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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복제인간은 괴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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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1-12-05 00:00 수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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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복제의 근거없는 두려움에 대한 통렬한 비판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민간기업 어드밴스트셀테크놀로지(ACT)는 11월25일 초기 단계의 인간 배아복제에 성공했다고 발표해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이미 인공수정 전문의인 이탈리아의 세베리노 안티노리 박사와 종교집단 라멜리안 산하 클로네이드사는 인간복제를 공식 선언했다. 충격적으로 다가오는 복제인간의 출현 가능성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공상과학영화에서 나온 잘못된 생각들

<누가 인간복제를 두려워하는가>(그레고리 펜스 지음·이용혜 옮김, 양문 펴냄, 02-722-7181, 1만원)는 도발적인 제목 그대로, 인간복제에 대한 사람들의 깊은 두려움에 날카로운 비판의 메스를 들이댄다. 미국 앨라배마대학 철학 교수인 지은이는 인간복제에 대한 다양한 반대론들이 갖고 있는 논리적 모순과 오류를 낱낱이 논파하려 한다.


펜스가 보기에 인간복제에 반대하는 논의들은 주로 공상과학소설과 영화로부터 영향받은 다음과 같은 잘못된 생각들에 기반하고 있다. 1)가장 먼저 복제대상에 오를 것은 독재자이다. 2)복제인간은 비인간적인 인공자궁 안에서 자랄 것이다. 3)복제인간의 성장에 필요한 시간은 길어야 며칠 정도다. 4)복제인간은 감정없는 살인마나 뇌를 못 쓰는 장애인이 될 것이다. 5)복제인간은 같은 환경에서 공산품처럼 만들어지며, 결코 하나의 독자적인 개인으로 만들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6)복제된 여성은 날씬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7)선량한 사람은 사악한 자신의 복제물로 인해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가정들은 터무니없는 공상에 불과하다고 그는 비판한다. “복제인간은 아마도 인류 역사상 최악의 냉대를 받을 것이며, 새로운 노예계층이 생겨날 것”이라는 생명윤리학자 니겔 카메룬의 경고는 <블레이드 러너>류의 공상적 통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펜스는 기존 복제기술의 한계와 인간복제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역할을 든다. 수십억달러를 들여 시도했던 인공자궁의 생산이 결국 실패한 데서 보듯이, 복제인간이 인공자궁을 통해 대량으로 생산되는 음울한 상황은 오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복제는 여성의 몸 안에서 9개월의 정상적인 임신을 거쳐야 하며, 지금의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한 정부나 개인이 여성에게 복제인간의 임신을 강요할 수도 없다.

펜스는 이미 인류가 가진 과학적 경험도 복제인간에 대한 근거없는 두려움을 반박해준다고 지적한다. 70년대 시험관아기의 탄생을 두고 사람들은 체외수정으로 태어난 아기가 ‘정상인’(?)과 다른 2류인간으로 취급받을까봐 우려했다. 그러나 루이스 브라운(최초의 시험관아기)이 들었던 최악의 말은 “너같이 뚱뚱한 애가 어떻게 시험관에 들어갈 수 있었느냐”는 농담이었다.

사회구조의 문제에 대해선 말을 아껴

사진/ 다가오는 인간복제에 대한 두려움은 단지 모지의 산물일 뿐인가?
그러므로 인간복제의 사회적 파장은 결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펜스는 주장한다. 가령 한 사람의 배아를 분할해 여러 명의 복제인간이 태어난다고 해도 문제될 게 없다. 8쌍둥이가 태어나도 후천적 환경의 영향 때문에 결코 기계처럼 똑같은 판박이로 자랄 순 없다. 강렬한 친밀감을 지닌 형제, 또는 자매가 함께 존재한다면 더 좋은 일 아니냐고 저자는 반문한다. 완벽한 유전자를 가진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간의 사회적 차별이 깊어질 것이라는 영화 <가타카>류의 우려도 그는 일축한다. 그런 차별의 논리는 이미 존재하는 기존 사회의 어두운 측면을 투사한 것으로, 인간복제로 인해 새롭게 도래할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근거없는 두려움에 짓눌려선 인간의 진보는 불가능하다.”

이 책은 복제인간도 똑같은 인간이라는 인본주의적 관점을 초지일관 견지한다. 인간복제에 대한 여러 두려움이 결국 ‘복제인간은 인간이 아니다’라는 그릇된 문화적 가정에 근거하고 있음을 정확히 지적한다. 그러나 그러한 가정을 산출하는 사회구조의 문제에 대해선 말을 아낀다는 점이 한계로 남는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어두운 현실의 구조가 그대로 지속될 때 인간복제 기술의 장기적 발전이 악용될 가능성을 염려하는 좀더 속깊은 견해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답할지 궁금해진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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