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서 ‘동송세월’이라는 미술 전시 행사가 있었다. 철원의 비무장지대(DMZ) 인근 지역을 기반으로 2012년부터 이어온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지난해까지는 민간인출입통제선 안쪽에서 행사가 진행됐는데 올해는 동송읍의 거리와 건물들에서 작업을 선보였다. 나도 미술작가 한 사람과 공동작업을 통해 참여할 기회를 가졌다.
행사를 덮친 남북 간 군사 긴장
나와 미술작가는 읍내에 위치한 성당의 정원에 입체 캔버스를 설치해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도 그 위에 글이나 그림을 자유롭게 끼적일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시, 그림, 낙서, 사랑과 신앙 고백이 뒤죽박죽 섞인 조형물이 탄생했다. 그것은 밤에 등대처럼 빛났다.
두 번의 워크숍도 있었다. 첫 번째 워크숍은 읍에서 제일 오래된 이발소에서 진행했다.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들에게 초상화와 글귀를 선물하는 작업이었다. 어느 손님은 건물에 색을 칠하는 페인트공으로 일생을 살아온 분이었다. 그분의 초상화 위에 나는 “색깔의 마술사, 그의 손이 집에 닿으면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한곳에 모이네”라고 썼다.
두 번째 워크숍은 어느 가정집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워크숍은 주민들과 함께 하는 시쓰기와 그림그리기였다. 집주인인 할머니는 마당에 온갖 화초를 정성스레 가꿔온 분이었다. 시와 그림에 어울릴 것 같아 방을 사용해도 되겠느냐고 부탁하자 선뜻 허락을 해주셨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마을을 엄습한 것이다. 동송읍의 일부 지역에는 대피령이 내려지기도 했다. 군사분계선과 가까운 동송읍은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면 주민들의 생업과 안전이 직접적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곳이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두 번째 워크숍 전날, 남북한 당국은 고위급 회담을 열기로 합의했다.
군사적 충돌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지 시와 그림에 대한 무관심 때문인지 워크숍에 참여한 사람들은 중학생 3명이 전부였다. 그 가운데 한 학생이 시를 쓰고 싶다 했다. 분위기는 고즈넉했다. 학생들을 데리고 온 성당 신부님은 시에 대한 질문을 간간이 던졌다. 주인 할머니는 우리에게 간식을 건네주고는 옥수수알을 하나하나 뜯어내며 볕에 말릴 채비를 했다.
누구도 전쟁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주로 시와 그림에 대해, 보는 것과 느끼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학생이 쓴 ‘배우다’라는 제목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보는 것은 스승이다”. 학생이 시를 낭독하자 작은 방에서 감탄과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나는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전쟁이 난다면 방 안에서 울려퍼졌던 그 소리보다 훨씬 더 큰 소리가 마을을 감쌀 것이다. 그 큰 소리가 만남과 대화, 꽃과 옥수수로 이루어진 그 집의 소우주를 휩쓸어버릴 것이다. 도발과 응징의 수사를 구사하고 체제와 경제의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이들은 그 일상의 세계를 알까? 그 작은 방에서 시의 폭죽을 쏘아올린 중학생의 마술을 알까? 그 방에서 탄생한 말과 몸짓들이 실은 다른 미래를 품고 있는 가능성의 씨앗이라는 것을 알까? 전쟁이 나도 달려라 최악의 가정을 해보자. 전쟁이 터진다. 중학생은 잿빛 폐허가 돼버린 건물과 거리와 논밭을 본다. 그는 “보는 것은 스승이다”라는 자신의 말을 “보는 것은 괴물이다”라는 말로 바꾼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가 그 괴물과의 투쟁으로 점철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물론 이 가정은 나의 상상일 뿐이다. 중학생은 또 이렇게 썼다. “여름을 달리며 아무거나 표현하고 말하고 쓴다.” 나는 다시 상상한다. 달려라, 중학생. 겨울에도 달려라. 고등학생이 되어도 달려라. 전쟁이 나도 달려라. 미래를 향해, 미래 너머를 향해 달려라. 심보선 시인·사회학자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누구도 전쟁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주로 시와 그림에 대해, 보는 것과 느끼는 것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학생이 쓴 ‘배우다’라는 제목의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보는 것은 스승이다”. 학생이 시를 낭독하자 작은 방에서 감탄과 박수 소리가 터져나왔다. 나는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전쟁이 난다면 방 안에서 울려퍼졌던 그 소리보다 훨씬 더 큰 소리가 마을을 감쌀 것이다. 그 큰 소리가 만남과 대화, 꽃과 옥수수로 이루어진 그 집의 소우주를 휩쓸어버릴 것이다. 도발과 응징의 수사를 구사하고 체제와 경제의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보는 이들은 그 일상의 세계를 알까? 그 작은 방에서 시의 폭죽을 쏘아올린 중학생의 마술을 알까? 그 방에서 탄생한 말과 몸짓들이 실은 다른 미래를 품고 있는 가능성의 씨앗이라는 것을 알까? 전쟁이 나도 달려라 최악의 가정을 해보자. 전쟁이 터진다. 중학생은 잿빛 폐허가 돼버린 건물과 거리와 논밭을 본다. 그는 “보는 것은 스승이다”라는 자신의 말을 “보는 것은 괴물이다”라는 말로 바꾼다. 그리고 자신의 미래가 그 괴물과의 투쟁으로 점철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물론 이 가정은 나의 상상일 뿐이다. 중학생은 또 이렇게 썼다. “여름을 달리며 아무거나 표현하고 말하고 쓴다.” 나는 다시 상상한다. 달려라, 중학생. 겨울에도 달려라. 고등학생이 되어도 달려라. 전쟁이 나도 달려라. 미래를 향해, 미래 너머를 향해 달려라. 심보선 시인·사회학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