 때문인지 문양과 의미가 거의 상통한다. 즉, 게임이 아닌 점을 치기 위한 용도로서의 타로카드 중 마이너 카드에 해당하는 네 종류의 검·지팡이·동전·컵이 각각 오늘날의 저 스페이드·클럽(클로버가 아니라 곤봉)·다이아몬드·하트로 변모한 것이다. 카드의 철학을 탐구하는 구도자 같은 그이니 자기 직업을 친절하게 우리에게 설명해주는 톤이라고 오해할 법도 하다. 그런데 이건 그가 진짜 전하려는 바가 아니었다.

내가 널 사랑한다 말하면/ 넌 뭔가 잘못됐다 느끼겠지/ 하지만 난 표정이 많은 남자가 아냐/ 내가 쓰는 가면은 하나뿐이니까/ 말을 하는 사람은 몰라서 그런 거야/ 그리고 쓴맛을 보고서야 알게 되겠지/ 너무 자주 자기 운을 탓하거나/ 잃을 걸 두려워하는 그런 자들처럼

모름지기 카드 플레이어라면 포커페이스는 필수일지언정 여러 얼굴을 돌려쓰는 사기꾼은 아니다. 적어도 이 노래 속의 주인공 남자는 그렇다. 무뚝뚝하고 그래서 진심을 전하기 힘들지만 어쨌든 그는 그녀를 사랑하고 그 일편단심인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래서 영화 <레옹>은 이런 사랑 고백을 과묵한 킬러에 대한 애도 테마이자 마틸다에 대한 그의 마지막 유언처럼 배치했던 것이다.

스팅이 쓰는 가사들은 상황도 표현도 비교적 명확한 편이다. 잠시지만 영어 교사를 했던 흔적인지 각운도 늘 깔끔하고 비유도 적절하다. 이 앨범 <텐 서머너스 테일스>가 작사 면에서 그의 최고작인지는 알 수 없으나, 곡마다 상상력을 발휘해서 스토리가 있는 가사를 평소의 작사 품질을 유지하면서 써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룹 폴리스 시절의 대히트곡 <에브리 브레스 유 테이크>(Every Breath You Take)에 대한 스스로의 반작용으로 썼던 <포트리스 어라운드 유어 하트>(Fortress Around Your Heart)는 두 연인이 서로를 사랑이란 성에 꽁꽁 가둬버린 상황을 그렸는데, 카드게임을 빌려온 <셰이프 오브 마이 하트> 못지않게 깨알 같은 비유들이 효과적으로 쓰였다. 사랑에 대한 그의 용한 처방전 중 하나로 같이 거론될 만하다.


성문영 팝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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