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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우편배달부는 언제 다시 벨을 울리나

그 이름만으로도 아름다운 ‘우체국’, 아련한 맛이 점점 없어지는 ‘우체부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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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04 07:40 수정 : 2015-09-04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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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하나 듣고 시작.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오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 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우연한 생각에 빠져 날 저물도록 몰랐네”

가수 김현성씨가 만들고 부른 <가을 우체국 앞에서>이다. 우체국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바람에 멀리 날려가는 은행잎을 보며 존재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는 소리이다. 멋진 서정이다. 동사무소나 경찰서 앞이라면 이런 분위기 절대 안 만들어진다. 만약 세무서라면 잘해봤자 “내 아름다운 돈이 은행잎처럼 날아가네. 한여름 소나기와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굳세게 버텼던 내 돈을 세금으로 다 뺏겼네” 정도 나왔을 것이다.

안도현의 시 ‘바닷가 우체국’에도 멋진 표현들이 들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

“나는 며칠 동안 그 마을에 머물면서/ 옛사랑이 살던 집을 두근거리며 쳐다보듯이/ 오래오래 우체국을 바라보았다/ (…)/ 우체국에서 편지 한 장 써보지 않고/ 인생을 다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또 길에서 만난다면/ 나는 편지 봉투의 귀퉁이처럼 슬퍼질 것이다/ (…)/ 바닷가 우체국이 보이는 여관방 창문에서 나는/ 느리게 느리게 굴러가다가 머물러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아는/ 우체부의 자전거를 생각하고/ (…)/ 그리고 때로 외로울 때는/ 파도 소리를 우표 속에 그려넣거나/ 수평선을 잡아당겼다가 놓았다가 하면서/ 나도 바닷가 우체국처럼 천천히 늙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우체부로라도, 이왕이면 국장이 좋겠지만

인용이 좀 길었다. 본문은 엄청 기니 용서하시라.


거문도 인근 초도(草島) 의성마을에는 이 시 분위기와 흡사한 우체국이 있다. 바닷가에 커다란 팽나무가 서 있고 그 뒤에 작고 아담한 우체국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내가 공무원 팔자도 아니고 하고 싶은 마음 또한 눈곱만큼도 없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되는 상황이라면 저 우체국에서 근무를 하고 싶다는. 이왕이면 국장이 좋겠지만 그저 늙은 우체부라도 충분하다. 바다를 배경으로 배달 가방을 메고 나설 수 있으니까.

우체국에는 우편배달부가 있다. 좀 멀리 가보자. 컨테이너선 타고 유럽 갔을 때이다. 도착한 곳은 네덜란드 로테르담. 그곳의 특징은 우선 오래된 성(城)이 없다는 것이다. 유럽 여행을 하다보면 가는 곳마다 커다란 성들이 떡하니 자리잡고 역사와 문화에 대해 이해하라고 윽박지르다시피 하는데 그게 없었다.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히틀러가 가장 먼저 폭격을 한 곳이란다. 인구 1천만 명에 우리나라 경상도 정도 크기의 나라가 가장 찝찝해서 로테르담 항구를 일단 초토화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그곳은 근대 이후의 건물만 있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나는 새벽에 숙소를 나와 낯선 곳을 돌아다녔다. 인적 드문 길거리와 아직도 문 닫지 않고 있는 맥줏집, 그리고 자그마한 요트 계류장을 걸어다니다가 한 아가씨를 발견했다. 스물 갓 넘었으려나. 갈색 머리를 뒤로 묶고 있는 그녀는 단정하고 수수한 미인이었는데 무엇보다 붉은색 제복을 입고 붉은색 자전거를 타고 있었으며 거기에는 붉은색 가방이 매달려 있었다. 우편배달부였던 것이다. 그녀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신문이나 서류봉투, 또는 편지로 보이는 것들을 집어넣거나 던지고 있었다. 찌릉찌릉, 간혹 벨소리를 내며.

그 모습이 너무 좋아 나는 뒤따라다녔다. 방향이 지그재그라서 나는 반대쪽으로 지그재그 걸었다. 한 블록 지나면 만나고 다시 한 블록 지나면 또 만났다. 나중에는 서로 웃으면서 눈인사도 했다. 맹세하건대, 중학교 2학년 이후 처음으로 여자 뒤를 따라가본 것이다. 고즈넉한 새벽 시간, 항구의 앳된 아가씨 우편배달부. 그 모습만으로도 나는 네덜란드가 좋아졌다. 만약 경찰이나 어떤 행사 복장이었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고향 친구, 여자 동창, 펜팔 여고생…

일러스트레이션/ 한주연

요즘은 사람들이 편지 안 쓴다. 예전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보편적인 매개가 편지였는데 이젠 손편지, 하면 어색한 느낌마저 든다. 내 최초의 편지가 어떤 것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초등학교 때 의무적으로 쓰게 했던 국군위문편지였을 것이다. 그것은 해마다 되풀이되었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뜬금없이 어떤 하사한테서 답장이 와서 몇 번 주고받은 적이 있다. 별 재미는 없었다.

그것 말고 떠오르는 게 몇 개 있기는 하다. 열 살 때 여수로 전학 가서 받았던 고향 친구의 편지(이 친구는 지난해 말 심장쇼크로 세상을 떴다). 섬에서 중학교 마치고 마산공단 산업체 부설학교로 갔던 여자 동창(당시 나는 그녀의 편지를 여러 번 읽었고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불에 태웠기 때문에 책상에 그슬린 자국이 오랫동안 남았었다)의 것, 펜팔을 했던 대구의 여느 여고생(끝내 만나지는 못했다)도 있었다.

헤어지자고 보내왔던, 사랑하던 여인의 편지도 있고 책 발간 신문 기사를 보고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사람의 편지도 있고(만나기는 했는데 내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성질의 것이었다) 책 잘 읽었다는 독자들의 편지도 물론 있었다. 그것뿐이겠는가. 매 순간 오고 갔던 숱한 편지들. 그렇지만 지금 보관하고 있는 것은 아빠가 보고 싶다고 울고 있는 그림이 들어 있는, 딸아이 어렸을 적의 편지들뿐이다.

편지는 먼 곳의 어떤 존재에게 보내는 말이다. 이것의 미덕은 소식과 안부를 봉투 속에 넣고 침 발라 우표 붙인 다음 우체통에 넣으면 우편배달부의 손에 의해 그 사람에게 전해지는 과정, 그리고 답장 기다리는 시간을 고스란히 보내야 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그러기에 인간관계 상관물과 상징으로 두루 쓰였다. 시와 노래가 이미 그러했듯이.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또 얼마나 근사한 이야기인가. 그리고 다들 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도 떠올렸을 것이다. 물론 이 영화나 원작 소설에는 우편배달부가 나오지 않는다.

말 나온 김에 궁금한 것 하나. 왜 두 번일까. 첫 번째, 배달부는 벨을 한 번 누르고 아무 반응 없으면 혹시나 싶은 마음에 한 번 더 누른단다. 바빠서 세 번까지 눌러줄 여유 없다. 내가 배달부라도 그럴 것 같다. 또 하나. 원작 작가가 신문에 실린 선정적인 기사를 읽게 된다. 어떤 남자가 아내와 그녀의 정부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내용인데 아내는 남편을 죽이기 전에 몰래 남편 명의로 상해보험에 가입했고 보험 지급증서를 자신에게 직접 전해달라고 배달부에게 부탁했으며 초인종 두 번 울리는 것이 신호였다는 것. 인터넷에서 찾아본 것으로 덕분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궁금증이 풀렸다.

“하체가 부실해져요”

우체국은 그 이름만으로도 아직 아름답다, 가 내 생각이다. 이곳 거문도에는 수협과 농협이 더 있다. 그런데 나는 우체국만 상대한다(이 말 들으면 서운하겠네). 초도와 달리 바닷가는 아니지만 우체국 갈 일이야 꼭 생긴다. 공과금 내고 돈을 찾거나 소포로 책을 부칠 때이다(그러고 보니 나도 이제 편지를 쓰지 않는다). 그건 금방 끝나는데 그냥 돌아오기 공연히 서운하다.

그러면, 일부러 이유를 만들어 가장 멋진 옷과 모자를 걸치고 오일장 나갔다가 친구들 찾아 대폿집 전전한 끝에 종내는 마구 흐트러져버린 자세로 돌아오는 육지의 촌로처럼, 나도 그렇게 된다. 아는 집에 들러 커피 얻어 마시고 짜장면도 사먹는다. 하다못해 슈퍼에 들러 사이다라도 한 캔. 그러다 종종 술이 시작되어, 저 비틀거리는 촌로처럼 뭐라고 혼자 씨부렁대며 돌아오곤 하는 것이다.

요즘은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우체국이 택배 보내고 받는 곳으로 전락해버렸다. 갈치나 삼치가 좀 나기라도 하면 이른 아침부터 얼음 포장한 스티로폼 박스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 다른 일은 보지도 못한다. 배달부도 오토바이 타고 다닌다. 청년 둘이서 몇 개 마을을 맡고 있으니 걸어서는 턱도 없다. 거문슈퍼 앞 평상에 앉아 있으면 그 둘이 바쁘게 오가는 모습을 다섯 번은 보게 된다.

그중 3년차 막내 배달부에게 물었다. 이 직업의 가장 큰 보람이 무엇인가. 짐작대로, 사람들이 기다리는 것을 직접 전달해줄 수 있는 것, 모두들 반갑게 맞아준다는 게, 그렇게 누군가를 즐겁게 해준다는 게 최고의 매력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물론 돈 내라는 고지서나 경찰서, 법원 같은 데서 오는 것도 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반대는?

“하도 오토바이만 타고 다녀서 하체가 부실해져요.”

그의 불만은 그거였다.

우체부 아저씨, 이젠 이 단어가 주는 아련한 맛이 점점 없어지는 시절이다. 갈수록 사라지는 아날로그들. 나는 우체국만큼은 옛날 모습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 그러나 쇼핑몰 운영한 지 한참 된데다 요즘은 핸드폰까지 판다. 들어보니, 우체국은 일반회계가 아닌 특별회계에 의해 운영이 된단다. 국민 세금으로 월급을 받는 게 아니라 스스로 벌어서 충당한다는 것. 서울·경기 지역 외에는 모두 적자란다. 그러니 뭐라도 팔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우체국이 다른 정부 조직에 비해 한쪽으로 밀려나 있다는 게 한눈에 들어온다. 기상청처럼 ‘청’으로 독립을 원하지만 요원하다는 설명. 그저 간신히 연명이나 하고 있단다.

기초생활수급비 사기꾼 색출에…

그러면서 소년·소녀 가장 지원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편배달부가 각각의 집구석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고생하는 게 뻔히 보이니까 안 도와줄 수 없다, 이게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기본 품성이다. 제안 하나. 복지 행정을 우체국과 연계하면 실효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이들의 촘촘한 행보를 전달의 기능만으로 끝내는 게 아깝지 않은가. 더 나아가, 재산 빼돌린 다음 기초생활수급비 같은 거 받아먹는, 우리 세금으로 고급 자가용 타고 다니는 족속들(다들 주변에 여럿 있을 것이다) 색출하는 데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 어떨까 싶다.

한창훈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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